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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May 09. 2024

존이 죠이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영화, <죠이>


죠이 (Something for Joey, 1977)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어릴 때 아주 재미있게 혹은 감동적으로 보았는데 그 이후에는 본 적이 없는 영화 한 편쯤은 꼭 있을 것 같다. 요즘은 오래된 영화라도 복원되어 DVD로 발매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시 접하게 되는 영화도 있지만 여전히 보이질 않아서 아쉬움으로 남는 영화도 있다. 1977년의 겨울에 봤던 영화 <죠이>가 바로 그런 영화다.


<죠이>는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는 소위 ‘브로맨스’를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대학생 형과 초등학생 동생이니 제법 나이 차이가 있는 형제간의 이야기로 미국에서 벌어진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고라는 수식어를 써도 될 정도로 인기스포츠, 미국인만의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식축구가 얽힌 영화이기도 하다. 미식축구 선수인 형 존(마크 싱어)과 3살 때부터 백혈병을 앓고 있는 동생 죠이가 주인공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해인 1973년을 기준으로 하면 존은 21세, 죠이는 11세이던 때의 이야기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끔찍하게 응원하는 동생 죠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형 존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아백혈병 환자는 발병한 지 3개월을 넘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살부터 백혈병을 앓기 시작한 죠이가 발병 후 9년 이상을 살아낸 것은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치료에 따르는 고통을 견디어 낸 죠이의 의지가 더해진 결과였다. 당시 척수액 유출검사 시에 환자에게 발생하는 고통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영화 속 대사로 등장한다. 그런 고통을 정기적 검사를 받을 때마다 겪어야 하고, 며칠간 숨쉬기조차 곤란할 만큼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가족들이 포기하기 직전까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는 죠이였다. 실제적으로 모진 일을 감내하고 있었던 이는 어린 죠이였던 것이다. 그런 죠이의 힘겨운 상황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았다.      


조이가 절실히 바라는 소망은 존 형이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죠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존은 죽도록 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미식축구에서 한 경기에 한 번 하기도 힘든 터치다운을 자신의 생일선물로 4번씩이나 요구할 정도로 죠이는 집요하게 형을 독려한다. 해내도 요구하고, 해내도 또 요구하는 식으로 계속 대단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이다. 병으로 힘든 어린 동생을 위해서 죽으라고 열심히 뛴 형에게 주어진 결과는 미국 대학 미식축구 최고의 영예인 하이즈먼(Heisman) 트로피였다. 1973년 하이즈먼 트로피의 수상자 존 카펠레티(John Cappellietti)가 바로 죠이의 형 존이다.     


부산의 신문에 올려진 <죠이>의 광고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영화는 끝이 나도 한동안 불을 켜지 않습니다.
그동안 살짝 눈물을 닦아 주세요.”   

  

영화 전반적으로 신파적인 장면이나 의도적으로 눈물을 유도하려는 장면은 없다. 그런데도 울릴 자신이 있다는 카피 문구까지 등장하게 된 이유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존이 하이즈먼 트로피를 받으면서 수상소감을 밝히는 장면에서다.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제일 뒤에 하는데, 죠이에 대해서는 그중에서도 제일 뒤에 얘기한다.      


내 동생 죠이는 백혈병 환자라고. 자신은 시합할 때만 힘들지만, 내 동생 죠이는 쉴 새 없이 죽음의 병마와 싸우고 있다고. 그 고통과 인내심은 자신을 훨씬 추월하는 것이기에 이 하이즈먼 트로피는 죠이의 것이라는.     

 

죠이에 대한 사연을 밝히는 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할 때부터 시상식이 끝나자 제일 먼저 포옹하는 형제의 모습까지다. 영화는 끝나도 불을 켜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져야 할 ‘그동안’이 필요하게 만든 장면이 말이다. 눈물이 나오지 않게 막아 내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친구와 같이 갔었는데 불이 켜져도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죠이(본명 조셉 J. “죠이” 카펠레티)는 존이 지켜보는 가운데 1976년 4월 8일에 생을 마감했다. 죠이와 존의 사연은 미국 스포츠계 역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꼽히고 있다. <죠이>는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도 내러티브의 구성 면에서도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잔잔하게 깔리는 주제음악도 딱 어울리는 멜로디라서 들을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된 소품이지만 충분히 감동을 안겨주었기에 잊을 수 없는 영화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 영화관에서 본 이후로는 스크린으로 만난 적도 없고 좋은 화질의 영상으로 나타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언젠가 <죠이>를 좀 더 크고 깨끗한 화면으로 볼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보련다. 그날이야말로 짧지만 힘차게 살았던 이야기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물했던 ‘조이’의 영혼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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