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밥 May 14. 2024

나의 첫 번째 영화음악 음반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음악, <4 채널 액션 스크린 뮤직 컬렉션>


4 채널 '액션' 스크린 뮤직 컬렉션


1970년대에는 길을 걸어가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 있는 레코드점에서 항상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며 레코드점 쇼윈도에 걸려있는 레코드 재킷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쩍하는 섬광이 일 정도로 눈에 확 들어오는 음반이 있었다. 재킷 앞면을 브루스 리(이소룡)의 유작 <용쟁호투 (Enter The Dragon, 1973)> 의 한 장면으로 장식한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제목은 <4채널 "액션" 스크린 뮤직 컬렉션>으로 되어 있었다. 이소룡의 광팬이었던 중딩으로서는 끌릴 수밖에 없는 외관을 가진 음반이었다.


당시 저렴하게 유통되던 속칭 '빽판'이 아니고 소위 '라이선스 음반'이라고 부르던 정식 음반이었기 때문에 거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이걸 사야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음반의 재킷 앞면 만을 보고도 결단을 내린 상황이었는데, 재킷 뒷면에 적혀있는 수록곡을 보는 순간 기절할 뻔(?) 했다.


재킷에는 제목이 영어와 이태리어로 되어 있어서 영어제목을 보니 <용쟁호투>, <당산대형>, <외팔이 드라곤>... 이소룡과 무협영화라면 무조건 땡큐하던 시절이었으니 정말 '대박'이었다! 이소룡의 멋진 스틸사진으로 장식된 재킷에다 이소룡 영화 <용쟁호투>, <당산대형>, 왕우 영화 <외팔이 드라곤> 주제곡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정말 대박이었던 것이다. 좀 더 정신차려 살펴보니 <이것이 법이다>, <빅건>, <빠삐용>, <포세이돈 어드벤처>, <007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곡까지 수록되어 있었다. 주연 배우의 이름만 나열해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랭 들롱,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만, 진 핵크만, 로저 무어... 밀당이 필요 없었다. 그냥 게임 이즈 오버였다.


1974년 부산 광복동에 위치한 음반매장 '명성레코드'에서 거금 1,300원을 투자하여 산 첫 번째 라이선스 음반이었다. 정말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용쟁호투>의 메인테마는 4채널이라고 선전한 만큼 소리가 분리되어 있어서 두 스피커에 각각 다른 소리를 담아 두었다가 꺼내서 들려주는 듯 했고, 곡이 끝날 즈음 들리는 드럼 연주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한 스피커에서 다른 스피커로 이동하면서 옮겨가며 두드리는 듯한 그 소리가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오리지널 사운드를 싣고 있지는 않다. 음반에  'Michel Clement Et Son Orchestre' 라고 적혀 있다. 한때 우리나라 라디오에서 영화음악 시간만 되면 엄청나게 많이 소개되던 이름 미쎌 끌레망, 모리스 르끌레르... 바로 그 미셸 끌레망 악단 이다.  <용쟁호투>는 <더티 해리>등의 음악으로 유명한 랄로 쉬프린(Lalo Schifrin)의 곡이 원곡이지만,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 음반에 실린 미셸 끌레망 버전이 더 익숙해 졌을 정도다. 하루에 <용쟁호투>의 메인테마만 해도 열 번은 더 들었던 것 같다. 혼자만 듣기 아까워서 친구들을 열심히 불러와서 들려주기까지 했으니까. 좋은 곡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이라서 다른 곡들도 다 들을만 했지만, 기대치 않았는데 귀에 쏙 들어온 곡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황야의 조>라는 영화의 주제곡이었는데,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 영화의 분위기여서 당시 중딩에게는 딱이었다. 멜로디가 예쁘면서도 비장함을 띠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재킷 뒷면에 실린 알랭 들롱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개봉했던 <빅건>이란 영화의 스틸 사진이다. 장-폴 벨몽드의 <상속인>, 안소니 퀸과 프랑코 네로의 <로스 아미고스>, 흑인 무도인 짐 캐리의 <블랙 벨트 존스>라는 영화는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라디오의 영화음악 시간에는 제법 전파를 탔었다는 기억이다.


음악이란 건 많이 들으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좋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 게 바로 이 음반이었다. 미셸 끌레망 편곡의 이 영화음악 모음집은 소리가 튀기는 해도 지금도 한 번씩 턴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나의 첫 영화음악 음반'이자 그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음반이라서다.


Side 1

1. Enter The Dragon - Main Theme / 용쟁호투

2. Black Belt Jones / 블랙 벨트 존스

3. Il Mio Nome E Shanghai Joe / 황야의 조

4. Theme From "Magnum Force" / 이것이 법이다

5. I Giorno In Piu L'ultima Volta From "Big Guns" / 빅건

6. L'usine Theme From "L'hertier" / 상속인


Side 2

1. The Big Boss / 당산대형

2. One Armed Boxer / 외팔이 드라곤

3. Free As The Wind From "Papillon' / 빠삐용

4. Morning After Theme From "Poseidon Adventure" / 포세이돈 어드벤처

5. Live And Let Die / 007 죽느냐 사느냐

6. The Ballad of Deaf and Ears Theme From "Los Amigos" / 로스 아미고스



작가의 이전글 오만한 순수가 빚은 일그러진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