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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2. 2022

그레이브스 컴플리케이션

티파니에서 파텍 필립을 구입한 부호들의 이야기



2014년 제네바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까지 최고의 경매 기록을 세운 시계는 2,400만 달러에 경매된 '그레이브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라는 회중시계였다. 당시까지 역대 최고의 기록이었다. 2019년 파텍 필립이 자선경매를 위해 하나만(only watch) 만든 20가지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진 양면 손목시계가 현재 역대 최고의 기록(3,1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2019년 이후 그레이브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은 역대 2위의 경매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레이브스 주니어의 시계는 1999년 소더비에서 처음으로 경매되어 당시 역대 최고가인 1,100만 달러에 경매된 기록을 가진 시계였고, 현재의 기록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2014년에 2번째로 경매되며 세운 기록이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경매에 오른다면 2019년의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시계이기도 하다. 공산품으로 분류되는 시계들이 피카소나 앤디워홀의 예술작품 같은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1925년 티파니로부터 파텍 필립에게는 가장 영예로운 주문이 날아들게 된다. 미국의 은행가이자 철도 투자자인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1868-1952)는 아버지인 그레이브스 시니어로부터 은행을 물려받은 백만장자였다. 그레이브스 주니어는 1910년대부터 시계에 흥미를 느껴 가족들이 보석을 구입하기 위해 자주 들리던 뉴욕의 티파니에서 파텍 필립 시계를 구입하게 된다. 파텍 필립이 시계의 정확성을 겨루는 올림픽 경기나 다름없는 각종 천문대 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 그레이브스 주니어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그레이브스 주니어는 파텍 필립에 천문대 경연에서 우승한 무브먼트로 회중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파텍 필립에서 제조한 3개의 투루비용 회중시계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주문하면서 시계에 가문의 문장과 가훈을 조각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며, '뉴욕의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를 위해 제작되었음'같은 표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패커드와 천문 회중시계


그의 친구이자 자동차 재벌이며 그레이브스와 함께 파텍 필립의 애호가였던 제임스 워드 패커드(1863-1928)와 시계 컬렉션 경쟁이 불이 붙은 것이 1916년이었다고 한다. 패커드는 그 해에 파텍 필립으로부터 16가지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진 회중시계를 받았고, 1927년에는 총기능은 10개에 불과하지만 케이스 백에 설치된 배면 다이얼에 천문 차트까지 가진(양면 다이얼 시계) 컴플리케이션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레이브스 주니어는 1925년에 티파니를 통해 파텍 필립에 패커드를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가진 회중시계를 만들어줄 것을 주문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시계가 바로 그의 이름이 붙은 '헨리 그레이브스의 컴플리케이션'이며, 경매기록을 2번이나 경신하게 된 바로 그 시계였다. 


그레이브스 주니어와 슈퍼 컴플리케이션

주문을 받은 후 7년 만인 1932년에 완성되어 그레이브스 주니어에게 1933년 1월 19일에 전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5가지의 컴플리케이션을 가진 시계였다. 1989년 창립 150 주년을 기념하여 파텍에서 칼리버 89(총 33가지 기능)를 발매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였으며 그가 죽은 후 몇 번의 손바뀜을 거쳐 2014년 소더비 경매에서 2,400만 달러에 경매되어 시계 경매 기록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1922년부터 1951년까지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파텍 필립에 직접 주문한 시계만 30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15개 정도가 알려져 있다. 그가 주문한 시계들이 당시 파텍 필립을 상징할만한 시계들이었으므로 그 대부분이 파텍 필립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크리스티나 소더비의 경매에 간혹 등장하는 그의 컬렉션에는 천문대 경연에서 우승한 무브먼트로 만든 크로노미터, 투루비용, 미니츠리피터 등 고가의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들이다. 그가 파텍 필립에 처음으로 주문한 손목시계가 1927년에 주문하여 1928년에 전달된 파텍 필립에서 처음으로 만든 미니츠 리피터 손목시계였다고 한다. 케이스 백에 그레이브스 집안의 문장과 가훈이 라틴어로 적혀 있는 시계이다.



1910년 ~ 1920년대 티파니를 통해 알게 된 사업가인 패커드와 그레이브스와의 인연을 포함하여 티파니는 파텍 필립을 미국 부호들에게 소개하여 이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시계 역사상 중요한 시계들을 개발하여 세계 최고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19세기말 티파니는 파텍 필립이 위치한 제네바에 시계 공방까지 설립하여 티파니 브랜드로 자체 제작한 시계까지 판매할 정도로 시계와 인연이 깊은 노포이기도 하다. 시계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티파니가 향후 어떤 시계들을 발표하게 될 지 궁금해 지는 이유이다. LVMH의 티파니에서 발표한 첫 시계가 '티파니 노틸러스'였던 셈이다. 그 이상의 극적인 등장을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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