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고 Oct 22. 2022

폴 뉴먼 데이토나

폴 뉴먼 데이토나


티파니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시계가 '폴 뉴먼 데이토나'이다. 역대 시계 경매에서 상위 10개의 시계 중 단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파텍 필립에서 제조한 시계들이다. 그 단 하나의 예외가 역대 시계 경매 기록에서 현재까지 3위에 올라 있는 롤렉스의 수동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자동차 경주대회인 '데이토나'를 시계 이름으로 사용한 시계이다.


이 시계는 2017년 10월 필립스의 경매에서 1,7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경매가 이루어지기 40년전인 1980년대 부터 '이그조틱 다이얼'을 시계 컬렉터들은 '폴 뉴먼 다이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폴 뉴먼 다이얼의 데이토나는 롤렉스의 빈티지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빈티지 시계였다. 그래서 2017년 폴 뉴먼의 시계가 경매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 시계가 엄청난 기록을 세우리라는 것을 컬렉터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컴플리케이션중 대중적인 크로노그래프 기능만 가진 이 시계가 파텍 필립의 수 많은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들을 저만치 따돌리며 당시 손목시계 최고의 경매기록을 세우게 될 것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크로노그래프란 티파니 노틸러스 같은 일반 시계의 기능에 초시계 기능을 조합한 가장 대중적인 컴플리케이션 시계이다. 시계 다이얼(문자판)에 섭 다이얼로 부르는 작은 다이얼들을 2개 혹은 3개 가지고 시계의 바늘을 조정하고 태엽을 감기 위한 크라운 외에 크로노그래프 버튼이라고 부르는 초시계를 스타트-스톱-리셋하기 위한 하나 혹은 두 개의 버튼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수동이란 시계의 크라운으로 태엽을 감아주어야 작동하는 시계를 말한다. 태엽을 감지 않아도 손목의 움직임으로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시계를 자동시계(Automatic)이라고 하는데, 롤렉스의 자동 크로노그래프는 1988년에 처음 발매되었다.



폴 뉴먼의 데이토나는 파텍 필립의 그레이브스 컴플리케이션처럼 주문 생산된 시계가 아니라 롤렉스의 정규 제품으로 판매된 시계이다. 폴 뉴먼의 데이토나는 1969년 폴 뉴먼의 부인이자 여배우인 조앤 우드워드가 티파니에서 구입하여 폴 뉴먼에게 선물한 것이다. 폴 뉴먼은 1969년에 개봉한 영화 '위닝(Winning)'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자동차 경주가 평생의 취미가 되었다. 1958년에 결혼하여 폴 뉴먼의 부인이었던 조앤 우드워드도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2002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폴 뉴먼은 자신이 자동차 레이스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모든 것에 서툴렀어요. 스키도 잘 못 타고. 테니스도 잘 못 치고, 축구도 형편없었지요.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었던 건 자동차 레이스뿐이에요.'


1965년 폴 뉴먼(1925-2008)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여 피부이식까지 필요한 수술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드광이었던 폴 뉴먼의 자동차 경주를 막을 수 없었던 조앤 우드워드는 뉴욕 5번가의 티파니에서 이 시계(롤렉스 Ref. 6239, 이그조틱 다이얼)를 구입하며 케이스 백에 'DRIVE CAREFULLY ME'라는 문구를 조각해 넣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조심해서 운전하세요'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1965년의 끔찍한 사고가 그때까지도 생생했을 조앤 우드워드로서는 위험한 레이스에서 남편을 지켜줄 부적이라도 하나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 후 폴 뉴먼은 20년 이상 참가한 자동차 레이스에서 큰 사고 없이 살다가 암으로 죽었으므로 조앤 우드워드의 부적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는 1959년에 미국 플로리다에 세워진 자동차 경주장의 이름이며 '데이토나 500',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 등이 열리고 있다. 롤렉스의 데이토나 디자인의 시계는 1963년에 처음 발매되었고, '데이토나'라는 이름은 1965년 시계 다이얼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리고 3년 후인 1968년 조안 우드워드가 폴 뉴먼에게 선물함으로써 롤렉스의 시계 중 가장 유명한 시계가 되었다. 폴 뉴먼은 자동차 레이스에 참가할 때마다 이 시계를 착용했고 기자들의 사진에 찍힌 폴 뉴먼과 함께 이 시계가 유명해졌던 것이다.


1972년 46살의 나이로 본격적인 카레이서로 활동하기 시작한 폴 뉴먼은 1995년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시계를 경매에 내놓은 사람도 폴 뉴먼의 장녀인 넬 뉴먼(Nell Newman)과 캠퍼스 커플이었다가 헤어진 제임스 콕스(James Cox)이다. 1984년에 폴 뉴먼이 이 시계를 딸의 남자 친구인 제임스 콕스에게 주었고, 제임스 콕스는 넬 뉴먼이 설립한 환경재단에 기부하기 위해 2017년 필립스를 통해 이 시계를 경매했던 것이다.


