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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May 10. 2024

누가 이소룡에게  발차기를 가르쳤을까?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영화, <흑권>


흑권 (跆拳震九州, 1973)


1973년 추석은 초딩으로선 마지막 추석이었다. 그래서 슬슬 어른들의 손을 놓고 나의 의지로 뭔가를 저지르고 싶은 때이기도 했다. 초딩 마지막 추석 때의 영화 모험도 그런 것 중 하나였다. 굳이 모험이라고 하는 건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극장에 영화 보러 가기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선택한 영화는 <정무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한 이소룡 영화가 <정무문>이었는데, 입소문이 엄청났었기에 그걸 보겠다는 생각에 일치를 본 것이다.     


나름 잔머리를 굴려서 서면 쪽에 위치한 극장에 가기로 잔머리를 굴렸다. 잔머리를 굴린 것은 ‘입장가’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정무문>은 ‘고교생 입장가’였기 때문에 남포동 개봉관에서 초딩 냄새나는 애들을 넣어주지 않을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좌석수와 상관없이 손님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서면 극장에서는 봐줄 거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고교생 이상만 받아도 손님이 차고 넘치는 상황까지 짚어내지는 못했다. <정무문>을 상영하는 극장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기겁을 한 우리는 재빨리 포기하고 대안을 마련했는데, 그 대안으로 선택된 영화가 바로 <흑권>이었다. 선택 기준은 표를 사려는 줄의 길이로 어림해 보니 관람 가능하겠다 싶기도 했고, 입장 기준이 ‘중고생 입장가’였기 때문이었다.     


<정무문>의 대안이긴 했지만 당시로선 <흑권>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인 영화였다. 신문광고만으로 평가하자면 <정무문>보다 한 수 위의 영화일 수 있었다. 주연을 맡은 태권 사범 이준구를 이소룡의 스승으로 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권도 초고수로 발차기의 달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위안으로 삼으며 <흑권>행으로 갈아탄 것이다. 하지만 <흑권>을 보려는 줄도 만만찮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야 근근이 입장권을 구할 수 있었다. <흑권>도 엄연히 명절 특수를 노린 쟁쟁한 ‘추석 특선 프로’ 중의 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준구’의 발차기였다. 이소룡의 스승일 만큼 태권도의 달인이라는 신문기사까지 실렸으니까. 특히 이소룡에게 발차기를 가르쳤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니 얼마나 발차기를 잘하는지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이소룡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기사나 광고까지 실은 걸 보면 이소룡 영화는 개봉만 하면 인기몰이를 하리란 예상은 이미 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준구 주연 영화 선전에 이소룡을 내세울 리가 없으니까. 서울에는 이소룡 주연 영화 <정무문>이 이미 개봉된 상황이었지만, 부산에는 <정무문>과 <흑권>이 동시에 개봉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소룡의 전설보다는 이준구의 현신(現身)을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액션 영화의 전설이라는 이소룡을 가르칠 정도의 무술가라니 어린 우리들로서는 이준구의 무술 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게 감상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발차기도 멋있다고 떠들었던 게 당시의 기억이다.  



그해 이후로는 <흑권>을 본 적도 없고,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그렇게 잊힐 뻔한 <흑권>을 다시 기억 속에서 살려낼 기회는 OTT 채널에서 얻었다. <태권진구주(跆拳震九州)>란 홍콩 영화를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흑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상을 오롯이 기억은 못 하지만 “맞다! 바로 저 장면! 분명히 기억난다!”을 연발하면서 오랜만에 추억의 영화를 감상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기억 어디엔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을 재수 좋게 발견한듯한 기분까지 느껴가면서.      


영화 개봉 당시의 느낌을 나름 되살려낼 수 있었던 장면은 연기자들의 발차기 동작 덕분이었다. 프랑스 여인 마리 역을 맡은 앤 윈튼의 발차기 동작이 그 첫 번째 발견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눈에 태권도임을 알아챌 수 있는 절도 있는 발차기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무술영화의 최고 인기 배우라면 왕우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를 비롯한 홍콩 무술영화에서의 액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절도감을 감지한 것이다. 이소룡 이후에는 그의 영향 때문인지 힘과 각이 뚜렷이 보이는 액션으로 변화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절도 있는 액션은 그다지 보질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흑권>에도 당시 인기 있던 홍콩 배우 모영(안젤라 마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전형적인 홍콩 영화다운 액션을 보여 주지만, 이준구를 비롯하여 앤 윈튼 등 태권 유단자들의 절도 있는 동작에서는 그것과는 뭔가 다르다는 차별감을 느꼈다는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전문배우도 아닌 이준구라는 무도인(武道人)도 이소룡과의 인연 때문에 배우로서 나서게 되었을 것 같다. 이소룡같이 무술이 출중한 배우를 구하기는 쉽지 않으니 무도인 중에서 무술영화의 주역을 찾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소룡 같은 힘 있고 절도 있는 동작을 연기로 익힐 수는 없으니 이미 그런 근력과 기술을 구비하고 있는 전문 무술인(武術人)을 찾아 썼을 것 같다. <흑권>의 우리나라 포스터에 배역을 맡은 사람들의 무술 실력을 적어둔 점도 재미있다. 이준구 태권도 7단, 앤 윈튼 태권도 2단, 모영 검도 초단, 황인식 합기도 7단, 홍금보 합기도 3단... 무술을 제대로 익힌 사람들이 영화의 주요 배역이란 선전 즉 연기가 아니라 진짜 무도인들의 리얼한 액션을 볼 수 있다는 선전인 셈이다.  


지금의 화려하고 절도 있는 동작과 비교하면 엉성해 보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액션이지만, 이준구의 절도 있는 발차기 동작을 보면서 꽤 힘차게 느껴졌던 당시의 감정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독립투사 이준동 역할을 맡은 이준구가 첫 장면부터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나와 절도 있는 태권도 동작을 다이내믹하게 보여줬던 영화였다. 올림픽 메달 하나에도 흥감하던 시절에 재미동포 태권도 사범이 주연한 영화 <흑권>의 우리나라 흥행의 성공은 태권도의 느낌 덕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느낌! 그 누가 뭐래도 영화배우 이소룡의 발차기는 태권 사범 이준구로부터 나왔다고 믿고 싶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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