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쓸모없는 시간은 없다

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by 히읗

굳이 신촌을 계속 고집했던 이유는 나름대로 서울에서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방랑자의 삶이 지속되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이사는 계속해야 했다. 그래도 조금 적응된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난 계속해서 안정적이고 싶었던 것 같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속에서 계속 저울질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정말 나에게 쏙 맞는 일과 직업을 찾고 싶었던 이유는 정말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너무 오랫동안 방황하여 이젠 더 이상 방황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이유들로 신촌에서 신촌으로 3번째 이사를 했다. 딱 길만 건넜는데 신기하게도 구가 바뀌었다. 서대문구에서 마포구로 말이다. 구는 길 하나 차이였다. 신촌에서 두 번째 집은 서강대 옆 노고산 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정말이지 경사가 너무 심해서 과연 걸어서 저곳을 올라갈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방이 2개였다. 큰방과 작은 방이 있었고, 비록 빛은 잘 들지 않지만 반지하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보증금이 500만 원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이 그게 전부라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월세 50만 원이 사실은 너무 부담되었지만, 주말에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어서 그걸로 어떻게든 월세를 부담할 수 있었기에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도 2년을 살게 됐다. 여기서 난 코로나를 맞이하게 되었고, 다니던 은행에서 잘려 백수가 되었고, 좌절과 고뇌와 고립과 고독과 철저한 자기 비하 속에서 어둠을 견뎌내야만 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1층이지만 반지하 같았던 그곳에서 나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은행을 나온 후 분하고 억울했지만 이렇게 된 거 지금까지 써 놓은 글을 진짜 책으로 내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결코 긍정적이진 않았다. 속엔 울분이 가득했기에 내 안에는 솔직히 좋은 것들이 있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글로 표현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혹자는 말한다. 그래도 은행을 그만뒀기 때문에 책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니냐! 그럼, 오히려 잘 된 것 아니냐!! 고 말이다. 심지어 내 엄마도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난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책은 어떻게 해도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글을 계속 썼다면 언젠가 낼 것이라 생각했다. 억울하게 은행에서 그것도 코로나가 창궐했던 불안한 시기에 떠밀려 나오지 않았어도 말이다. 만약 내 발로 스스로 나왔더라면 조금은 긍정적이고, 조금은 끝이 밝은 그런 이야기가 실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얼마나 좋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다! 아직 살만하다! 이런 말로 끝맺음 할 수 있었을 테니깐. 그런데 내 글의 끝은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게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러니 그 일은 결코 잘 된 일이 아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나에겐 너무나도 큰 상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난 은행에서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억울하고 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로 글을 끝맺으면 되겠다!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이건 꼭 글로 써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당시 난 글쓰기에 굉장히 과몰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나를 살리고 버틸 수 있게 해 줬던 건 오직 글쓰기 밖에 없었다. 영락없이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5평 조금 넘는 공간에서 약 6개월간 고독을 씹으며, 탈고를 이어갔다. 눈이 빠져라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오탈자 검수를 했음에도 너무 많은 실수와 허점 투성이라 부끄럽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가끔, 댓글에 오타가 너무 많다는 글이 달리면 솔직히 부끄럽지만 오히려 감사했다. 오타까지 봐주셨다니 그렇게 자세히 읽으셨다니 너무 감사했다.


2개월간 책 만들기 수업을 홍대에서 들었고, 수많은 고민과 계획들을 갈아엎으며 점점 책은 구체화되어 갔다.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일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니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텀블벅 사이트에 펀딩을 업로드하고 난 후에 나는 또다시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 잡혔다.


책 만들기에 집중할 때는 불안할 틈이 없었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텀블벅에 펀딩을 올리고 난 후엔 이젠 뭘 해야 될지 몰라 또 불안했다. 아마도 그 불안의 원인은 이 펀딩이 성공하여 책이 세상에 나온다 한들 그게 과연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이 팔릴지 그리고 그게 나의 제정상태에 얼마나 기여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설사 두 번째 책을 낸다고, 세 번째 책을 낸다고 해서 나 같이 작은 사람에겐 그런 희망적인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했다.


이런 나의 불안과 다르게 책은 꽤 잘 팔려 나갔다. 펀딩은 성공적이었고, 1쇄로 총 500부를 찍었는데 초반에 150~200부가 한 번에 팔렸다. 그래서 1쇄는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내 손을 떠나갔다. 이 많은 책을 어떻게 팔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반응은 좋았다. 아마도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하고, 이후에 취업이 되지 않았다면 내 책은 더 많이 팔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신촌에서의 시간은 새로운 나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기억한다. 마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에게 데미안은 글쓰기였던 것이다.


수많은 고뇌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거치고 난 후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단단해졌을까?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을까? 잘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은 결코 헛된 것은 없다. 그 순간 삶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것은 결코 쓸모없거나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당장에 결과가 마음 같이 나오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단, 스스로에게 그 시간 앞에 당당할 수 있어야겠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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