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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1. 2022

티파니 노틸러스

2021년 12월 12일 미국 뉴욕의 필립스에서 166개의 시계들에 대한 경매가 이루어졌다. 1744년에 설립된 소더비나 1766년에 설립된 크리스티 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필립스도 1796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서 창립된 경매회사이다. 소더비와 함께 현재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파텍 필립과 티파니의 더블 네임 시계인 '티파니 노틸러스'였다. 더블 네임이란 시계의 다이얼에 제조자와 판매자의 상표가 함께 표기된 시계를 의미한다. 스위스 제네바의 파텍 필립과 미국 뉴욕의 티파니가 170년간의 협력관계(1851-2021)를 기념하여 티파니를 상징하는 '1837 블루' 색의 다이얼을 가진 170개의 한정판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계를 필립스에서 경매한 것이다. 파텍 필립은 183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립된 시계회사이고, 티파니는 1837년 미국 뉴욕에서 창립된 주얼리 판매점이다.


1851년 파텍 필립의 창업자인 앙트완 노버트 드 파텍(1812-1877)은 스위스 제네바를 떠나 시계 판매를 늘리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뉴욕 브로드웨이의 티파니를 방문하여 티파니의 창업자이자 동갑내기인 찰스 루이스 티파니(1812-1902)와 만났던 것이다. 이때 노버트 드 파텍이 찰스 루이스 티파니와 150개의 시계를 납품하기로 계약한 것이 파텍 필립과 티파니의 협력관계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작은 계약이 이후 파텍 필립이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어 1876년에 티파니는 파텍 필립의 미국 판매 대리점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파텍 필립과 티파니의 더블 네임 시계들은 170년간 여러 번 출시되었다. 필립스에서의 경매 이후인 2022년에 티파니에 공급될 170주년 기념 시계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티파니 한정판을 발매하기로 한 파텍 필립의 현사장인 티에리 스턴은 202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6년부터 생산해 온 노틸러스 모델 라인을 2022년부터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즉, 파텍 필립의 티파니 한정판은 파텍 필립 노틸러스의 마지막 제품이 되는 것이다. 파텍 필립의 제품들 중 베스트셀러인 이 모델을 중단시키겠다는 티레이 스턴의 결정에 대해서는 경쟁사인 '오데마 피게'의 메가셀러 '로열 오크'와 함께 다룰 '하이엔드 스포츠 시계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에서 쿼츠혁명시기에 등장하여 두 회사의 몰락을 막았던 시계들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170개 한정판이며 마지막 노틸러스 모델이라는 두 가지의 요인 때문인지 이날 제조번호 1번의 티파니 노틸러스를 경매하자 티파니의 공식 판매 가격인 52,000 달러(약 6,800 만원)의 120배에 해당하는 650만 달러(약 70억 원)에 경락이 이루어졌다. 그 후에 알려진 바로는 당일 650만 달러에 전화로 입찰한 사람과 2번째 고액의 입찰자가 경매 종료 후 구입의사를 철회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시계를 실제로 낙찰받은 사람은 자흐 루(Zach Lu, 노언택)이라는 대만의 젊은 영화배우였다. 그가 낙찰받은 금액은 620만 달러로 알려졌다. 30만 달러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2021년까지의 모든 시계 경매 기록에서 10번째로 높은 가격에 팔린 시계로 등극하게 되었다.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기능 없이 단순히 시간만 표시하는 엔트리 모델이 세운 기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한 기능을 가진 '심플 와치'로는 현재까지 가장 높은 경매 기록이다. 엔트리 모델이란 각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가장 저렴한 모델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시계 경매에서 상위 기록을 세운 시계들은 대부분 판매 가격도 고가인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이다.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이란 단순히 시간과 날자 정도를 보는 단순 기능을 넘어서는 크로노그래프, 퍼페츄얼 캘린더, 투루 비용, 리피터, 하늘과 우주의 변화를 보여주는 천문 기능 같은 추가의 기능들을 의미한다.


최종 낙찰자와 두 번째 고가의 입찰자가 구입의사를 철회한 것 때문에 이런저런 논란이 있었다. 경매 가격을 높이기 위해 티파니의 새로운 주인인 루이뷔통 그룹이 의도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억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컴플리케이션 시계도 아니고 특별한 내력을 가진 시계도 아닌 이제 막 판매를 시작하는 신제품이 판매 가격의 10배도 아닌 100 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시계 경매 역사에 오래도록 회자될 기록을 세운 덕분에 티파니 노틸러스는 2022년 내내 화제가 되었다.


티파니는 뉴욕 5번가의 본점 외에도 비버리힐스와 샌프란시스코에도 점포를 가지고 있다. 역사에 남을 낙찰가를 기록한 경매 소식과 169개의 제한된 물량 때문에 티파니에서 VIP 고객들에게 판매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후 배우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와 마크 월버그,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 랩퍼인 제이-지 등이 티파니 노틸러스를 착용한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다.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시계이다 보니 티파니 노틸러스를 구입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유명한 시계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티파니 노틸러스를 구입한 후 이를 SNS에 올려 자랑하는 것에 대한 위험까지 경고하고 있다.



착용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 유명 인물들이 모두 티파니의 VIP 고객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 경매는 티파니의 마케팅에 엄청난 도움이 된 셈이다. 티파니에서 선정할 169명의 VIP 고객들과 판매순서는 티파니 노틸러스를 통해 티파니에 명성을 가져다 줄 유명도의 순서로 선정한 것이 아닐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들이 현대 시계 마케팅의 중요한 기법인 것이다. 2021년 티파니는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에 인수되었다.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인 LVMH는 프랑스 출신의 사업가이자 세계 최고의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가 주인인 회사이다.


티파니 노틸러스 경매로 파텍 필립의 베스트셀러 모델인 노틸러스의 인기도 함께 높아졌다.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라 구입을 예약한 사람들만 구할 수 있는 시계가 된 것이다. 티파니 노틸러스의 인기는 파텍 필립의 정규 제품인 노틸러스의 재판매 가격은 물론 과거 모델인 빈티지 노틸러스의 가격도 급격히 상승시키고 있다.


그밖에 티파니 블루와 비슷한 다이얼 색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연녹색 다이얼을 가진 롤렉스의 오이스터 퍼페츄얼, 그랜드 세이코  등 티파니와 무관한 시계들도 다이얼 색상 때문에 티파니 롤렉스, 티파니 세이코 등의 별명이 생기며 판매량도 증가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단기간에 무수한 짝퉁 시계들도 등장했으며, 다이얼 교체도 유행하고 있다. 향후 몇 년간 티파니 블루 색상이 시계 다이얼의 인기 색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계를 판매하는 다른 브랜드들의 입장에서도 별다른 마케팅도 필요 없는 티파니 다이얼의 인기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십 년 후 2020년대 초 티파니 노틸러스의 경매 기록이 가져온 티파니 다이얼 열풍이 시계 잡지의 매력적인 테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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