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아닌 인간을 연기한 게리 쿠퍼의 <하이눈>

영화 속의 배우, <하이눈>

by 김밥


<하이눈>하면 보고 싶어 애 많이 태웠던 영화라는 생각부터 든다. 제목을 알고 나서는 기다리고 기다려서 근근이 보게 되었으니까. 유명한 영화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랬겠지만 그걸 주로 어디서 들었냐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라디오 영화 음악 시간이었다. <하이눈>의 주제곡을 악단이 연주하는 버전과 가수가 노래 부르는 버전을 번갈아 가며 심심하면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물론 주연 배우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 이야기까지 해대니 얼마나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하이눈>의 주제 음악이 그렇게 많이 소개된 이유는 뚜렷했다. 이미 잘 알려진 노래이기도 했지만,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까지 받은 영화였으니까.


1976년의 편성표(경향신문)와 소개(조선일보)



1969년의 편성표(9월 10일, 조선일보)와 기사(9월 20일, 경향신문)



주제 음악은 그렇게 많이 들리는데도 영화는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사정이라도 있었나 싶어서 TV 방영 연도를 한번 찾아보았다. <하이눈>이 TV에서 처음으로 방영된 해는 1969년이었는데, 주말이 아니라 수요일에 방영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KBS의 ‘명화극장’에 대한 기사까지 났었는데, 거기에 <하이눈>이 방영할 예정으로 확보된 영화로 쓰여있었다. 웃기는 건 이미 방영되고 난 이후의 기사에서였다. 그다음으로 방영된 해는 첫 방영의 7년 후인 1976년이었다. 1969년과 1976년의 차이는 햇수도 물론이지만 개인적인 상황으로 보면 아주 큰 차이였다. 제목도 몰랐던 1969년과 제목은 물론 배우도 주제 음악도 알고 있었던 1976년은 달라도 너무 다른 해였으니까. 언제부터 <하이눈>을 들어서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몇 년간은 <하이눈>이 대단히 고팠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하이눈 (HIgh Noon, 1952)




영화를 알고 나서 팬으로 꼽았던 최초의 배우가 게리 쿠퍼였다. 그 점이 <하이눈> 보기를 열망했던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게리 쿠퍼의 신부로 나온 배우가 그레이스 켈리였기 때문이다. 배우보다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사람들에게는 더욱 이슈여서 알게 되었다. 너무 예뻐서 왕비가 되었다는 식으로 전해 들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거기에다 제일 앳되게 예뻤던 때의 영화가 <하이눈>이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궁금하지 않을 리가. 그런 얘기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하이눈>을 본 이후에는 어떤 여배우가 제일 좋은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 정해져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도 일종의 우리 문화 탓이 아닐까 싶다. 훗날의 얘기지만 그레이스 켈리는 할리우드 시절 스캔들로 유명했다고 할 만큼의 이력을 가진 여배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사실도 몰랐겠지만 '신데렐라'나 '콩쥐와 팥쥐' 같은 동화에 약한 구석이 많았던 탓에 왕비로 발탁된 그녀의 순결한 이미지를 지켜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못된 콩쥐나 신데렐라는 있을 수 없다는 절대적 믿음으로 말이다. 어쨌든 예쁜 스타일도 섹시한 마릴린 먼로나 뺀질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청순함이었고, 사춘기 소년의 눈에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다.





<하이눈>은 여러모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남긴 영화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로 이미 배우로서 하향세에 건강까지 좋지 않았던 게리 쿠퍼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순위로 겨우 뽑혔다고 할 정도로 게리 쿠퍼의 캐스팅은 말이 많았다고 한다. <하이눈>의 주인공 윌 케인 역할을 거절했던 배우들의 이름을 보면 기가 찰 정도다. 그레고리 펙, 찰턴 헤스턴, 말론 브란도, 커크 더글러스, 몽고메리 클리프트, 버트 랭커스터 등등 게리 쿠퍼보다 훨씬 젊고 잘 나가는 배우 일색이었으니까. 아무도 출연하지 않겠다고 거절한 영화에서 아카데미 주연상이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다 당시 게리 쿠퍼의 건강 상태 때문에 피곤하고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 오히려 <하이눈>의 주인공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하니 기가 막힌 캐스팅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일생일대라고 할 수 있는 연기가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여기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자면,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던 그레이스 켈리의 연기에 대한 것이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은 다소 경직되고 어색해 보였던 그녀의 연기가 오히려 어린 신부이자 남편의 위험에 대처하기 힘든 순진한 숙녀에겐 더 잘 어울려서 감동적이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녀를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도 공감 가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녀의 청순함이 더 빛을 발하지 않았던가?