필립스의 경매 기록에는 이 시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 부부의 첫 딸인 넬 뉴먼은 부모의 유명세가 부담스러웠던지 대학시절 '넬 포츠(Nell Potts)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1983년 가을학기 넬은 제임스 콕스라는 남학생과 사귀게 되었다. 넬은 폴 뉴먼의 얼굴이 라벨로 사용된 샐러드 드레싱 병을 가지고 다녔다. 폴 뉴먼이 1982년에 설립한 유기농 식품회사 'Newman's Own'에서 제조한 드레싱이었다. 넬과 사귀고 있던 제임스는 폴 뉴먼의 얼굴을 가르키며 자신이 어린 시절 라임록의 오토스포츠 트랙에서 폴 뉴먼과 만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자랑을 했다. 이를 기회로 넬은 제임스에게 자신이 폴 뉴먼의 딸이라는 것을 처음 밝혔다고 한다. 


1984년 여름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 부부는 코네티컷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웨스트포트에 있던 자택에 딸린 '아늑한 집(Nood House)'이라는 낡은 나무집을 개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앤 우드워드가 집을 고를 때 그 집에 딸린 아늑한 작은 나무집이 그 집을 구입한 이유의 하나였다. 제임스는 그해 여름 폴 뉴먼의 집을 방문하여 나무집을 새로 짓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폴 뉴먼은 시간 나는 대로 나무집의 진척상황을 보러 왔다. 그날 아침 폴 뉴먼은 시계태엽을 감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데이토나가 멈추어 있었다. 그래서 제임스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제임스는 손목을 보여주며 시계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폴 뉴먼은 자신이 차고 있던 데이토나를 벗어서 제임스에게 주며 '매일 태엽을 감는 것만 기억할 수 있다면 이 시계는 아주 정확하다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동 시계란 폴 뉴먼의 말처럼 매일 태엽을 감아주어야 작동하는 시계를 말한다. 제임스는 폴 뉴먼이 준 이 시계를 보물처럼 다루며 2014년 경매에 보낼 때까지 30년간이나 소중하게 보관했다.



1983년 조앤 우드워드는 폴 뉴먼에게 검은색 다이얼의 데이토나를 다시 선물하게 된다. 폴 뉴먼의 사진에서 검은색 다이얼의 데이토나가 발견되는 이유이다. 이 시계는 롤렉스 데이토나 6263이라는 모델로 1971년부터 1987년 사이에 제조된 시계이다. 데이토나 표기가 검정 다이얼에 붉은 글씨가 사용된 모델로 데이토나의 표식이 선명하다는 이유로 'Big Red'라는 별명을 가진 시계이다.


이 시계의 케이스 백에는 'Drive slowly Joanne'이라고 적혀 있다. 카레이서에게 천천히 운전하라는 걱정이 가득 담긴 문구였다. 이 시계는 2008년 9월 26일 폴 뉴먼이 암으로 죽기 전 막내 딸인 클레어 뉴먼(Clea Newman)에게 주었으며, 폴 뉴먼이 가장 오래 사용한 시계이기도 하다. 2017년 10월에 폴 뉴먼의 첫 번째 데이토나 경매가 있은 지 3년 후인 2020년 12월 12일 폴 뉴먼의 두 번째 데이토나도 필립스의 경매에 출품되어 약 550만 달러에 낙찰되어 현재 롤렉스 시계 중 3번째로 높은 경매 기록을 보유 중이다.


클레어는 이 시계를 경매에 출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계는 아빠의 계속된 레이스 열정에 대한 엄마의 참을성과 그 후 25년간 더 지속된 애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폴 뉴먼과 조안 우드워드는 둘 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유명 배우 커플이었음에도 비버리 힐즈를 떠나 동부의 코넥티컷의 시골에서 살았다. 3명의 딸을 키우며 이혼하지 않고 50년간이나 같이 산 화목한 부부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1930년 생으로 올해 92세인 조앤 우드워드가 치매로 인하여 폴 뉴먼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 지고 있다는 안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앤 우드워드는 티파니에서 다이얼 색깔만 다른 롤렉스의 수동 크로노그래프 두 개를 15년 간격을 두고 구매했다. 그녀가 티파니의 도어를 2번 닫고 나오는 사이에 티파니에서는 영화에나 등장할만한 시계사의 거대한 혁명이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조앤 우드워드가 1969년 첫 번째 데이토나를 구입하고 나간 후 두 번째 시계를 사기 위해 티파니를 방문했던 1983년 사이에 티파니에서 있었던 특별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그레이브스 컴플리케이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