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일째 기록)
태어날 때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갖게 되는 것이 있다. 성별. 지역. 가끔은 종교. 그리고, 이름. 옥돌같이 예쁘게 자랐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나의 이름은 '옥돌 현'을 딴 지현이 되었다. 이름의 힘 덕분인지, 아기 때부터 밖에 나가면 딸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학생 때 여장대회가 있으면 1등은 주로 내 몫이었다.(!) 나를 아꼈던 할아버지의 마음과 같으면 좋았겠지만, 정작 나는 예쁘게 생겼다는 말이 싫었다. 잘생겼다는 칭찬을 받는 친구를 부러워했고, 태권도를 잘하는 친구를 동경했다. 그래서, 예쁘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남자에게 왜 예쁘냐고 말하냐며.
아이가 나의 이름을 불렀을 때,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늦기 전에 유아식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게 수 차례. 요리가 끝나고 나서야, 아이를 바라보며 '띠현'이 의미라는 걸 물었고, 그제야 내 이름인 걸 알았다. 감동적이었다. 기쁨으로 가득 찬 저녁이 지나고, 혹시 기록으로 남았을까 싶어서 홈캠을 돌려봤다.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편집하고, 영상을 올리기까지 참 많이 울었다. 눈물의 이유를 생각했다. 아빠가 자기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시선이 보였다. 두 번 정도 알려 준 이름을, 완성 시키는 입술이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도 날 보지 않냐는 손짓이 보였다. 기특함과 미안함. 고마움이 뒤섞여 울컥했다. 내가 아기였을 때가 생각났다. 나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 적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이제 아빠는 아버지로 불러야 하는 거야.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해야 해."
아버지의 친구분은 학교에 들어간 당신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시는 더욱 예를 지켜야 하는 문화였다. 물론 나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분위기였으니까. 모범생으로 자라긴 했지만, 아버지와는 미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대화는 줄고, 서로를 바라보기보다 TV를 보면서, 적당한 거리가 편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고 덤덤한 부자 관계가 일상이 되었다.
'기러기 아빠라 3년째 딸을 못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네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리움이 영상 댓글로 달렸다. 함께 감동한 사람들은, 그 만큼의 아픈 눈물도 흘리고 있었다. 시험관 수술을 10번 넘게 한 부부.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자녀.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빠의 기억이 전혀 없는 자녀. 대댓글로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며 마음이 뜨끈해졌다. 뒤늦게 감사해졌다. 또 다른 감동을 준 나의 이름이. 건강하게 생존해계신 아버지의 존재가.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옥돌은 가공하지 않은 옥을 말한다. 투박한 원석을 재련하여 옥구슬이 되듯이, 나의 모난 부분을 연마하며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가는 중이다. 값비싼 옥보석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길을 빛나게 하는 최소한의 방법은 분명하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선물같은 순간을 누려야 한다는 것. '임마!'라고 정겹게 부르는 아버지의 외침과 '지현!'이라 귀엽게 부르는 아이의 호명을 즐겨야 한다는 것. 그렇게 또 다른 나의 이름인 '아버지'로 자라는 2024년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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