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나의 첫 서울은 19살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난 수시 1차에 합격했던 대학의 면접을 보기 위해 친구 4명과 함께 무더운 여름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철없는 부산 고등학생 5명은 처음 도착한 서울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속으로 발사했다.
지하철을 타고 지나가며 보이는 한강을 보고 “우와!! 마, 즈게 한강이가?? 와 즥이네!!”라고 엄청 크게 말했다. 당시 난 그런 친구들이 부끄러워 모르는 척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친구는 굳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마 니도 한강 첨 보제? 즈게 한강이라 카는 기다. 니가 맨날 보는 낙똥강이라는 완저이 다른기라. 근데 니 왜 우리 모르는 척하는데? 와 부끄럽나??”
난 속으로 “응 겁나 부끄러워”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주일간 서울 찜질방을 전전하며 각자가 지원한 대학 면접을 보려 다녔고, 결국 거기서 합격한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난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그때의 서울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 어른의 세계였다. 나에겐 너무나도 크고도 큰 그런 다른 차원의 세상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은 채로 다시 서울을 찾았다. 다시 찾아온 이곳은 여전히 빛나고 컸으며 아름다웠다. 그에 반해 이 거대한 도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마냥 즐거웠던 10대 시절, 내가 본 이곳은 2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왔을 때는 이젠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가 되어 돌아왔다.
어릴 적 생각했던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차갑고 어둡기만 했다. 온전히 혼자 해 내야 한다는 것에 늘 압박받아왔고, 늘어나는 나이에 비해 해 놓은 건 하나도 없는 현실이 불안했으며,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나에게 희망이란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어린 시절 차곡차곡 쌓아왔던 나의 긍정과 희망적 사고들이 조금씩 무너지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꽤 많이 후회했었다. 예전에는 순리대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였다. 그저 주어진 대로만 산다고 생각하여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정해진 틀에 맞춰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았다. 당시 난 한 가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직 배낭여행을 떠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녀온 후의 일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나에게 수동적인 것이 아닌 능동적인 일이라 더욱 멋있게 느껴졌다.
당시엔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았고, 남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멋있어 보이는 게 좋았다. 주목받고 싶었고,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나에게 남은 건 사실 여행의 추억과 경험 말고는 없었다. 그저 남들 열심히 취업 준비할 때 여행 다녀온 백수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온 후 여행을 갔다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너무 답답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이라는 큰 땅 위에 자신만의 자리를 차지해 가며 그리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직접 겪어 보니 그제야 잘 알게 되었다.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내린 자신들만의 결정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들 자신들의 고민의 크기만큼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대단해 보였다. 비단 서울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고도 느껴졌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어릴 때 처음 봤던 서울의 모습과 장성히 성장한 후에 본 서울의 모습이 사뭇 다른 것처럼 그만큼 나라는 사람도 많이 바뀐 게 아니었을까?
10년째 서울살이 중이다. 10년 전 다시 서울을 올라왔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정말 많이 바뀐 것 같다. 같은 사람이지만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찾게 되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조금 명확히 알게 된 것 같다. 그로 인해 살아가는 환경이나 생각 같은 것들도 많이 바뀐 것 같다.
20년 전 처음 서울을 올라왔던 나와, 10년 전 그리고 지금의 나는 모두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앞으로 10년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 잘 간직했으면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서울과 친해지고 싶기도 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얼른 떠나고 싶기도 한 양가적인 마음을 붙들고 살고 있다.
서울 끝자락에서 조금은 안정을 찾은 채 살고 있지만, 가끔은 이 안정 또한 탈피하고 싶기도 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