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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May 11. 2024

오만한 순수가 빚은 일그러진 사랑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영화, <적도의 꽃 >

적도의 꽃 (1983)


1983년 12월 3일, 남포동 부산극장으로 부리나케 내달렸다. <적도의 꽃>이 개봉하는 날이라서다. 우리나라 영화를 달갑잖게 생각하던 친구까지 온갖 감언이설로 꾀어서 데리고 가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안성기의 연기에는 웃음과 감탄으로 박수를 보냈고, 장미희에게 저런 매력이 있을 줄이야라고 생각하며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안성기의 내레이션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명예와 욕망과 물질에 눈이 시뻘건 사람을 경멸하고 있다. 
난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스터 M(안성기)이 자신을 숨기면서 선영(장미희)을 쫓아다니며 벌이는 모든 일이 오로지 나이브한 청년의 순수함으로만 보였다. 선영을 괴롭히는 상대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응징하는 모습이 통쾌하기조차 했다. 순수함을 믿어 의심치 않으려고 선영의 어떤 모습도 사랑스럽게만 보려 했다. 선영의 자살로 끝난 결말 또한 애절한 로맨스의 기가 막힌 엔딩일 뿐이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한 순수한 사랑도 저렇게 안타깝게 막을 내릴 수 있다고만 생각하며 술을 마시면 <적도의 꽃> 얘기하기 바빴다. 아니 <적도의 꽃> 얘기를 떠들고 싶어서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미치도록 좋아했던 영화였다.


어느 날 OTT 채널에서 <적도의 꽃>을 발견하자마자 한 번 더 보기를 감행했다. 기억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숨은 듯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을 것 같은 당시의 감성을 다시 꺼내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맥주 두 캔을 마시고 나서 남은 두 캔을 스탠바이 시켜놓은 다음 <적도의 꽃>을 시작하라 명했다.


사막 같은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고, 노부부가 힘들게 걸어가는 가로수 길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품하는 미스터 M의 모습이 보인다.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생각나는 장면이 이어지는 걸 기뻐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예전의 감정이 기지개를 켜기는커녕 낯선 감정이 황급히 일어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카메라를 아무 데나 들이댈 수 있나. 젊은 여성을 시시콜콜 모르게 쫓아다니는 건 스토커 아닌가. 사랑한다고 남의 집에 맘대로 들어간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곤란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남의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고, 사람을 유인하여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잘라버리고, 조깅하는 사람을 자동차로 위협해서 언덕 밑으로 떨어트리고. 죽자고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배신감 느껴지니까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약한 여인을 한적한 곳에 데리고 가서 폭언과 폭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상처받은 여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거두었는데도 감상적인 말이나 주절거리기까지... 도무지 순수한 청년이 할 짓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저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찬란한 순수와 가슴 절절한 사랑만이 보였던 그 시절의 나는 뭐였지?      


이번 <적도의 꽃>은 그런 처참한 모양으로 시들어 버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든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는 식의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했던 추억의 영화를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데 놀랐다. 내 눈에 씌었던 콩깍지가 벗겨진 것일까? <적도의 꽃>을 보며 오로지 인정하고 싶은 구석에만 연연했던 그 시절의 내가 보이더란 것이다. 그런 틈이 생기자 외국영화 한 편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콜렉터(The Collector, 1965)>란 영화다. 나비 수집가인 청년이 매력적인 여성을 수집하듯 감금해 두고 지켜보는 사이코드라마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분명한 사이코이고, 마지막 장면까지 그런 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였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고민만 듬뿍 담겼다고 생각했던 <적도의 꽃>에서 갑자기 <콜렉터> 같은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다니. 

    

성인이 되면서 우리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려던 차에 나타난 사람이 <적도의 꽃>을 연출한 배창호 감독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들려는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시껄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당시 우리 영화에 대한 불신에 빠져있던 관객의 입장으로는 솔직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만들겠다는 각오로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배창호 최인호 콤비 시대의 막이 열리려는 참이었고, 그 첫 작품이 바로 <적도의 꽃>이었다. 그런 정황에서 나온 영화를 보고 기대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얻었다고 생각했으니 눈에 콩깍지가 씔 수밖에.      


이번에 <적도의 꽃>을 보면서는 <콜렉터> 같은 영화를 한국판으로 만들면서 사이코가 아니라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해봤다. 미스터 M의 행적만 본다면 사이코로 보일 수밖에 없지만, 순수와 사랑이란 단어로 장식된 첫 내레이션으로 미스터 M의 이미지를 치장한 다음이니 과도하고 거친 모습을 보이더라도 불순한 인간에 대한 분노와 응징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관음증으로 보일 수 있는 기록성, 스토커로 보일 수 있는 추적성, 소시오패스로 보일 수 있는 공격성까지도 모두 갖춘 미스터 M이지만 그의 목적은 ‘순수한 사랑’에 있었기에 용서가 되는 그런 셈이다. 어쨌든 그런 셈이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정확하게 적중했다. 미스터 M의 집착과 선영의 희생이 청춘의 치기라는 너울 너머로는 순수한 사랑으로만 보였으니까.     


<적도의 꽃>은 지금 봐도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다. 다시 생각하면서 콩깍지가 벗겨진 데 대한 아쉬움도 없다. 순수한 사랑에만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봤던 그 시절에 우러났던 감성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사랑을 핑계로 온갖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오만함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깨지고 찌그러져서 울퉁불퉁한 모양보다는 예쁘고 반듯한 모양으로 간직하고야 말겠다는 그 시절의 집착이 만든 결과일 것이다.  


치열하게 본 영화일수록 세월 지나도 할 말이 많아지나 보다. 자신의 감성을 아낌없이 바치며 좋아했던 영화에서는 바로 자신이 보이니까 말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적도의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생긴다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이 떠들어댈 것만 같다. 그때에다 지금을 보태서 얘기하려 들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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