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지낼 곳이 없는 나는 친한 선배 집에 잠시 머물렀다. 선배는 마음껏 있고 싶을 만큼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사실 좁은 집에 남자 둘이 지내는 건 생각보다 불편했고, 나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당시 나가던 회사가 사당에 있어서 그 인근에 집을 알아보았다. 주로 낙성대와 서울대 입구 쪽을 알아보았다. 지금껏 여러 곳에서 혼자 살아왔지만,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혼자 자취방을 구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부동산에 가서 계약서를 쓰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걱정됐던 건 과연 내가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잘 마련할 수 있을까였다. 보증금은 어떻게든 부모님께서 빌려주실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미안해서 되도록 싼 곳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다.
보증금도 그렇지만 문제는 월세였다. 회사를 다닌다고 했지만, 사실상 정식 직원의 느낌보단 인턴에 가까웠기에 당시 급여에 대한 이야기도 채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월세가 싼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며칠을 방 보러 다니다가 말도 안 되게 싼 월세방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지하였다. 사실 반지하에 살아 본 적 없었기에 그것이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싼 월세가 마음에 들어 빠르게 계약해 버렸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19만 원, 관리비 5만 원을 더하면 월세 24만 원에 지낼 수 있었다. 낙성대역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고, 꽤 언덕이었다. 그래서 한쪽에서 보면 1층이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반지하인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혼자서 지낼 공간이 생긴 것과 이 넓은 서울 땅에 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비록 엄마에게 빌린 천만 원이었지만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 보증금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했던 것 같다.
이불도 없는 침대 매트에 누워 누런 천장을 바라보며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 이 크고 넓은 서울 땅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이 가슴을 짓 누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넓은 서울에 작지만 나만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이 너무 만족스러워 충만했던 것 같다.
나의 첫 자취방의 면적은 5평이 되지 않은 4평 정도의 크기였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옷장이 방의 모든 공간을 차지했고, 빨래를 널고 나면 정말 발 디딜 공간조차 없는 그런 좁고 좁은 곳이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주차장이라 가끔 매캐한 매연이 방으로 들어올 때가 있었다. 안 그래도 습한 곳이라 환기를 자주 해 주어야 했는데 창문을 열면 매연이 들어오니 방문을 살짝 열어 놓게 됐다. 그랬다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내 방 가장 가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바퀴벌레’였다.
그 녀석과 꽤 오랫동안 동침했다. 그 녀석을 말살시키기 위해 서식지를 발견한 후 특단의 조치를 취해 퇴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셀프 세스코가 되었던 것이다. 방안에 가득한 에프킬라 향을 맡으며 시체를 치우는데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하루는 엄마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오셨다가 나의 작고 귀한 방을 보더니 부리나케 도망가셨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냐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 엄마는 잘 사는 집 막내 따님이라 이런 누추한 곳에선 지내실 수 없는 귀한 분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반지하에서 살아 본 적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깐. 그런 귀한 분을 누추한 곳에 모실 수밖에 없는 내가 안쓰러웠다.
엄마는 보증금을 더 빌려줄 테니 지상으로 이사를 가라고 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곤 엄마는 도망치다시피 친구집으로 피신을 가셨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냥 조금 민망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집에 부담되기 싫어 이런 선택을 한 것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날은 당시에 친구라는 관계로 지냈던 한 사람이 집을 찾아왔다. 이유는 회사에서 집까지 가기 힘든 날엔 딱 중간에 위치했던 나의 작은 집에서 하룻밤 묵기 위함이었다. 침대가 너무 좁아 그 사람은 바닥에서 잤는데 그가 말했다.
“야 인간적으로 반지하는 아니지 않냐? 다른 곳으로 옮겨. 너 건강 나빠져.”
난 뭐 좋아서 반지하에 사는 줄 아나? 다 사정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 녀석은 얻어 자는 주제에 내 집에 대해 함부로 말했다. 그 녀석은 내 건강이 나빠지니 옮기라고 말했지만, 그의 속내는 자주 와서 얻어 자고 싶은데 반지하라 오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 속내를 사실 모르진 않았지만, 당시엔 모른 척했다.
자기가 보증금 대 줄 것도 아니면서 얻어 자는 주제에 집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을 보니 이 녀석과의 관계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예감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나의 작고 소중한 빈지하 방에서 약 1년 6개월을 지냈다. 난 그곳에서 첫 번째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고, 첫눈을 맞게 되었으며 서울에서의 모든 처음을 겪었던 소중했던 보금자리였다. 가끔 낙성대를 지날 때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