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2년간 셰어하우스

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by 히읗

서울에서의 첫 이사는 생각보다 빨리하게 됐다. 두 번째 서울 집은 바로 양재시민의 숲이었다. 그곳에서 난 약 4개월 정도 짧게 지냈다. 당시 친구 사이였던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의 선택은 참 어리석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은행은 그만두고 나온 지 3개월 정도 됐던 시점이었다. 왜 은행을 그만뒀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나에겐 낙관적인 생각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까짓 은행 좀 그만둔다고 해서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나라는 인간이었으니깐.


은행을 그만둔 나는 자유의 몸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자유의 몸이었다. 엄마 준 보증금 천만 원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마도 그래서 양재로 이사 갔던 것 같다. 그때 친구는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보증금 반, 월세 반씩 부담하면 지금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게 됐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함께 살던 이가 급한 사정으로 방을 빼야 한다고 하여 나 또한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 이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badb5e380cb3a0cb3b977b3772103f1a.jpg




양재를 떠나 신촌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알게 된 지인이 살고 있던 집에 방이 몇 개 남아 셰어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만 내면 지낼 수 있다고 하여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간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6년간의 신촌 생활이 시작되었다.


몇 번 온 적 있었던 신촌이었지만, 살기 위해 오니 느낌이 또 색달랐다. 내가 머물게 된 곳은 창천동으로 신촌에서도 연대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신촌 메인 거리에서 연세대 방향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위치한 그곳은 모텔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약간의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왼편에 작은 공원이 있었고, 그곳 바로 옆에 아주 오래된 빌라 1층이었다.


허름한 외관에 비해 집은 깔끔했고, 방도 3개나 되어 남자 셋이 함께 살게 되었다. 큰 방은 집주인인 지인이 썼고, 작은 방 하나는 그 지인의 친구가 썼고, 그리고 남은 방 1개를 내가 썼다.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이라니 이런 혜자도 없었다.


집에는 웬만한 옵션은 이미 다 구비되어 있어서 짐만 들고 몸만 가면 되는 상황이라 꽤 만족스러웠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워킹홀리데이와 배낭여행을 통해 경험이 많아 잘 지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딱 2년을 살았다. 신촌으로 이사할 시기에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곳은 또 은행이었다. 결국 나는 원하는 것을 손에 얻지 못하고, 다시 은행 경비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은행으로 다시 돌아가기 싫어 다른 일을 해 볼까 하고 콜센터 비슷한 곳도 한 번 가 보았지만, 역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조금 더 적응이 빠를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난 무엇을 원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몇 번의 면접을 떨어지고 나서야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나를 받아 준 은행에 감사했지만, 그만큼 자존도 낙관적인 생각도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의 낙관적 생각은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안 좋게 말하면 대책 없는 또는 생각 없는 것이었기에 양날의 검은 확실했다. 부모의 그늘 안에선 조금은 낙관적이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었지만, 그늘을 나와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낙관적 생각은 서울에 지내는 동안 조금씩 깎여 나가서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KakaoTalk_20251214_151031039.jpg
KakaoTalk_20251214_151031039_01.jpg 살던 셰어하우스 집에서 파티하던 날!!


1년간 작은 방에서 생활했던 나는 그 후에는 지인이 쓰던 큰 방을 쓰게 되었다. 그 무렵 지인은 방을 빼고 본가로 내려갔는데 집은 그대로 놔두고 내려갔다. 그는 나에게 월세며 공과금이며 집 관리를 맡겼고, 대신 월세를 5만 원정도 깎아 주어 25만 원에 더 큰 방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방 2개 중 한 곳은 내 지인이 쓰게 됐고, 다른 하나는 외국인 친구가 쓰게 되었다.


2년간 신촌 집에 살면서 나는 점점 추락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건 없었고, 여전히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한 없이 불안했다. 하는 일은 잘 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그리고 신촌에서 2년째 살게 되던 해 점점 삶이 힘들어져 결국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난 조금씩 더 무너지고 있었다.


사실 나에게 신촌은 그렇게 반갑지 않다. 나의 서울 생활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의 나는 정말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 삶을 살아내는 것이 버티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난 신촌을 떠나지 않고 6년이나 지낸 이유는 그곳에는 젊음이 있었고, 나는 거기에 편승하여 나름대로 서울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었고, 젊은 사람이 많아 늘 문화의 선두였다. 신촌, 홍대, 합정, 망원, 상수까지 놀거리가 충분했고,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며 그런 것들은 결국 나에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 그리고 글쓰기의 소재들이 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서부터 오는 것 같다. 나의 대부분의 글쓰기 소재들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고, 관계 속 어떠한 대화에서 파생된 것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나는 신촌에 살며 부지런히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관계해 오면서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구체화해 나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서울에 적응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2년간 신촌과 성수를 오가며 다녔던 출퇴근 길도 그렇고 매일같이 다녔던 신촌 독수리다방에서도 그랬다. 합정에서 했던 독서모임도 기억나고, 망원에서 들었던 글쓰기 수업도 생각난다. 그렇게 난 2년의 시간을 셰어하우스에서 보냈고, 집주인이 방을 빼야 될 것 같다고 하기에 2년만에 3번째 이사를 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작고 소중한 4평 반지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