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나는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처참하게 박살 난 나의 성적표 때문이었을까?
엄마에게 이제 공부를 해야겠다고 직접 말했다. 그 뒤로 엄마는 영어과외를 먼저 붙여주셨다. 과외는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옆 라인에 살던 엄마의 지인 분이셨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자그마치 4~5년이나 그녀는 나의 영어를 책임졌다. 영어 과외를 받기 전 나의 성적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50점 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게 과외를 받은 후 나는 줄곧 80~90점대를 받았다.
중학교 2학년이었음에도 나의 실력은 초등학생 수준이었기에 기초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매일 단어 암기와 문제집 푸는 것을 숙제로 내어주셨고, 덕분에 학교 쉬는 시간, 방과 후에도 늘 숙제하기 바빴다. 내가 하겠다고 시작한 공부라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엄마의 지인이었기에 더 밉보이기 싫었다.
일주일에 2번, 방과 후 나는 옆 라인으로 향했다. 그곳은 살짝 어둑한 분위기에 거실엔 텔레비전 대신 책장과 커다란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선 항상 선생님의 딸과 아들이 공부하거나 과외를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선생님 자녀분들은 선생님께 배우지 않았고, 원어민 영어 강사에게 배웠다. 그만큼 수준이 높았을까?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왼편으로 향하면 주방과 다시 왼편엔 과외방이 있었다. 아마도 그곳은 선생님의 아들이 자는 방이라 생각했다. 침대와 커대란 책장 그리고 책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영어를 배웠다.
영어를 배웠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과외방 책장에 꽂혀 있었던 수많은 책들이었다. 선생님의 남편 분께서는 대학 교수셨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는 책이 정말 많았다. 나는 가끔 그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빌려가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늘 친절하게 책을 빌려주셨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두 권이 있는데 하나는 삼국지였고, 하나는 설록홈즈 전집이었다. 삼국지는 중학생 때 1권부터 10권까지 모두 빌려 읽었고, 셜록홈스는 고등학생 때 1권부터 9권까지 모두 읽었다.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으려면 숙제를 빠르게 다 해야 했다. 숙제도 다 하지 않고 책을 빌려가면 약간 면목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마 장편 소설을 처음 읽게 된 것은 선생님 집에서 빌린 두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는 선생님의 호의 덕분에 독서의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군대도 다녀오면서 시간이 꽤 흘렀다. 그리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그전에 엄마와 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아마도 그때가 선생님을 뵈었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종종 엄마를 통해 선생님의 소식을 들었지만, 서울로 오고 난 후엔 나도 잊고 지냈다.
친구들과 여름 계곡에 놀러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항상 저녁에 전화하시던 분이 대낮부터 전화해서 의아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선생님 돌아가셨단다…”
난 처음에 선생님이라길래 누굴 말하는지 생각하다가 설마..? 영어 선생님이냐고 물었고, 맞다는 답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어 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간,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나? 내일 출근하는데 가족도 아니라 휴가는 못 받을 텐데? 그럼 연차를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영어 쌤, 서울에 계시단다. 니가 한 번 가 봐라.”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 차, 지금껏 서울에 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거의 못 해봤는데 그때 처음으로 서울에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장을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걸으면 15분 거리에 있는 대학 병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바로 향했다. 그리곤 기독교는 장례식을 어떤 식으로 치르는지 검색했다. 선생님은 신실한 크리스천이셨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조문을 마치고 상주이신 선생님 남편분께서 선생님과 어떤 관계인지 물으셨고, 옛날 과외를 오랫동안 받은 제자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단번에 나를 알아보셨다. 아마도 엄마가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님께선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녀의 영정 사진을 보는데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아직 가시기엔 젊으신데 왜 이렇게 일찍 가셨을까...
선생님의 두 자녀분들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사실 그들과는 단 한 번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대화를 해 보았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스크린 화면 속 선생님의 사진을 꽤 오랫동안 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이게 선생님을 뵙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좀처럼 때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떠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게 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과외를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마실 것을 주셨다. 그것은 때로는 망고 주스였다가 가끔은 오렌지 주스였다가 어떨 때는 포도주스가 될 때도 있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난 유리잔에 따라진 오렌지 주스를 보면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녀의 호통쳤던 목소리도, 관심 어린 목소리도 가끔 기억난다.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작게나마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을 남겨본다. 그러면 선생님은 나의 글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선생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런 것뿐이라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내가 쓰는 사람이라 글로 라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의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