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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아범 일기 Mar 29. 2024

#16 내 아내의 식단표

(716째 기록)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배고픔이 가신 후에야, 음식을 같이 먹겠냐고 묻는 학생 때의 나의 모습이 그랬다. 기분이 좋을 때는 양보운전을 하지만, 조급해지면 끼어들기를 허락하지 않는 운전자의 나의 모습도 그랬다. 무엇보다, 스트레스의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그랬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면서, 쌓인 설거지와 외출준비를 함께할 때면 항상 예민해졌다. 집 밖을 나가기 전에 늦었다며 재촉하는 말을 하기 일쑤였고, 아내와 아이가 눈치를 보는 일도 있었다. 날이 서 있는 내 모습이, 힘든 나를 보호하는 장치라고 여겼다.

출장이 결정되었다는 순간부터 고심하더니 출국 전 날 만든 아기를 위한 유아식단표.


 출장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전 날 밤을 꼬박 새면서 일주일치 짐을 싸는 모습보다 놀라운 건, 아이를 위한 식단표였다. 혹여 한 번이라도 부실하게 먹을까봐 세 끼에 더해 간식까지 촘촘하게 준비한 표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리를 비웠을 때 적절히 요리할 수 있도록, 얼린 재료를 넣고 날짜를 적은 지퍼락까지. 자신보다 더 아들을 생각하는 모습에 엄마의 위대함을 느꼈다. 궁금해졌다. 사랑이 넘치면 이타심이 되는걸까. 그렇다면 나는 힘들 때 가족을 덜 사랑하는걸까.


혹여나 덜 챙기지 않을까 싶어, 당부의 말을 꾹꾹 눌러 쓴 메모.


 "지현아. 가족도 너 자신이야."


 친한 형님의 조언이 완연한 봄의 햇살 같았다. 사랑으로 만난 아내도 내 자신. 사랑으로 낳은 아들도 내 자신. 지금까지는 나를 지키기 위해 예민함을 표출했다면, 이제는 나를 아끼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인 가족을 생각하면 어떨까하는 조언. 아내와 아이가 곧 나라는 말에 생채기가 났던 마음이 봄눈처럼 녹았다.


엄마와의 아침 영상통화에 휴대전화를 꼭 안아주는 아이의 예쁜 마음.


 여전히,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해야 할 또 다른 내가 많아지는 것 아닐까. 결혼할 때, 상대방을 나처럼 아끼겠다고 약속한대로 행동하는 아내의 사랑이 증명한다. 자신의 분신인 아이의 끼니를 챙기는 아내의 마음이 알려준다. 또 다른 나를 아껴주라고. 그렇게, 내가 먹을 밥이라 생각하고 아이의 유아식을 만드는 어느 봄날의 저녁.


#봄아범일기 #아들육아 #유아식단표 #출장 #출장이만든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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