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찌에, 마담!

여행의 순간

by 미르mihr

오래도록 영수증을 들여다봐도, 서빙된 그릇의 숫자와 계산서 상의 숫자가 맞지 않았다. 저렴한 호텔에 묵으며 조식까지 싸구려를 먹고 싶지 않은 마음에, 숙소 근처 조식 맛집들에서 매일 아침을 거의 '성찬'으로 찾아 먹는 중이었다. 첫날에는 운 좋게 만족스러운 식당을 발견했지만, 다음 날부터 순례한 다른 맛집들은 (우리의 입맛 기준으로는) 첫 번째 식당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했다. 며칠 되지 않았으나 나와 딸들은 그리운 마음으로 그곳을 다시 찾아가 한 번 더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그리곤 두 번째 만남이기에, 처음보다 더 많은 미소와 다정함을 나누며,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며 괜스레 계산서를 자세히 바라보던 내 눈에, 의문의 한 줄이 읽혔던 것이다. 식당과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숙소에 들어와 앉아, 나는 차분히 낯선 이탈리아어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봤지만 한글로 번역되지 않는 고유명사다. 그게 뭔가 다시 검색해 보니 아몬드와 비슷한 견과류라고 뜬다. 2유로짜리 견과류를 시킨 기억은 없었다.


"혹시, 견과류가 포함된 음식이 있었나?"


함께 식사를 했던 두 딸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겨우 2유로니 그냥 잊으라는 충고, '함께 가줄까'라는 걱정스러운 호의, 그 둘 다를 숙소 문 안으로 차분히 밀어 넣고, 나는 홀로 다시 길에 나섰다. 계산을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딸의 말처럼 달랑 2유로이니 화를 낼 생각도 별로 없었고, (버벅거리는 영어로) 어떻게 따져 물어야 할까라는 걱정도 내겐 없었다. '그러면 대체 나는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 걸까?' 목적을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발이 가자는 대로 가고 있는 내게 이 골목에서 수십 번도 더 마주친 구걸하는 노인이 또다시, 마치 처음 마주친 것처럼, 인사를 건넨다.


"챠오, 마담!"


방금 전 식당을 다녀오는 동안에도 그는, 마치 그가 거기에 없는 양 무시하며 지나치는 우리에게, 마치 처음 마주친 것처럼, 경쾌하게 인사를 건넸었다. 나는 이번에도 예의 그가 마치 거기에 없다는 듯 무시하며 지나쳤다. 나와 딸들이 그를 무시하며 지나가는 이유는,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리바리한' 자그마한 동양인 여성 관광객들이고 이곳은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뒷골목이고, 여행 오기 전에 들은 흉흉한 이야기들과 그런 위험을 피하는 충고들은 '무조건 무시하고 빨리 지나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더 그를 무시하(는 척하)고 지나쳐서, 아침을 먹었던 식당으로 갔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뭐가 문젠데?"

"(손가락으로 영수증의 견과류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

"아몬드.. 같은 건데... 어쩌고 저쩌고"

"그래, 그런데 그게 우리가 주문한 어느 요리에 들어있었니?"

"너희가 주문을 안 했다고? 잠시만 기다려. 주방에 가서 확인하고 올게"


구글 맛집이라 일행이 셋인 우리는 예약하지 않으면 테이블을 잡을 수도 없는 그런 식당이었고, 아직 아침식사 시간이어서 그 작은 식당 안은 식사 중인 관광객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아무도 대놓고 바라보고 있진 않았지만, 버벅대는 영어로 뭔가 문제제기를 하는 동양인 여자와 식당 주인의 대화를 엿듣지 못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심한 척하는 관심 속에서 나는 몇 분을 서서 기다렸다. 다시 내 앞에 나타난 주인은, 웃으면서 동전 두 개를 내 손바닥에 떨어뜨리고 짧게 말했다.


"미안해.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건데 착각했어."


그때 나는 좀 당황했다. 나는 누군가 내 손안에 떨어뜨리는 동전 두 개를 받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버린 그 사람 앞에서, 스스로도 모호하다 느끼는 기분을 설명하기는 (특히나 버벅거리는 영어로는 더욱더) 어려웠다. 게다가 식당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관심 가득한 무관심 속에 더 이상 더 있고 싶지 않아서, 나 역시 짧게 대답하고 그곳을 돌아 나왔다.


"그래. 안녕."


잃어버린 2유로를 되찾았지만, 뭔가 더 큰 걸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전한 마음으로 숙소를 향해 걸었다. 그때 또다시 마주친 구걸하는 노인이 내게 또 마치 처음인 것처럼 인사를 건넨다.


"차오, 마담!"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 손안에 떨어진 동전 두 개 중 하나를 그가 들고 있는 종이컵 안으로 다시 떨어뜨려 보냈다. 내게는 그를 향한 연민은 당연히 전혀 없었고, 웬일인지 그가 더 이상 두렵지도 않았다. 나는 내 손에 들어오면서 동시에 내게서 더 큰 뭔가를 앗아간 그 동전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내 마음을 사이좋게 나눠가질 동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나의 나눔(?) 앞에서, 노인은 예의 그 경쾌한 목소리로 내게 답례의 인사를 건넨다.


"그라찌에, 마담!"


잠시 마주친 눈길을 서둘러 피하며 나는 다시, 그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빠르게 숙소를 향해 걸었다. 오늘도 그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 관심 가득한 무관심 앞으로 경쾌하게 손을 내밀고 서 있을 그에게, '그라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