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살 돈으로 세 권 사는 법
얼마 전 에디터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종합 독서량은 연간 3.9권이라던데, 그 수치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사장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실제로 올해 도서전 방문객은 작년보다 2만여 명이 증가해 무려 15만 명에 육박했다고 하는데요. 저 또한 새 책을 들이겠다는 기대를 안고 입장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도서전에서 구매한 건 달랑 만화책 두 권. 사고 싶은 책이 없었던 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책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아쉽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거죠.
최근 몇 년 사이 종잇값과 잉크비 등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며 대부분의 출판사는 불가피하게 책값 인상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에 정가가 변경된 책은 총 7,732종으로, 그중 6,222종이 가격을 인상했다고 하는데요. 만원 한 장으로 가볍게 선물하기 좋다는 시집의 인식도 이젠 옛말이 되었고, 소설책 한 권은 2만원에 육박합니다. 원자재 비용 부담으로 출판사도 어쩔 수 없이 책값을 올리는 상황이지만, 이는 소비자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더해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의 등장으로 대형 출판사도 예외 없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움츠러든 도서 업계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중고 서점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형 중고 서점인 알라딘은 2011년 종로에 1호점을 개점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현재 56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파는 책들은 새 책보다 기본적으로 30~40% 저렴하고, 가끔은 새 책의 20%도 안 되는 가격일 때도 있습니다. 또, 절판되어 일반 서점에서는 사라진 책들까지 찾을 수 있어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죠. 트렌드 점수와 검색량을 기반으로 랭킹을 발표하는 랭키파이가 발표한 2024년 3월 이커머스 사이트 트렌드 지수 차트*에서 알라딘은 쿠팡, 교보문고에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알라딘 관계자는 “매출과 관련된 부분을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최근 판매량이 많이 늘어난 것은 맞다”며 “특히 어린이 서적과 소설, 인문학, 자기 계발 서적들이 인기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단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알라딘을 찾는 걸까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알라딘의 꾸준한 성장세의 이면에는 다양한 마케팅 시도들이 가득한데요. 시즌별로 다양한 굿즈를 출시하고, 유명한 캐릭터와 협업하는 것은 기본! 특별한 이벤트까지 진행하며 소비자들을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그 중 에디터의 눈길을 끈 이색적인 기획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페이커가 읽은 책]
올해 초 전국 38개 매장에서 운영된 이 코너는 아시안게임 e스포츠 우승으로 인기가 급부상한 ‘페이커’ 선수가 추천한 책 77종을 모은 것인데요. ‘페이커 코너’를 기획한 마케터는 롤드컵(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과 페이커의 유퀴즈 출연 날짜에 맞춰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평상시 책을 많이 읽는 페이커의 영향력을 똑똑하게 이용한 판촉 기획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알라딘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페이커 관련 도서 이벤트는 판매량뿐만 아니라 댓글 참여도 매우 높았다고 하네요.
[당신의 기록 & 25주년 생일 카페]
올해 7월 14일은 알라딘의 창립 25주년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해 7월 12일부터 3일간 알라딘 일산점에서는 서점의 생일을 기념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생일 카페’ 형식을 차용해 소소하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7월 한 달간 온라인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5년간 알라딘을 이용한 이력을 담은 영수증을 제공하는 ‘당신의 기록’ 이벤트가 대표적인데요. 영수증에는 ‘구매한 책으로 지은 건물 높이’, ‘지금껏 결제한 금액’ 등의 귀여운 정보가 찍혀 있습니다. 이 기획은 알라딘과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쭉 이용하고 싶게끔 하는 리마인드 마케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추정되는 알라딘의 주 고객층은 20대 초반인데요. 유행하는 캐릭터 상품, 페이커가 읽은 책, 서점에서 열리는 생일 카페까지, 알라딘은 매번 새 책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젊은 세대를 제대로 저격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갑 얇은 우리들도 환영’이라는 바로 이 느낌이, 계속해서 중고도서를 찾게 만드는 이유인 듯합니다. 내일도 에디터는 찾고 있는 절판도서를 찾아 외출할 계획입니다. 새 책을 한 권 살 생각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어딘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헌 책 세 권을 사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