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인게 어떻게 약점일 수 있겠어
에디터는 최근에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웬 대도시의 사랑법?’ 하며 의아한 표정과 함께 제목이 너무 트렌디 하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는데요. 뻔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일 것 같다는 추측만이 맴돌 뿐이었죠. 그러나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얼떨결에 영화를 보게 되었고, 영화가 끝난 후 멍하니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불완전한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느라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화였죠.
세상에 맞서 싸우는 여주인공 재희는 남들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늘 즉흥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사랑 앞에선 누구보다 저돌적이고, 본능적인데요. 재희역을 맡은 김고은 배우도 처음에는 대본을 읽고 ‘아 진짜 얘 왜이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고 하면서도, “연기할 때만큼은 사람들이 재희를 오해하지 않고 그 이면을 알게끔, 연기하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대본에는 재희의 마음들이 적혀 있으니까 저는 재희를 오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재희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낙인찍을 수 있겠다 싶었죠. 재희의 행동에 궁시렁거리기도 했죠.”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인터뷰 내용 중 배우 김고은의 말
그만큼 재희는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인데요. 커밍아웃한 남사친과 함께 동거하며 누구보다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끝까지 그와의 의리를 지킵니다. 강의실 단상 위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기도 하죠. 만약 우리가 현실에서 재희를 마주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아마 재희의 태도가 조심성 없어 보인다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로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 평가부터 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불완전함과 타인의 불완전함 모두 수용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재희처럼 “완벽은 추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오늘도 실을 거듭하는 81세의 패션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바로 요지 야마모토인데요. 그는 ‘착하고 순한 아들’로 유명했지만 자라면서 삶의 태도를 180도 바꾸기 시작합니다. 반항아의 길을 택한 것이죠. 그는 어두운 거리에서 어른의 타락과 욕망, 이기적인 계산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합니다.
요지는 패션 스쿨에서 패션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 후 어머니 일을 돕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많은 여성 고객들이 ‘여성성’에 포커스를 둔 섹시한 옷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가슴과 엉덩이를 최대한 돋보이게 하고, 허리는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조이는 옷을 요구한 것이죠.
“어머니가 열심히 일해서 만든 옷이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고객들이 남자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요지는 불편한 옷에 대해 환멸까지 느끼며 기존의 관습에 한 번 더 반항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에 따라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지 않은 펑퍼짐한,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옷을 출시해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또한 19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옷과는 정반대의 옷을 선보이며, 패션쇼에서 모델의 얼굴을 창백하게 보이도록 하고 검은색 계열의 옷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즉, 유럽인이 추구한 미와 정반대로 가면서 패션 언론은 그를 패션 문화를 모독한다며 비판하기 시작하는데요.
이에 굴하지 않고 요지는 “완벽함은 추악하다”, “좋은 조화는 지루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검은색의 마술사를 계속해서 펄쳐 나갑니다. “블랙은 이중적인 색입니다. 겸손하면서도 거만하고, 게으르고 편안하면서도 신비롭죠. 무엇보다 ‘당신은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그의 완고한 신념은 2024년 현재까지 20년 이상 팔리고 있는 블랙 소가죽 스파이크 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2년 출시된 이후 아디다스 콜라보레이션 브랜드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변 시선과는 상관없이 정해진 틀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용기는 온전히 나에 집중하며 나만의 실험을 했을 때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완벽을 쫓으며 하루하루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전에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하고 있는 일들을 먼저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아름다움은 불완전함에서 나오니까요. 세상엔 정답과 오답은 없습니다. 단지, 나에게 맞는 길을 가면서 정답을 오답으로 만들기도 하고, 오답을 정답으로 만드는 것이죠. 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 나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때로는 환멸도 느껴보고, 반항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