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미니멀라이프라는 걸 해보았습니다만
우다다다다 -
오늘도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로 8시 21분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나갔다. 지하철역까지 종종걸음으로 내딛는 십 분여의 시간 동안 자연바람 드라이기가 머리를 말려주길 바라지만 어째 목덜미만 더 끈적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도가 심한 날에는 마주치게 되는 엘리베이터 이웃들에게 창피스러워 그냥 집게핀으로 동여매 나가는 날도 있다. 이사 전에는 이렇게나 이른 아침 지하철에 사람이 많은 것이 놀라웠는데, 이사 후에는 이렇게나 초딩들이 학교를 일찍 가는 것이 놀랍다. 이제는 1시간이나 더 자는데도, 눈 한번 꿈쩍 뜨고 일어나는 것은 똑같이 죽을 맛이다. 언제쯤 출근 전 아아 한잔을 손에 들고 여유롭고 활기찬 아침뽕에 취해보려나. 그것이 여전히 소원인 날들의 연속이다.
엊그제 점심시간에는 또 그 사람이 몇 년 전 국장실에서 일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었고, 2002년 월드컵 때 근무한 얘기도 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 몇 장면 몇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는 그 일들만 죽도록 떠올려지는 것은 아닌지. 30년 전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한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는 당직근무를 섰다. 새로운 사람들과 하루 같이 일하게 됐는데 나 포함 여자 세명이었다. 당직근무의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는 바로 점심메뉴 정하기다. 먼저 제일 막내인 내가 나서서 못 드시는 메뉴가 있는지 체크했고, 역시나 다 잘 먹는다는 대답뿐이지 누군가 선뜻 나서서 메뉴를 정하지 않았다. 돈까스, 피자, 샐러드, 분식 네 가지의 음식점을 메모해 둘째 선임에게 결재(?)를 올렸더니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단 한 마디 어떤 코멘트도 없이 여기 어딘가에 도시락집 전단지가 있을 거란다. (그래.. 나한테 정하라고 한 적은 없지..) 전단지를 돌려보며 고심 끝에 각자 메뉴를 정했는데 그럼 그렇지 일요일은 휴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점심메뉴 정하기에 첫째 선임이 그냥 짜장면이나 먹자 한다. 다들 짜장면 좋아요~^^ 이게 미덕이지. 그러나 끝은 훈훈하려나 방심하면 안 된다. 식사를 마무리하는 첫째 선임의 한마디. “맛없는 짜장면 잘 먹었습니다.” 지금의 근무지, 지금의 사람들만 벗어나기를 달력에 엑스표치며 버티고 있었는데, 여전히 같은 날들의 연속일 거란 생각이 스쳤다.
머나먼 출근길에 몸과 정신이 바사삭 거렸어도 이사를 가볼까라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않고 살았다. 언제든지 월셋집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지만, 그 반대로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집을 애써 옮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쩌다 좋은 기회가 생겨 직장 근처의 이삿집을 구했다. 5.7평의 원룸. 더 집을 줄여가는 이사를 하게 될 거라고도 역시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다. “인간아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라는 동아줄이 내려왔다. 넘칠 듯이 쌓인 옷과 주방용품, 먹지 않고 담아둔 티백들, 쓰잘데기 없는 잡동사니, 물이 된 습기제거제, 들고 나가 버릴 생각이 없는 무너진 침대 매트리스, 마른 흙만 담긴 화분들.. 미니멀라이프를 결심할 수밖에 없는 집안 꼬라지라서 미니멀이란 걸 해보겠다고 뛰어들었다. 물건을 줄이면 삶이 달라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서.
그렇게 내가 가진 물건들을 목격했다. 벼락치기가 주특기인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증거물처럼 늘어놔서야, 내가 가진 로션이 몇 개고 샴푸가 몇 개고 헤어에센스가 몇 개고 향수가 몇 개인지 보였다. 지독하게도 버렸다. 유통기한이 지난 로션과 오래된 디퓨저 용액을 수건에 탈탈 털어 버렸고, 베란다에 버려진 화분들을 삼각대로 깨부셔 불연성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난장판이 된 베란다 흙먼지까지 치웠다. 모든 걸 이고지고 떠날 때가 돼서야 내가 가진 물건들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것이 보였다. 무게를 더한 물건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기력했고, 버리는 수고로움을 거쳐야만 물건의 저주에서 풀려났다.
1.5평만큼의 집을 줄여야 했다. 그 사이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근사한 신혼집을 마련하고 또 그 누구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5.7평 원룸 안 초라한 내 모습을 감추고 싶어 미니멀라이프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선물처럼 담았다.
미니멀~ 미니멀~ 을 외치며 비싸고 좋은 물건들을 더 가지려 욕심내는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뭔가 특별하고 더 고차원적인 사람인 양 느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너무나도 한 게 별거 없어서 그마저도 그렇게 안 됐다. 그냥 쓰지 않는 물건을 버렸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글과 사진을 보며 그분들의 집처럼 깨끗해 보이도록 따라 하고 싶어 집안 곳곳의 보이는 물건이 없도록 잘 정리했다. 그럴려면 물건이 더 채워지면 안 됐다. 그래서 그냥 내가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늘 기억해 잘 없애버리려(?) 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1.5평 다이어트를 위한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했다.
