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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엑소시스트는 어떤 사람?

영화단상 / 검은 수녀들 (2025)

by 김밥

* 이 리뷰는 2025년 2월 15일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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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Dark Nuns, 2025)


<검은 수녀들>은 오랜만에 기대를 하고 본 영화였다. <검은 사제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대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영화 소재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는 걸 기대하는 심정이었다. 더 이상 신부가 아니라 수녀가 활약하는 오컬트 영화 한 편이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는 것이다. <검은 수녀들>의 개봉일이 2025년 1월 24일이었는데, 영화 상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개봉하자마자 예매율인지 관객 동원인지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뜨는 걸 보고 기대가 부풀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는 것이었다. 잘못하면 영화관에서 보겠다는 마음이 꺾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를 본 첫인상을 말하자면, 빵 하고 터지는 게 아니라 푸시시하고 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왜 실망스럽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대략적 느낌이 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떤 지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관람평을 훑어보았다. 과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적을 가닥가닥 골라서 총망라한 걸로 보일 정도의 리뷰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유명 일간지 문화부 기자가 쓴 것으로 영화가 개봉한 날짜에 올린 칼럼이었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았으니 리뷰라도 써 볼 작정을 했었는데, 그런 지적들을 보고 있으니 쓸거리가 한 움큼씩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다시 지저귀는 모양새도 웃기겠다 싶어서 관둘까 하다가 이왕 기대했던 영화를 감상한 것인 데다 보고 느낀 바도 있었으니 그런 느낌조차 몽땅 사라지기 전에 정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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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느껴진 부분을 한 가지만 지적하라면,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였다고 답하겠다. 유니아 수녀(송혜교)와 미카엘라 수녀(전여빈)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것이다. 유니아 수녀는 어두운 배경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 거친 이미지로, 미카엘라 수녀는 똑 부러지는 어투로 AI 같다는 얘길 듣는 냉정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주요 인물을 도입부부터 그렇게 등장시키는 건 그런 캐릭터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작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각 잡고 내밀었던 카드가 생각대로 작용했냐는 점이다. 유니아와 미카엘라의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설정이 애를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행동이나 언사(言辭)가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심심하면 담배를 꺼내 물거나 애써 거친 말투를 입에 올리는 유니아의 모습을 보고 드라마 <글로리> 주인공을 재사용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미카엘라의 경우는 그녀만의 뚜렷한 특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란, 관객이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것이지 대사 한 마디나 액션 하나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캐릭터 설정에 집착한 나머지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가져다 붙인 모습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나 싶다. 개연성의 부족이나 연출력의 문제라는 지적은 캐릭터 설정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나 싶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야 고민해서 설정해 둔 캐릭터 카드를 내밀었겠지만, 수녀 엑소시스트의 등장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보는 관객 모두에게 그것이 스무드하게 다가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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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검은 수녀들>에 한 가지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악마가 견디기 힘들 거라는 주장을 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다. <검은 수녀들>에서 악마에 대항하기 위해 뭉쳤던 연대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이런 스타일의 오컬트 영화라면 1975년의 영화 <엑소시스트>를 시작으로 꼽기도 하는데, 가톨릭의 엑소시스트 신부와 악령의 싸움이었고 장렬한 마무리 장면이 감동적인 영화였다. 그 비슷한 영화들은 많이 만들어졌지만, <엑소시스트>하면 떠오르는 우리나라 영화는 2015년의 <검은 사제들>이었고, 그것의 성공에서 비롯된 영화가 <검은 수녀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같은 종류의 '엑소시스트'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남성이 주로 맡았던 엑소시스트 역할을 여성에게 넘겨서 만들어진 서사라는 점이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두 사람의 수녀가 힘을 합해 부마자를 구한다는 측면에서, 언론에서는 여성연대의 힘을 발휘하는 영화라고 소개하는 기사가 많았다. 전면에 내세운 여성인 수녀 두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여성 또한 있었는데, 우리나라 무속의 엑소시스트라고 할 수 있는 무당 효원(김국희)의 등장이 그것이다. 가톨릭 엑소시스트에 우리나라의 무속 엑소시스트가 힘을 보탠 것이다. <검은 사제들>에서도 무당의 굿하는 장면이 보이기는 했지만 <검은 수녀들>에서는 아예 협업을 하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 관객 입장에서는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발상이기도 하고.


무당은 무속(巫俗)이라고 하는 풍속 - 민간 신앙으로도 여겨지는 - 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여성이다. 그래서 무당 하면 여성을 떠올리는데, 이 영화에서는 결정적 순간에 두 사람의 수녀를 지원하는 무당으로 여성이 아닌 남성 무당 - 박수 혹은 박수무당이라고도 부르는 - 애동(신재휘)이 역할을 한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여태껏 엑소시스트를 맡았던 가톨릭 신부(남성)의 역할은 수녀(여성)에게 넘긴 셈이지만, 무속 엑소시스트 여성 무당의 역할은 남성 박수가 맡는 구성으로 나름 조화를 이룬 연대라는 점에서다. 우리나라로 넘어온 악마나 악령들은 다른 나라에서보다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란 논리(?)는 이런 연대를 두고 나온 말이다. 즉 여태까지의 엑소시스트 영화에서 가톨릭교에서 비롯된 구마 사제(신부)들이 악마와의 싸움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장면을 보여준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면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검은 사제들’이 역할을 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성 연대 ‘검은 수녀들’이 나타나서 힘을 보태더니 그것에 더해서 무속의 ‘무당’과 함께 ‘박수무당’까지 악령 퇴치 사업에 지원하고자 나섰으니 말이다. 이만한 연대의 세력이라면 어지간한 악마라도 버텨내기 어렵지 않을까.


<검은 수녀들>은 여러 면에서 기대감이 제법 높았던 영화였다. 2025년 2월 15일 현재, 누적 관객수가 163만 명에 정도라면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검은 수녀들>은 요철(凹凸)이 분명하게 드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만큼의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쉬우나마 볼 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평가는 받았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이 영화에 이어진 후속작이 나온다면 어떤 형태로 엑소시스트 캐릭터를 이어갈지 궁금하다. 신부 아닌 수녀 엑소시스트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니까. 이 영화가 남긴 아쉬움을 어떻게 극복해 낼지 후속작이 보고 싶기도 하다. '검은 사제들' 그리고 '검은 수녀들'에 이어지는 제목이 어떻게 붙여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쉬움에 대한 얘기는 길게 해 놓고 후속작에 대한 궁금함으로 마무리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남은 미련이야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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