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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pr 15. 2022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누가복음 16장 해석

누가복음 16장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신학자들은 전체 공관 복음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기도 하며 대부분의 신약학자들이 예수님의 비유 중 가장 난해한 비유로 인정하는 구절이다.


먼저 내용을 살펴보자.


어떤 부자에게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주인이 그동안 청지기가 한 것을 살펴보고 셈하고자 하여 그는 실직될 위험에 처한다.


청지기는 해고된 후 미래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한 명씩 불러다가 자기 맘대로 거짓으로 사문서 위조를 시도하며 빚의 일부를 탕감해준다.


그렇게 하면 빚진 자들이 나중에 고마워서 자기가 해고된 후에도 그의 집에서 영접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이다. 오늘날 우리의 기준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범법 행위이며 주인이 당장 해고한 후 감옥에 처넣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오히려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한다.


본문 8절을 보자.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을 했는데 주인의 칭찬을 받고, 믿지 않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 곧 크리스천들보다 지혜롭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후 이어지는 구절은 더 난해하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니.. 나쁘게 번 돈으로   친구에게 아부하란 말인가. 도무지 예수님의 깊은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그 대상을 먼저 볼 필요가 있다.


14, 15절에 보면


[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 얘기를 듣고 비웃는 바리새인들을 비판하는 구절이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군중들 속에는 가장 율법적이지만 위선적이었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돈을 좋아하는 그런 자들에게 세상 재물에 관한 이 비유를 들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며 가장 난제인, 예수님은 왜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셨을까?


재미있는 것은 청지기를 칭찬하시면서도 청지기 앞의 수식어로 '불의한 (dishonest manager)'을 빼놓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보통 성경에서 의인은 의인이라고 쓰여 있다. 예수님이 불의하다고 하신 것은 정말로 그가 불의하다는 뜻이다. 곧 예수님이 청지기의 성품이나 행동이 의롭다고 하신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의 지혜로움이다. 이것이 바로 이 얘기의 핵심이며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지혜로움인지 천천히 얘기를 따라가며 다시 살펴보자.


이 비유의 주인은 청지기와는 달리 아주 관대한 사람임을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쩜 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


전적으로 믿고 전 재산을 맡긴 하인이 몰래 돈을 횡령하고 낭비했는데 변상받기는 커녕 감옥에 보내지 않고 단지 해고만으로 끝내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주인은 일반적인 세상의 법칙보다 더 자비롭고 관대하다.


성경의 여러 비유에서 보듯 관대한 주인이 곧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그렇다고 한다면, 주인 곧 하나님은 세상 사람이 비록 주인의 돈으로 베풀고 친구를 얻을지라도 그 지혜를 칭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훗날을 예비하며 현재가 아닌 나중을 도모할 줄 아는 자이기 때문이다. 곧 보이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이기에 칭찬하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가 지혜로운 그 일을 행하기 전에 스스로 말하는 구절인 4절은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 뒤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9절과 대구를 이룬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


이 말씀이 바로 이 모든 비유의 주제이자 대구법으로 이루어진 핵심 부분이다.


믿음 없는 청지기 같은 세상 사람들도 친구에게 재물을 베풀고 사귀면 직분을 잃은 후에 자기 집으로 영접을 하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면 (곧 재물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그 모든 재물이 사라지는 세상 떠나는 날에 영원한 천국에서 영접할 것이란 뜻이다.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니 일반적으로는 범죄로 모으거나 혹은 착취와 횡령으로 탐한 돈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불의하다는 의미는 단지 '세상적인 재물'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재물은 사람들의 사용 방법에 따라 불의하기도 하며 그 자체로 믿을 수 없고 결코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런 속성을 가졌음을 함의한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곧 없어질 세상의 재물들을 지혜롭고 가치 있게 쓰시길 원하신다. 어려운 이웃들을 구제하며 복음 전도로 사용할 때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처소를 하늘에 예비하겠다는 말씀이시다.


곧 이어지는 10절에서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하신다.


그 얘기는 달란트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에게서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서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주었던 것처럼 작은 달란트에도 충성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비록 작은 돈이라도 과부가 드린 두 렙돈처럼 아낌없이 드릴 때 큰 것에도(그것은 재물이 될 수도  사역이나 주님을 위한 다른 일일 수도 있다) 충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 두 구절도 함께 짝을 이루며 예수님의 핵심 가치를 설명한다.


11절의 '불의한 재물' 곧 없어질 세상의 재물은 12절의 '남의 것'과 같다.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닌 결국 하나님의 것이며 뒤에 오는 '참된 것'과 '너희의 것'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대비가 된다.


마지막 14절에서 예수님은 재물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를 얘기하시며 이 비유의 방점을 찍는다.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은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이 명확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재물과 하나님 두 주인을 같이 섬길 수 없다.


불의의 재물은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이루기 위한 작은 수단일 뿐이며 우리 것이 아닌, 청지기처럼 잠시 맡아 둔 하나님의 것에 불과하다. 언젠가 이곳의 청지기 일자리 곧 삶을 잃었을 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된 하나님의 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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