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천천히 와.

제주도 셋째 날.

by 아둘내미

오늘 일정은 어제부터 두 가지 안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감귤체험,

그리고 아내를 위한 동백수목원.


고민하다가 동백수목원으로 정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감귤체험은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았다.


막상 도착해 보니 길이 울퉁불퉁했다.

"여기 유모차 끌기 좀 어렵겠는데."

"그럼 애들은 우리가 볼게. 천천히 구경하고 와."


아내와 형수는 첫째를 데리고 수목원 산책을 나갔고,

나랑 형은 남아서 아이들을 하나씩 맡았다.



날씨는 춥고, 갈 데도 마땅치 않아

휴게실로 들어갔다.


호빵을 사서 겉의 하얀 부분만 떼어 먹여보고,

끙아 한 기저귀도 갈고,

보채는 아이를 안고 토닥토닥.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갈까?


한 시간이 지나니

‘언제 오지’ 하는 생각이...


전화를 한번 해 볼까 하는데

형이 툭 말한다.


“그냥 둬. 마음 편하게 놀다 오게.

필요하면 연락하겠지.”


그제야 생각해 본다.


나는 아직,

성준이를 혼자 돌보는 게 익숙하지 않구나.


그리고,

아내는 늘 이런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었구나.


한 시간 반쯤 지나서 연락이 왔다.

구경 좀 하다가 카페에 들렀고, 이제 나온다고.

수목원 내 카페


“그래. 천천히 와.”


그 말을 하고도 또 시간이 간다.

성준이는 한참 전부터 칭얼대고,

나는 계속 안았다가 달랬다가 다시 안았다가.


"천천히 와"

그렇게 말해놓고,

속으로는 자꾸 '빨리 와 줬으면' 한다.


사십 분 정도가 더 지나서야 아내가 돌아왔다.

“괜찮았어?” 하고 묻는데,

안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다가도

자존심을 내세워 말해본다.


“성준이가 좀 칭얼대긴 했는데

계속 안아주고 달래줬지.

호빵 흰 부분 떼어주니까 잘 먹더라.

근데 계속 안고 있으니까 허리가 아프네.

팔도 아프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고생한 건 알아줬으면 하는 말.


저녁엔 다 같이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

어린 성준이를 데리고 가는 게 걱정됐지만

‘혹시 얌전히 있지 않을까, 졸려서 자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조금 있었다.


흑돼지 식당. 눈이 말똥말똥한 성준이.


현실은, 고기를 5분씩 번갈아 먹는 식사.

누가 성준이를 보고,

누가 급히 먹고,

또 교대.

그걸 계속 반복했다.


성준이 체력은 왜 이렇게 남아 있을까.


짧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처음엔 후회가 더 컸는데

마지막 날 때쯤 되니

‘그래도 오길 잘했나’ 하는 마음이 슬쩍 든다.


다만...

당분간은 여행을 안 가고 싶다.

너무 힘들긴 했다.



2019.01.29.

생후 26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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