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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A MAGAZINE Mar 23. 2024

“넌 하지 마. 내가 주는 사랑 받기만 해”

케이팝 아이돌의 연애

연예인들의 공개 연애 소식이 연일 연예 뉴스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의 교제 사실을 알리는 보도가 공개되면서 연예계에 큰 파장이 일었는데요. 카리나의 열애 인정 소식에 일부 팬들은 SNS에 욕설을 달며 분노를 표출했고, 심지어 그녀의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해당 트럭의 전광판에는 공개 연애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 판매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협박성 문구가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압박에 카리나는 결국 자필 사과문을 업로드하며, 실망했을 팬들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는데요. 


이미지 출처: 한국경제


이 사태를 두고 영국 공영방송 BBC는 팬들의 과도한 통제와 간섭이 일상화된 케이팝(K-POP) 팬덤 문화를 비판했습니다. BBC는 ‘한국 팝스타들은 압박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케이팝 산업의 주축인 연예 기획사들의 문제를 꼬집었는데요. 이번 사건은 카리나만의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이돌 가수의 연애를 금기시하고 사생활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연예 기획사 및 케이팝 산업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실 현재 케이팝 아이돌 업계는 일종의 소비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 좋은 음원 성적을 거두었으면 하는 마음에 앨범을 대량 구매하고, 콘서트나 팬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거금을 들이는 팬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지속적으로 큰 돈을 들여온 이들은 종종 소비한 만큼의 보상 욕구를 바라게 되는데요. 이때 아이돌의 연애 금지와 같은 사생활 통제가 보상 욕구의 일부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심리는 아이돌이 연예인이기 이전에 사생활이 있는 한 개인이라는 인식이 배제되어 있는 위험한 논리입니다. 아이돌을 향한 자신의 소비에 보상을 바라는 마음은, 팬심을 넘어선 과도한 억압과 간섭에 결코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구글(Google)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는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비뚤어진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팬 개인에게서 비롯된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룹의 인기 유지에 있어 팬들의 지속적인 소비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를 파악한 연예 기획사들이 팬덤을 상대로 과도한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획사들은 아이돌의 공연뿐만 아니라, 굿즈 및 멤버십 등의 자체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며 팬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이돌 팬싸인회는 앨범을 많이 구매할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추첨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불필요하게 많은 양의 앨범을 구매합니다. 또한 앨범에 동봉되어 있는 ‘랜덤 포토카드’를 수집하는 이들을 겨냥해, 기획사는 더 많은 미공개 랜덤 포토카드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과도한 소비를 유도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아이돌 산업 구조 안에서, 팬들은 사랑과 소비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돌에게 조금만 더 소비하면 그들과 진정으로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진채 말이죠. 




이미지 출처: 디어유 버블(DearU bubble)


이렇듯 아티스트를 향한 팬들의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은 점차 유사연애 감정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각 기획사들은 아티스트와의 밀접한 소통이 가능해지는 팬 플랫폼을 개발하여, 아티스트를 구독한 팬들에게 해당 아티스트의 미공개 사진 및 영상 등의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들과 실시간 메신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SM 엔터테인먼트의 팬 플랫폼 버블(Bubble)은 아티스트와 마치 연인 사이인 것처럼 실시간 채팅을 나눌 수 있어 출시 이후로 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러한 유사연애 감정을 이용한 팬덤 마케팅으로부터 기획사들이 아티스트의 연애를 금지하는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소속 아이돌이 팬들의 눈에 '실제로 연애할 수 있을' 것처럼 보여야, 팬들은 희망을 품고 계속해서 아이돌을 향한 소비를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수많은 팬들의 잠재적인 연애 대상으로 마케팅되는 아이돌은 그들의 열애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결코 마음 편히 축하받을 수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이제는 음악보다 환상을 파는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듯한 케이팝. 현재의 케이팝 문화가 이대로도 괜찮을지 숙고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사태에 있어, 케이팝 산업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연예 기획사들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팬덤의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며 소속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현재의 아이돌 산업 구조가 과연 옳은지에 대해 각 소속사들은 그들의 경영 태도를 반드시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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