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난 어쩌다 서울에서 살게 된 걸까?
다른 사람은 대학 때문에 취업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지만 난 대학도 취업도 아닌 정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긴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난, 이제는 남들처럼 취업해서 직장 생활도 하고 그러다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내 속에는 그때까지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여전히 있었다.
세계여행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어질 줄 알았던 것은 전혀 갈피도 잡지 못하고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여전히 방황 중이었다.
부산 부모님 댁에서 3개월간 지내며 아침밥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제 나이가 곧 서른인데 집에서 놀고 있기엔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았기에 그때부터 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뭔가 책 속엔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나가서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에서 읽어 보고 싶은 책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전까지는 어려워서 읽어 보지도 못했을 철학이나 인문학 책들을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갔다. 그때는 뭔가 앎이라는 것에 심취했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이 이렇게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한창 배워야 할 시기였던 청소년 시절에는 그렇게도 배우기 싫었는데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되고서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학교에는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보며 몰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책만 본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난 움직여야만 했다.
이례적으로 취업 준비라고 하면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스펙을 만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나는 이런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학 4년간 했던 전공이 있었지만 사실 그 전공이 마음에 들었고 또 잘 맞았다면 굳이 긴 여행까지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그리고 뭘 잘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한가하게 그런 것을 찾고 있기엔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갔기에 조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모른다는 것에 대한 강박 때문이라 생각했다. 모르는 게 없고 싶었다. 다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무식하게 읽었던 것 같다.
사실 서울을 온 진짜 이유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한 여름 뜨거운 태양 밑 그늘 같았다. 그래서 편하고 또 아늑했다. 그 편함과 아늑함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없이 누구도 모르는 이방인의 땅 서울로 홀로 올라오게 됐다. 그리고 딱 10년이 흘렀다. 하지만 난 아직도 이곳이 낯설다. 아직도 내 집이 아닌 것 같고, 적응이 안 된 것만 같다. 여전히 서울은 나에게 버겁고 무겁고 힘든 그런 곳이다.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이랄까?
가끔 명절이나 휴가 때 부산으로 내려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면 풀어졌던 긴장을 다시 하게 된다. KTX를 타고 한강대교를 지나면 보이는 한강을 바라보면 다시금 서울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리곤 풀어졌던 긴장이 팍 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부모님 댁에 가면 그렇게 잠만 잤던 것 같다. 서울에선 아침 7시면 눈이 번쩍 떠지는데 부산에선 세상모르게 잤던 것은 그만큼 서울에서 나는 늘 긴장되고 날이 서 있었던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아낸 스스로가 참 대견하고 대단하다고 말이다. 언젠가 이곳을 반드시 떠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난 지금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힘들고 어렵고, 버거웠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견딤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 그리고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진정한 독립을 해 낼 수 있었다. 온전히 나로 바로 설 수 있음은 비로소 나를 나 이게끔 만들어 줄 수 있는 단단한 신념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어떨 때 행복한지를 지난 10년간 힘겨웠던 시간들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좀 더 삶을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볼 뿐이다.
그래서 난 서울이 참 밉고 싫지만, 그만큼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10년간 서울에서 살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한 번 모아보았다. 내 글이 어떻게 다가 올진 모르겠지만,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