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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에 '봄밤'을 들으며 봄나들이 '나비'를 보다

영화단상 / 봄밤 (2025)

by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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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Spring Night, 2025)


2025년이 가기 전에 본 게 참 다행스럽다.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그때를 넘기면 언제 볼지 혹은 못 보게 될지도 모르는 게 영화라서다. 아주 인상적인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봄밤>이란 영화가 그 영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영화 리뷰를 써보겠다는 작정을 했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고민스러운 영화가 있다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은 영화도 있다. <봄밤>은 둘 다에 속하는 느낌이다. 만남, 이별, 술, 사랑, 병, 삶, 시, 음악...... 우리 곁에 언제나 있는 요소들에 공감하며 보았기에 말하고 싶은 건 많을 것 같았지만 도대체 어떤 얘기를 꺼내야 내가 느낀 인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글쎄... 사랑 이야기? 요즘도 영화에서는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이 이야기 역시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이야기는 흔히 보던 것과는 다르다. 볼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전하자면, “너무 아픈 것”이었다. 좌절(挫折)에 빠진 그들의 통절(痛切)함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해도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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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관절염 환자와 알코올 중독자, 국어 교사와 철공소 기능공, 노숙자와 유주택자...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어떤 곳에서 만나고, 어떤 점에서 뜻이 맞고, 어떤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단순히 보고 따져서는 답이 나오기 어려운 설정이다. 그렇다면 한 꺼풀을 벗겨내서 보자. 두 사람 다 어느 순간 벌어진 물리적 정신적 충격으로 살아오던 대로 살기가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친구 결혼식으로 마련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은 끝까지 술을 마셨고, 나머지 한 사람은 끝까지 그를 상대해 주었다. 술 마신 사람은 국어 교사였으며 집도 가지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 그를 챙겨준 사람은 철공소를 운영했으나 망해버린 노숙자이자 중증 관절염 환자였다. 서로를 지켜주기는 힘들지만 서로 지켜보며 웃어주고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사람끼리 뭉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었다. 어떻게 해줄 수 없지만 그저 서로가 무사하기만 바라는 마음. 그저 서로를 온화하게 바라볼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봄밤>의 주제를 사랑으로 보자면, 이만큼 절실한 사랑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그 사람의 곁에 있고 싶고,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사람이 탈 없기를 바라고, 그 사람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들은 서로에게 그런 마음을 가졌으니 틀림없이 사랑이다.


두 사람은 같은 요양원에서 각자의 병환을 달래며 같이 사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알코올 중독의 영경(한예리)은 한 번씩 요양원을 떠난다. 도저히 술이 생각나서 못 참을 단계에 이르렀을 때다. 관절염으로 걷지 못하게 된 수환(김설진)은 그저 돌아오라는 얘기만 건네며 영경을 배웅할 뿐이다. 요양원 의사와의 약속 기한도 못 지킬 정도로 술에 빠지면 언제 올지 모르는 영경이지만 그래도 웃으며 떠나보내는 수환이다. 지금까지 영경은 어떻게든 돌아왔다. 수환이 기다리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 올지 몰라도 휠체어에 앉아서 기다리는 수환과 어떻게든 꼭 돌아오려고 기를 쓰는 영경이 만나는 장면은 <봄밤>의 아픔에 방점을 찍는다. 빤히 앞에 보이는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 모른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휘청거리며 기어가서 기어이 만난다. 근근이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서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영경, 어떻게든 그 몸을 지키려 붙잡는 수환의 모습은 그들의 통절(痛切)함 그대로였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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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은 요즘 보기 드문 우리 영화다. 무척이나 아프고 고통스럽고 절박함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음에도 그렇게 구구절절한 묘사가 없어서다. 온갖 주장을 실어서 강한 임팩트를 주려고 애쓰지 않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를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문득 얼마 전에 본 영화의 제목이 생각났다. 어쩔 수가 없다는 건 이런 상황에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이 영화에 그런 제목이 어울린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마지막에 들리는 노래에 깜짝 놀랐다. 좋아하는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들을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다. "봄나들이..."로 시작되는 노래다 보니 영화의 제목 <봄밤>과 그 속에 나오는 시 ‘봄밤’에 어울린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영화의 제일 뒤를 장식하고 있는 노래다 보니 ‘뒷것’이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며칠 남긴 했지만, 올해에 본 가장 인상적인 영화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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