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집 구하는 나만의 우선순위

10년째 적응 중인 서울살이

by 히읗

2년간 살던 이대 집을 떠나 이번엔 회사 근처로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유는 직급이 올라 일이 많아져 야근이 불가피했기에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을 이용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을 보았다.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집 같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더 이상 원룸은 싫었다. 빨래 거치대를 펼치면 발 디딜 곳 없는 작은 방은 그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첫 번째 조건은 최소 투룸이어야 했다.


두 번째 조건은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거리여야 했다. 더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타야 하는 지하철을 그만 타고 싶었다. 그래서 최소한 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수유, 우이동, 미아, 창동, 노원, 쌍문, 방학, 심지어 공릉 쪽도 알아보았다. 꼼꼼하게 알아보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집을 찾긴 쉽지 않았다.


세 번째 조건은 주차가 되어야 했다. 아버지께서 10년 넘게 몰던 SUV를 넘긴다 하시어 주차는 필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차가 가능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보통은 신축 빌라가 가능한데 그런 곳은 값이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신축은 포기하기로 했다.


네 번째 조건은 가격이었고, 다섯 번째 조건은 빛이 잘 들어오는지였다. 이렇게 최소 투 룸에 주차가 되어야 했고, 빛도 잘 들어오며 금액도 원하는 정도가 되어야 했고, 거기다가 회사에서 거리까지 가까운 곳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마치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으며 재산도 많고 서울에 거주하며 대화도 잘 통하는 “이상형”에 부합하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해도 보통 그런 사람은 꼭 내 옆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해 꼭 필요한 것을 위주로 알아보아야 했다. 몇 가지는 포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선택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공간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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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전세 대출을 받아 보게 되었다. 금액은 총 1억 2천 정도 선에서 집을 알아봐야 했다. 이 금액에 맞는 집 중에서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곳을 찾고 싶은 욕심 때문에 시간과 체력이 바닥이 날 것만 같았다.


하필 추운 겨울이라 퇴근 후엔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다. 그리고 누군가 살고 있는 집에 가서 보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다.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볕이 잘 드는지를 보기 위해선 주말 같은 날 오전 또는 오후에 가야만 했다.


그렇게 매번 허탕만 치다가 어느 날은 정말 딱 좋은 위치와 크기에 거기다 주차까지 되는 곳을 발견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고 방도 총 3개에 주차가 가능했다!! 다만, 빛은 그렇게 잘 들진 않았지만 신축 3층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이 조금 이상했다.


계약금을 넣는데 지금 살고 있는 주인의 계좌가 아닌 앞으로 주인이 될 사람의 계좌로 입금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소유권이 곧 이전될 예정이라 집주인이 바뀐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류를 이것저것 보여주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전세 사기가 판 치던 때라 이게 맞나? 싶어 망설였다.


망설이는 나에게 부동산 사장님은 여느 사장님들처럼 오늘만 이 집 보고 간 사람이 3명이나 된다며 빨리 안 하면 다른 사람 계약할 수밖에 없다며 계속 압박 줬다. 그러니깐 더 이상했다. 결국 난 여러 지인 그리고 부모님의 의견을 듣고 안 하기로 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진짜 집 구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돈 없으니 적당한 곳을 골랐기에 딱히 퀄리티를 따지지 않아서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것저것 따지니 선택이 쉽지 않았다. 마치 어릴 땐 10가지 중 1~2가지 마음에 들면 바로 연애를 시작했지만, 나이 들어 연애하려고 하니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아져 누구도 쉽게 만나기 어려워진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는 기간 안에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아 결국 몇 가지를 포기하게 됐다. 첫 번째가 바로 거리였다. 그래서 도봉구 서울 끝자락까지 올라오게 됐다. 그러니 생각보다 내 기준에 맞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본 순간 여기다!! 싶었다. 일단 주차가 됐고, 비록 4층이지만 볕이 꽤 잘 들었고 투룸에 오래되긴 했지만 나름 깔끔했다. 거기다 가격까지 딱 맞아서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조금 고민해 보겠다 했는데 금요일 오전 부동산 사장님이 전화 와서는 다른 사람이 계약하고 싶다고 하는데 나보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셨다.


순간, 이대로 놓치면 난 영영 집 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퇴근 후 계약했고, 계약금도 넣었다. 그렇게 난 도봉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처음으로 전세대출을 받았는데 이자가 너무 싸서 한 달에 10만 원 정도만 내면 됐다. 월세를 내지 않는 게 너무 행복했다. 10년간의 서울살이 동안 길바닥에 뿌린 월세 값만 수천만 원이 되는데 이제 내지 않아도 되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방은 2개였고, 소파와 티브이를 놓아도 공간이 충분한 거실과 이젠 빨래대를 방에 넣지 않아도 되는 베란다까지 생겨서 너무 만족했다. 이제야 사람 사는 곳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간다. 그래서 2년을 더 연장할 계획이다. 처음으로 2년 이상을 살게 될 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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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년 후 난 또 어디로 가게 될까? 계속 이곳에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될까? 나의 서울살이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요즘은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속 시끄럽고,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을 떠나고 싶다. 그런데 이곳 도봉이라면 그래도 한적하고 여유로워 조금은 살만한 것 같다.


원하는 집은 어떻게 구했는데 원하는 사람은 아직 내 곁에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사람도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사람을 만나는 나만의 우선순위가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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