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진짜 이유

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by 히읗

호기롭게 서울로 올라왔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진짜 여기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살았지만 서울만큼은 왠지 쉽게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처음 서울역에 발을 디딜 때부터 느꼈던 것 같다.


무궁화호를 타고 올라온 서울엔 너무 많은 사람과 복잡한 지하철 그리고 네온사인들이 가득했다. 부산에도 충분히 있는 것들이지만 왜 이렇게 이질적이었을까? 외국보다 더 외국 같은 느낌이었다.


첫날은 찜질방에서 잤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친한 형 집으로 바로 가기 미안했다. 혼자 올라온 서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여행이 아닌 앞으로 살아야 될 목적은 처음이었는지라 모든 것이 불안으로 가득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20살 때부터 쭉 혼자 살아왔다. 경주에서 대학을 나왔고, 진해에서 군 생활을 보냈고,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호주에선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쭉 나는 집을 떠나 살아왔다. 그렇게 이번에도 서울이란 곳에 터를 잡으려 하는데 왜 인지 모르게 지금부터는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지금까지 쭉 혼자였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때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기약이 있었던 반면, 여기 서울은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곳, 내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곳이라 생각하니 조금 더 막막했던 것 같다.


친한 형 집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다니고 싶었던 회사가 있었던 탓에 거기 근처로 어렵사리 방을 구했다. 엄마가 마련해 준 소중한 보증금 천만 원, 하지만 서른이 되어도 부모의 그늘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면목 없어 얼른 부모의 품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 큰 아들에게 이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지만 그만큼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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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중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느낀 우리나라 교육은 그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생각했다.


대학도 결국 어떤 직장을 구하느냐 하는 것의 준비 단계일 뿐 순수한 배움이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명칭을 대학이 아닌 취업사관학교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좋은 대학은 곧 좋은 직장으로 귀결되는 사회, 그래서 그 ‘좋은’이란 건 대체 뭘 말하는 것일까? 남들에게 보여줬을 때 ‘좋아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말 그대로 ‘좋은’것인지 뭐가 뭔지 잘 몰랐다.


물론 이젠 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좋은 것은 바로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회에서 정해 놓은 ‘좋은’이라는 기준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방황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가 궁금했다. 난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나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도저히 그걸 할 수가 없었다. 나이에 따라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 정해진 곳에서 나를 탐구하기란 전혀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남 눈치를 봐야 하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다는 것은 철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났다. 한국을 말이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셈이다. 일생에 한 번은 배낭여행을 해 보고 싶었는데 그게 그때였을 뿐이다. 나중에 더 나이 들면 못 할 것 같으니 20대 때 해 볼 수 있는 것을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놓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보며 나를 알아가고 싶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사회가 정해진 틀에 맞춰서만 살아야 하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살았던 호주나 미국은 너무나도 자유분방했다. 자신만의 색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어째서 이들은 그토록 자신의 삶에 당당한 것인지. 어째서 이들은 그토록 자신의 말에 힘이 실려 있고 자신감이 있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들의 삶 속에 타인과의 비교는 현저히 적었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 중심이 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이 아닌 오로지 내 안에 우러러 나오는 것을 따라 사는 자신만의 삶을 사는 이들로 가득해 보였다. 난 그것이 오로지 그러한 교육을 받아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Take Gap year"

1년이란 시간을 스스로를 탐구하며 보내는 기간을 뜻한다. 난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여 퀸즐랜드 대학을 돌아다니며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게릴라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의 활동들은 한국에까지 전해졌고, 한국에도 이러한 활동을 하는 곳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난 흥미를 느껴 서울까지 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일로써 뭔가를 해 내기 위해선 내가 가진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래도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정식으로 취업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출근을 해도 딱 주어진 일이 있는 게 아닌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내야 했지만 내가 가진 역량은 그에 미치지 못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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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나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 더는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난 더 깊이 방황했다. 그럼 난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월세는 벌어야 하니 빠르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하면서 낮과 밤이 바뀌는 삶이 너무 힘들고 이 일로는 뭔가 다른 것을 도모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알아보다가 은행 경비원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때 나에게 은행 경비원이란, 마치 운명 같았다. 8시 30분 출근에 5시 30분 퇴근 4대 보험이 되고 퇴직금도 주어지는 곳, 다른 아르바이트와는 달랐다. 은행이란 쾌적한 공간에서 추울 땐 따뜻하고, 더울 땐 시원한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과분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난 30대를 맞이했고, 그 이후의 삶은 ‘저는 은행경비원입니다.’ 책에 써 놓은 대로이다.


어쩐지 서울은 나와 안 맞는다 생각했는데 역시 시작부터 뭔가 꼬여버린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난 이 넓은 서울 땅에 일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두 다리 뻗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열심히 한 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서울 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10년째 살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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