더 조그매진 집에 맞도록 조금의 물건을 줄이고 조금 더 정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는 집.
후기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요정도 일 것 같은데, 대단한 실천도 그럴듯한 정리비법도, 남들에게 전수할 비우기 비법도 이 글엔 없지만서도..
물건을 줄이면 삶이 달라진다고 했지만 내 삶이 뭐가 얼마나 크게 달라지겠나 싶었다. 실천하다보니 엄청난 변화를 꿈꾸지도 않게 됐고 정말 그런 게 따라오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괴롭고 게으른 나를 반성하고 직장동료의 큰 뜻 없는 말들에 의연하지 못한 내가 미웠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좀 더 나아질 거야, 출퇴근이 편해지면 좀 더 행복할 거야, 근무지를 옮겨 그 사람들과 멀어지면 진짜 살 것 같을 거야,, 조건이 붙은 미래에 내가 가려는 꽃길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보였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의 일상을 조금씩 지켜내가고 있구나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비우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러다 최근에 나는 스스로를 크게 되돌아보는 일을 겪었다. 미니멀이고 뭐고 다 내 마음의 도피처를 찾으려 떠들어댄 것뿐이지, 또다시 내가 못나보이는 순간을 맞닥뜨리자 여전히 그 순간에게 내어줄 마음의 구석자리 하나가 없어 분노하고 말았다.
혼자가 된 시간을 보내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명상에 관련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명상이란 머릿속의 생각을 비우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데, 되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이라고 했다. 눈을 감았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거나 어떤 사람이 떠오르거나 무슨 일이 떠오르거나.. 나 자신에게서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명상의 출발이었다.
내가 실천한 미니멀라이프와 닮아있었다. 내가 엄청난 비우기에 성공한 게 아니라서일지 모르지만,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단순한 물건 비우기가 아니었다. 물건을 버린다. 줄인다. 물건을 덜 가져야 한다. 더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무소유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느낌의 미니멀이 아니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선 내가 가진 물건을 들춰내 들여다보고, 내가 가진 물건이 무엇인지 얼마나 가졌는지 알게 되는 과정을 지나와야 했다. 자그만 네모의 원룸에서 고작 몸만 몇 번 뒤척여 요리조리 쳐다만 봐도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며칠째 뜯지 않고 있는 택배는 없는지, 쓰고 있는 샴푸를 며칠이나 더 열심히 써야 화장실에는 샴푸 하나만을 남길 수 있을 건지,, 바지를 두 개나 샀지만 지금의 몸에 잘 맞아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끼진 않는지 신경 쓰이지 않아 좋구나, 청소가 귀찮은 아베다 빗이랑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눈썹칼들을 이제는 진짜 버려야지 ..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비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물건을 잘 기억하고 잘 알아차리는 것”
나의 진짜 미니멀라이프는 물건을 줄이려고 하는 것보다 내 관심과 주의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두는 것에 있었다. 내가 가진 물건을 잘 알아차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더 좋은 것이 아니게 되고,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가진 것”이고, 다른 새로운 물건이나 남이 가진 물건에 쓸데없는 욕심을 (그전보다) 떠올리지 않았다.
내가 가진 물건도,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어떠한 생각의 모습들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날들과는 무언가 분명 달랐다. 오늘의 집 어플 속 예쁜 집들을 보며 와 이렇게 잘 꾸며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니 -! 했지만, 이제는 그 집이 남들에게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디자이너나 마케터의 집인 것이 보였다. 그냥 나같은 애들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올리브영 폼클렌징 코너에만 가도 와 이 제품도 왠지 좋아 보이고 이거는 무슨 1등이고 다 쓰면 이걸로 사봐야지 -! 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물건을 끝까지 잘 사용해 내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가 먼저 떠올랐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이니~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어마어마한 감량길(?)은 없어도 늘 내가 가진 물건을 잘 들여다보고 잘 알아차리는 것에 힘을 써볼 생각이다. 나의 하루는 똑같이,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괴롭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같은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무던히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털어지도록 오늘 하루 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릴 것이다. 사실 퇴근 후에 침대에 누워 웃긴 짤 몇 개만 봐도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일들이 대부분인 사실을 떠올려본다. 물건들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고,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아무런 인지정보도 없는 채로 보여지는 것들로만 남들과 비교하며 무너지거나 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일이 없도록 내가 가진 물건과 내 일상과 내 사람들을 더 소중히 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미니멀라이프. 그게 뭐라고 나를 브런치 작가로 만들어주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평생 지켜야 한다^^. 그러니 버리지 말고 잘 기억하자.
몇 개월간의 나의 솔직한 이사준비 과정과 지나온 생각들. 못난 나의 마음. 함께 해준 사람들. 글을 써본다고 골 싸맸던 시간들. 빼야 하는데 얻은 것이 더 많은 이 작은 집이 나에게 정말 잊지 못할 선물이었음을!
* 유튜브 희렌최널 Hirenze "걱정에 지지 않는법” 불안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 (with 마보 유정은 대표) 편에 공감을 얻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