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행복할까?

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by 히읗

노고산동을 떠나 내가 향한 곳은 이화여대 근처였다. 이번에도 마포구를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조금 깔끔한 곳을 구하고 싶어서였다. 비록 외관은 허름할지 몰라도 방도 넓고 내부는 깔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살던 노고산 방은 빛이 들지 않아 너무 꿉꿉해기에 이번엔 빛이 잘 드는 곳으로 골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려했던 것은 주방과 분리된 공간을 원했다. 나의 첫 집이었던 낙성대 반지하는 주방과 분리되지 않아서 음식을 해 먹으면 냄새가 너무 배어서 싫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무조건 방과 주방이 분리된 곳만 찾아다녔다.


이사를 하면 할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대 집은 5평보다는 조금 넓은 곳이었고, 주방이 분리된 곳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인 집이었다. 관리비가 7만 원정도 나와 실상은 57만 원으로 내가 살았던 곳 중 가장 비싼 곳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길었던 백수의 삶을 청산하고 드디어 정규직으로 취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늘 빈곤했던 건 정규직이었지만 사실상 월급은 은행경비원할 때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이라 그리 여유롭진 못했다. 하지만 소속된 곳이 생기니 마음만은 편했다.


새롭게 옮긴 집에서도 2년을 보냈다. 이대 집에 있을 때는 여느 때보다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몸도 마음도 조금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선 주로 운동을 많이 했는데 러닝과 헬스에 빠져 주 3~4회 운동을 꾸준히 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코로나가 심해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고, 그곳에서 두 번째 책도 만들 수 있었다.


KakaoTalk_20251222_165651591.jpg 은행에서 썼던 글을 퇴근 후 퇴고하며 글 옮기는 작업을 자주 했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광고회사로 하루 종일 글만 쓰는 곳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 최적의 근무 장소였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은행에서는 늘 외면받았고, 외톨이었던 나도 한 명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회사에서 첫 회식을 끝내고 집 앞 편의점에서 하겐다즈를 사 먹었었을 때였다. "저는 은행경비원입니다"를 읽어 보신 분들은 나에게 있어서 하겐다즈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아실 거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드디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느낌이 들었다.


은행경비원을 하던 당시에는 정말이지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어떻게든 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었다. 늘 목말랐고, 항상 위태로웠으며 마음속 불안은 종종 나를 집어삼키려고 호시탐탐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그랬기에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애착이 더욱더 강했다고 생각한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였고, 늘 고민했으며 매 순간 긴장되어 있었다.


그러한 고민들과 수많은 시도들 끝에 결국엔 글쓰기라는 것을 찾게 됐다. 그로 인해 한 권의 책이 탄생했고, 그것으로 좋은 결과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하루 종일 글을 쓰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글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회사가 원하는 글을 써야 했고, 상업적인 글을 쓰는 게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만약 은행경비원 생활을 하지 않고 지금 회사에 들어왔다면 나는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고민과 방황 끝에 얻은 직장인데 어리숙한 이유로 겨우 들어간 회사를 그만둘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또다시 불안의 세계로 발 들이기 너무 싫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글은 아니지만 나라는 사람이 일로써 잘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찾은 것 같았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됐고, 괜찮다고 다독였다.


KakaoTalk_20251222_165657825.jpg 주말엔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글 쓰기로 했다.




하루 8시간 길게는 10시간 종일 글 쓰는 일을 하고 집에 오면 더 이상 글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원래 취미로 갖고 있었던 독서와 글쓰기를 퇴근 후 하는 게 점점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난 좋아하던 취미를 잃게 됐다.


늘 활자를 보고 다루는 일을 했기에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텍스트의 총량을 회사에서 다 소비해 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글자라면 더는 쳐다보기 싫을 정도가 되었으니 점점 글쓰기도 독서와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것이었나? 진짜 내가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정작 불안할 땐 알맹이는 있었지만 그 외에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면, 원하는 것을 얻고 난 후에는 나머지 것들은 다 있는데 알맹이만 빠진 기분이었다. 그토록 찾고 싶어서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것도 100%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다시 모험을 떠나기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불안을 견딜만한 힘은 나에게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적응이 된다면 그리고 정말 글 쓰고 싶어 진다면 또다시 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 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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