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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May 22. 2024

하느님! 방해만은 말아 주세요!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쳐>


포세이돈 어드벤쳐 (The Poseidon Adventure, 1972)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중학교 1학년 봄소풍을 다녀오는 길에 본 영화였다. 스스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빵집이나 극장 갔다가 걸려서 정학 먹었다는 얘기를 수북이 들었음에도 감행한 한 첫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도중에 한 친구가 불쑥 한 얘기 때문에 찜찜한 마음을 꽁꽁 싸매고 본 영화이기도 했다. 극장에 들어올 때 어떤 아저씨가 자기 이름표를 본 것 같다고 한 것이다. 교복 입은 채로 들어온 게 불안하던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런데도 기어이 엔딩 크레딧을 보고서야 나오는 용기를 발휘했던 영화이기에 자화자찬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사춘기 소년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던져 준 영화이기도 했다. 주인공 프랭크 스콧 목사(진 핵크만)의 언행이 근원지였다. 목사가 어떠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겠지만 상식적인 성직자로 보기에는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중딩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성직자 상은 근면 성실하고 사랑이 충만한 모습이었다. 오래된 영화 속 캐릭터에서 찾자면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의 그루피드 목사(월터 피전), <나의 길을 가련다 (Going My Way, 1944)>의 오말리 신부(빙 크로스비) 같은 사람이다.


세상에 저런 목사가 있다고? 기도를 왜 하느냐는 목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괴팍하기만 한 말과 행동에 어떤 마음이 담겨있었는지 알고 보니 정직한 성직자였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확실한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조연 캐릭터들도 만만치 않았다. 검거한 창녀를 사랑하여 결혼한 형사(어네스트 보그나인), 우습게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외판원(레드 버튼즈), 손자를 보기 위해 먼 항해를 결심한 수영선수 출신 오동통한 할머니(셜리 윈터즈), 예쁜 소녀(파멜라 수 마틴)와 귀여운 꼬마 신사, 약하지만 착하기만 한 가수 아가씨(캐롤 린리), 판단에 거침없는 창녀 출신 아주머니(스텔라 스티븐스)가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거칠면서도 따뜻하고 때로는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대사들이 기막힌 감초 역할을 하고 있기에 솔직하고 투철한 신념을 가진 목사의 행동이 더욱 빛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합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어울리더란 것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백미라면 '바로 그 장면'에 의견일치를 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콧 목사의 괴팍한 진정성이 극에 달하는 장면이다. 살아 나가기까지 어쩌면 쉬워 보이는 마지막 관문만 남은 것 같은데, 뜨거운 증기라는 걸림돌이 생존자들의 길을 가로막는 위급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거기서 최후의 수를 과감하게 던진 사람은 스콧 목사였다. 목숨을 버릴 작정으로 밸브에 매달리며 내뱉는 대사가 파격이자 감동이었다.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다.


하느님,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 도움 없이 해 냈어요.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방해만은 말아 주세요.

여태까지 죽은 목숨으로 부족합니까?

한 명 더요? 그럼 날 데려가세요!


밸브를 잠근 후에 지쳐서 불바다 물속으로 떨어지는 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런 식으로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드라마는 장렬하게 막을 내렸다.



스콧 목사는 인간으로서 ‘진정한 용기’가 어떤 것인지를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지켜보고 있으면 차가웠던 가슴은 데워지고 답답했던 가슴은 뚫릴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영화를 보면서 들켰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조차 내치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었다. 말이 필요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의 그런 행동에 무슨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용감한 말과 장엄한 행동 덕분에 꽉 채워진 중딩의 가슴에는 껄렁한 세속적 핑계가 들어앉을 틈조차 없어졌다는 기분이었다. 그때 스콧 목사가 두드린 울림을 제대로 전달받은 관객이라면 아직까지 그 여파(餘波)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태는 말 

영화에서 캐롤 린리가 부른 노래이자 가수 모린 맥거번(Maureen McGovern)이 부른 노래 ‘The Morning After’는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획득한 노래다. 거친 날씨에 크나큰 파도가 지나가고 나서 밝아오는 아침에 보기 좋을 정도의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 같이 들려오는 노래 같아서 참 좋아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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