<하이눈>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최고의 이슈는 당시 매카시즘(McCarthyism)이란 광풍이 불었던 미국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인공인 보안관 윌 케인(게리 쿠퍼)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두고 하원비미활동위원회(HUAC) - 당시 미국의 공산주의자 활동을 조사하는 임시위원회로 설치된 단체 – 에 맞서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한 걸로 해석되었던 점이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제각기 입장이 다르기는 했다. 각본가 칼 포어맨은 공산당원이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미국을 떠났던 사람으로 “정치적 박해에 대한 우화”로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감독 프레드 진네만은 “양심에 따라 결단을 내려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라면서 보다 보편적인 방향으로 해석했으며, 제작자 스탠리 크레이머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아카데미 작품상 – 작품상은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가 수상 - 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았지만 어떤 이념적 선전이 담기지는 않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어떤 이야기든 해석하기 나름이기도 하고, 영화란 누구 한 사람이 만드는 것도 아니니 어떤 말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의 평가를 보면 후세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우선 미국영화연구소(AFI)의 발표 자료를 보면, 1998년 최고의 영화 100편, 2001년 최고의 스릴러 영화 100편, 2004년 최고의 노래 100곡, 2007년 최고의 영화 100편 중 27위, 2008년 최고의 서부극 10편 중에서도 2위로 선정하는 등 계속해서 미국 영화 역사상 중요한 영화로 평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매체 여러 비평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자료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매카시즘에 관계된 정치적 의미로 높이 평가한다는 문구는 보이질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시대적 상황에 의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면이 있고 그것이 좋게 평가받을 면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만으로 중요한 영화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아닌가 보다.





<하이눈>의 기본적 설정은 서사적으로 서부극스럽다. 관록의 보안관이 아름다운 신부와 결혼하는 날 예전에 감옥에 보낸 악당이 돌아온단다. 복수를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세 명의 졸병까지 달고서. 그럼 1대 4의 대결이 예상되는데... 여기까지는 분명히 <하이눈>의 설정 그대로이고 서부극답지 않은가. 흔한 서부극 패턴으로 간다면, 살짝 고생은 하더라도 그냥 영웅다운 멋진 퍼포먼스로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을 처리하면 끝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지 않았다. 능력 있는 보안관으로 보였던 윌 케인이었지만 악당 프랭크 밀러 일당의 출현 소식에 전반적으로 심각한 위기감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보안관이 악당들과 대적하기까지의 과정이 보통 서부극과는 전혀 달랐다. 천하의 총잡이 게리 쿠퍼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굳게 믿었던 입장에서는 보안관의 약한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금방 결혼한 사랑스러운 아내까지 혼자 떠나게 만들지를 않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구걸하듯 구하러 다니질 않나, 철없는 부보안관과 주먹다짐하질 않나, 술집 주인 여자와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며 어정쩡한 모습까지 보이고... 종래 서부극의 영웅적 보안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 <하이눈>이 개봉된 해에 신문에 실린 영화 소개글 한편을 찾았다. 여기에 “보통의 서부극”과는 다르다는 논조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보통 서부극 같으면 주인공의 감투를 최대한으로 찬양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피하고 있다. 결론컨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용맹 무쌍한 영웅이 아니고 한갓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되돌아온 것도 시민의 원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중략) 말하자면 이것은 서부극의 형식을 빌린 인간 심리의 드라마이다. 쿠퍼는 그의 오랜 영화 경력 중에서도 굴지의 명연을 보여주고 있다.

(1954년 1월 15일 경향신문)


<하이눈>의 반전은 낯설어 보이는 보안관의 약한 모습에서 비롯된다.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방황하던 윌 케인이지만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게 되자 혈혈단신(孑孑單身)이나마 결사적으로 대적하는 모드로 바뀌었던 것이다. 판사도 시장도 주민들도 외면할 만큼 이겨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인간의 모습이 <하이눈>의 감동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잘 싸워 이기는 걸로만 묘사되어 왔던 서부의 영웅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비평가들은 <하이눈>에 “서부극 드라마(Western Drama)”나 “성인용 서부극(Adult Wester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액션에 치중하려는 간단한 구성이나 영웅적인 단순한 캐릭터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비평가 폴린 케일은 “서부극 형식을 은근한 시민교육에 사용”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세속적 작태와 결연한 도덕적 모델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간 드라마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겉핥기식 영웅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인간의 모습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도덕적 위선과 회피와 책임 중에 당신의 선택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 중의 하나가 <하이눈>이었다. 본새 나는 대답이야 간단하겠지만 거기에 필요한 용기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요즘은 예전의 서부극이나 무술 무협영화보다 더 세게 과장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게 대세다. 소위 마초맨인 그들이 스크린의 기술이 빚은 비현실적 영웅으로 군림하고 있는 셈이다. 고민 없이 만든 볼거리 영웅이 난립하는 시대라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영웅에도 영향을 미칠 것만 같다. 그렇다면 더욱더 생각할 구석이 있는 영화가 <하이눈>이다. 재미로 보고 넘길 슈퍼인간이 아니라 책임과 용기를 가진 진정한 인간의 모델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인간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붙여줄 수 있을까? 보안관 배지를 땅바닥에 던지고 떠나는 윌 케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미국의 한 평론가의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요즘 같은 과시용 스크린 영웅 시대에, 이 영화는 신화가 변질되기 전에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석한 작품으로 볼 가치가 있다. - 셰일라 존스턴(Sheila Johnston) -





보태는 말

<하이눈>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 개봉된 걸로 보인다. 처음은 1954년이었고, 그다음은 1962년이었다. 그때의 신문광고를 소개한다.


19540113 동아.jpg 1954년 1월 13일 동아일보
19620511 동아.jpg 1962년 5월 11일 동아일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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