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한 조각의 온기

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by 히읗

서울에 올라와서 첫 명절을 보냈을 때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고작 2개월 만이었지만, 부산 집이 너무 반갑고 서울로 올라오기 싫었다. 하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내가 원해서 왔던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와야만 했다.


밤늦게 버스를 타고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지하철이 다니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해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어묵 몇 개 먹으려고 했는데 가격표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어묵 하나 1,000원


아마도 터미널이라서 더 비쌌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살던 곳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2개 먹을 걸 1개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어묵 국물을 꽤 많이 마셨다.


어묵 하나에 앞으로 서울에서의 삶이 대충 그려졌다. 그렇게 난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홀로 지내게 되는 삶이 꽤 불안했고, 많이 외로웠기에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항상 사람을 만나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럼에도 쉬이 해결되지 않았던 마음속 공허는 떡볶이 한 조각으로 채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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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살던 집은 낙성대 입구였다. 지하철역을 나와 집까지 약 10~15분 정도 언덕길을 걸어야 겨우 도착했다. 추운 겨울엔 그 길이 더 길게만 느껴졌다. 집까지 가는 길목엔 작은 분식집이 있었다. 나는 가끔 배가 고프면 그곳에 들러 떡볶이와 어묵을 먹곤 했다.


그때도 사실은 가격이 부담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터미널에서 봤던 1,000원 어묵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내가 그곳을 자주 갔던 이유는 사장님의 넓은 인심과 친근한 태도 그리고 사람의 온기 때문이었다.


당시 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밤 늦게 일을 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가게를 들려 어묵을 먹곤 했다. 내가 가게를 가는 시간대는 항상 문닫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사장님은 가게를 마무리하고 계셨던 적이 많았다.


항상 어묵 2~3개만 먹던 나에게 사장님은 꽤 자주 남은 떡볶이를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몇 번이고 권하시는 모습에 단순한 친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고추장에 오랫동안 절여진 눅눅한 떡볶이를 조금씩 주워 먹기 시작했다.


혼자 서울에 올라와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이 홀로 지냈던 나에게 서울은 그저 차갑기만 했고, 실제로도 겨울은 남쪽 사람에겐 너무나도 추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얼마나 지낼 수 있을지 미래를 알지 못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모르는 이의 작은 선의와 배려 그리고 관심은 충분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이유 없는 호의를 경계했던 나는 점점 마음이 풀어졌고, 그 떡볶이 가게를 더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나에게 혼자 서울 살이가 힘들지는 않냐는 물음엔 약간의 엄마의 향기도 났던 것 같다.


그렇게 몇 개월을 다녔던 그곳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치 야반도주라도 하듯 정말 순식간에 가게가 없어져 버렸다.


주말 낮에 잠깐 서점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를 지나치는데 가게 안이 휑한 느낌이 들어서 가까이 가 보니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고, 가게 안은 많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꽤 오랫동안 서서 가게를 바라보았다.


마치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곳은 서울에서 마음을 둘 곳 없었던 나에게 유일하게 마음 둘 수 있었던 곳이었다는 걸 없어지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됐다. 연고도 없이 홀로 지내는 이방인인 나를 처음으로 따뜻하게 맞이해 줬던 그곳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자리하게 됐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곳은 이제 나의 기억 저편으로 넘어갔는데 최근 서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그때 그곳이 떠올라 다시금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글 쓰게 됐다.


사장님께서 꼭 무탈하셨으면 좋겠다. 그녀의 작은 정성과 관심 그리고 이유 없는 호의와 나눔은 나에게 있어서 결코 작지 않았다. 작은 나의 가슴속에 한 가닥의 촛불 같았던 그곳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늘 사람을 경계하던 나를 노곤 하게 풀어줬다.


요즘 들어 이런 작은 관심들이 더욱 귀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나조차도 이유 없는 호의를 의심부터 하며 거절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10년째 서울을 살아 내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작은 손길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러한 따뜻한 손길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지만, 결코 쉽진 않다는 생각을 한다.


올 겨울은 모두 조금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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