엘리아데는 책의 11장과 12장을 중국과 인도 즉 동양의 연금술에 할애한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동양에도 연금술이?’라고 의문을 가졌었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건강’을 위한 운동법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 양생법과 요가 수련법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종종 인용하곤 하는 ‘음양오행론’도 엘리아데에 의하면 중국 연금술 원리 중 하나로, 신과 같은 완벽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활용되었다. 오래전 중국의 도인과 인도의 요가 행자들에게 실험과 수련은, 서양의 연금술사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조건을 초월해 신을 만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실험에 의한 불사의 영약 만들기와 수련과 명상을 통한 육체적 변환은 동시에 절대적 자유를 향한 정신적 테크닉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연금술 : 소우주와 대우주의 대응
중국의 경우 연금술이 보급된 것은 도교 및 신(新) 도교를 통해서였다. 신성한 진사(辰砂)를 제조한 사람만이 불멸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 낸 진사와 황금액을 복용하면 신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신도교 시대의 연금술사는 장인이자 선비였다. 그들은 왜곡되고 훼손된 고대의 지혜를 회복하기 위해 이전의 전통적인 양생법, 체조술, 무도술, 호흡법, 망아술, 주술, 황교술, 강신술 등에서 고대 지혜의 단편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도교 선사의 궁극 목적인 ‘육체적 불사’는 대게 실험실에서 조제된 단약을 복용하여 획득되었다. 연금술사는 중국 사상에서 잘 알려진 소우주와 대우주의 대응이라는 전통적 해석을 받아들인다. 우주의 5원소인 오행(木火土金水)은 인체 각 기관에 상응하여, 심장은 화의 본질에, 간은 목의 본질에, 폐는 금의 본질에, 신장은 물의 본질에, 위장은 흙의 본질에 해당된다. 인간은 대우주에 대응하기 때문에,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소와 그 주기적 갱신을 보장하는 모든 생명력을 신체 속에 소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본질을 강화시키는가가 문제이다.
진사(辰砂)는 불에 던질 경우 수은을 만들어낸다는, 죽음에 의한 재생의 비의를 감추고 있어 중요성을 지녔다. 한 이전 왕조하에서 연금술사들은 금을 얻기 위해 진사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진사는 신체 내부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데, ‘진사의 밭’으로 유명한 단전은 뇌와 배의 가장 은밀한 깊은 곳에 있다. 신비적 명상에 의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창조 이전 세계의 원초적 낙원적 무의식적 상태와 흡사한 카오스적 상태에 빠져야 한다.
명상을 통해서 실현되는 연금술 조작에 필수 불가결한 이 ‘카오스적’ 상태는 무의식적 상태, 태아 또는 알의 상태와 비교된다. 모태 회귀에 의한 회춘이나 장생의 모티브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태아적 호흡’인 태식(胎息)이다. 태식의 목표는 자궁 속 태아의 호흡을 모방하여, “ 근원으로 회귀함으로써, 노쇠를 물리친다.” 서양 연금술사들 역시 찬양해 마지않는 이 ‘모태 회귀’ 개념은, 세계의 기원에로의 상징적 회귀이자 우주 창조론의 재실현에 의한 쾌유의 개념이 발전한 것이다. 많은 원시적 치료법에서는 세계 창조의 제의적 반복이 포함되는데, 이는 환자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서 고스란히 축적된 생명력과 더불어 생명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해준다.
인도의 연금술 : 생리(물질)적 조작의 내재화
탄트라교의 하타 요가에서 자신의 신체와 심리적 정신적 삶에 조작을 가하는 요가 행자와 물질에 대해서 조작을 가하는 연금술사 사이에는 명백한 유사성이 있다. 둘 모두 불순한 물질을 정화시키고 완성시키려는 것인데, 연금술사에게 완전한 금속인 금은 요가 행자가 얻으려는 불멸의 자유롭고 순수한 정신의 상징과 합치된다.
연금술사가 정화와 화학적 조작에 금속을 복종시키듯, 요가 행자는 요가 수련의 혹독함을 통해 정신적 심리적 삶과 육체를 복종시키고, 물질(프라크르티)의 영역에 속하는 모든 체험으로부터 정신(푸루샤)을 분리해낸다. 인간의 정신-육체 사이에 완벽한 상호 연대는 원초적 물질인 프라크르티의 소산이다. 베다 이래로 그들은 의례 및 생리학적 작용(음식, 성생활 등)의 ‘내재화’가 인간의 정신 상태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여겨, 물질에 대해 행해지는 조작을 자기 안에 ‘내재화’시키려 했다. 이들이 물질(신체)에 투입한 고행은, 서양 연금술사들의 작업실에서 실현된 실험 조작과 동등한 가치를 지녔던 셈이다.
요가와 탄트라교, 특히 하타 요가파를 포함하는 정신적 조류는 ‘체험’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요가 행자가 자신을 해탈의 문턱으로 점차 이끌어갈 구체적 결과를 달성하는 것은, 생리적 심리적 정신적 삶의 여러 차원에서 ‘행동’하고 ‘작업’함으로써 가능하다. 태고로부터 인도의 정신적 엘리트 가운데 많은 수가 ‘실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실험이란 곧 신체와 심리적 정신적 삶의 기반과 과정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한 직접적이고 실험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험의 성질을 이해하려면, 인도인들의 눈에 ‘물질’이 어떤 것이었나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에게 물질은 불활성이 아니었으며, 근본 원질(프라크르티)의 무궁무진한 발현의 모든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인간의 신체, 생리, 심리적 정신적 삶과 마찬가지로, 식물, 돌, 금속 또한 동일한 우주적 과정의 여러 계기일 따름이다. 따라서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고,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