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과 <시대예보>로 바라본 현대사회
최근 디즈니 픽사 개봉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에서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인기를 끈 요인으로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K-장녀 성장기’ 같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샀습니다. 낯선 땅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자신을 키운 부모님을 보고 성장한 주인공 앰버는, 부모님의 뜻에 반하는 자신의 선택이 그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이에 부모님의 희생에 부채 의식을 느껴왔던 자식들의 모습을 제대로 투영했다는 평가를 받았죠. 결국에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는 앰버에게 수많은 한국 관객이 큰 위로를 받았다는데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부모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K-장녀의 딜레마가 공고한가 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라는 책을 읽으면서 ‘핵개인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저자는 한때 우리 사회의 구성단위를 핵가족으로 보던 시각에서 나아가 사회의 구성단위가 가장 기본단위인 개인 중심으로 쪼개지기 시작한 것을 포착하고 ‘핵개인의 시대’라는 용어를 소개합니다. 지난 수십 년 개인을 묶어 두었던 조직의 테두리와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져 흩어지고, 종국에는 각자의 역량과 생존을 고민하며 홀로 서는 개인의 시대가 왔다는 진단입니다.
이들의 동기는 ‘해야 된다’가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한다’입니다. 즉,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핵개인인거죠. 관습적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고민과 결정으로 행동을 옮기는 겁니다. 예를 들어 커리어도, 스스로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합니다. 남들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핵개인이 아닌 거죠. 같은 의미에서 ‘효’를 행해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는 것은 핵개인이 아닙니다. 핵개인의 시대에는 가족에 대한 의무적 죄책감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죠. 나의 선택과 의지로 부모님에 대한 효를 기쁘게 이행하는 것이 핵개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이든 자식이든 서로에게 희생과 효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핏줄’이라는 관계조차 당연지사가 아닌 상호 노력으로 이어가는 결속이 된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듣자 하니 부모님들은 갑자기 현대사회 속에서 홀로 선 존재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부모님께 효도해 왔는데 이제부턴 그걸 기대하면 안 된다니 억울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홀로 선다는 것, 주체적인 자아로 진일보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핵개인의 시대는 사회가 규정한 관계보다 개인적 특성과 가치관에 맞는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만들어가기 때문이죠.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임영웅의 중장년층 팬덤이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만의 문화생활을 향유해 나가는 것도 그러한 예시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을 뿐, 관계를 시작하고 이를 지탱하는 ‘본질’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핵개인의 시대이건 대가족의 시대이건 가까운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었을 테니까요. 결국, 타인과 함께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사랑, 돌봄과 같은 가치는 영원히 유효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