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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Sep 02. 2023

Pretender

몽글몽글 순두부 서점 -5



그날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는 잠깐 쉰다는 것이 잠이 든 거에요. 매번 늘 그랬는데도, 노곤노곤해진 몸뚱이가 그 시간에 찾아오는 잠을 어떻게 막을 도리는 없었지요. 그렇게 한두시간 정도 자다가 눈을 뜨면, 이번에는 아침이 아니라 밤이 저를 맞아주었으니 하루가 두번 시작되는 그 잠을 어떻게 놓을 수가 있나요.


그날도 밤을 맞이할 요량으로 냅다 자고 있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어요. 위잉- 위잉-. 이 맛있는 잠을 뺏는 것이 원망도 스러웠지만 그의 전화인 것을 알았고 게으름을 들킬 순 없으니 눈을 떠야 했지요.



- 여보세요.



더듬더듬 이불 속에서 울리는 진동을 잡은 다음, 슬라이드로 화면을 열어 그가 걸어온 영상통화를 받았어요. 깜깜했던 눈동자에 핸드폰 밝은 불빛이 팍 치고 들어오자 절로 눈커풀이 움츠러들고 눈은 게슴츠레 떠졌지요. 입술엔 단잠을 깨웠다는 원망이, 무언가 말할듯 말듯 절대 말하면 안되는 말을 담은 모습으로 담겨 앙 다문채 한쪽으로 뭉끄러진 모습이었죠. 얼굴이 퉁퉁 부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 아고, 오늘도 얼굴이 아주 예쁘네요.



그가 제 모습을 보고 망설이지도 않고 말했어요.


십년도 넘은, 집에서만 쓰는 뿔떼 안경을 쓰고 있었어요. 안경을 쓴 채로 침대에 누워서는 귀 뒤로 넣은 안경테가 베개에 눌리니까, 안경테를 꼭 관자놀이 머리카락 사이로 집어넣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편하긴 해도 꼴이 아주 흉했죠. 안경이 그냥 얼굴에 걸쳐진 채로 앞으로 기울여져 곧 쏟아질 거 같거든요. 그 모습으로 자다가 잔뜩 찌뿌린 얼굴로 깬 거에요. 그 꼴이 절대로 예쁠리가 없잖아요. 핸드폰 화면 속에 나타난 제 얼굴이 그 꼴로 나오는데 당연히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제 얼굴을 보이는대로 보고 답을 했죠.



- 그냥 얼굴이 진짜 못났어.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서 표정은 갸우뚱 했지만 사실은 그 말이 맘에는 꼭 들었다는 걸 숨긴 거였어요.



- 내가 예쁘다고 하면 예쁜 거지. 내가 몇년간 그렇게 얘기했는데 아직도 내 말을 안믿고 그런 안 좋은 말을 한단 말이야?



예쁘지 않은게 사실이라 해도, 그의 말로 충분히 예뻐질 수 있었죠. 예쁘게만 봐주는 마음이 제 귀에 닿은 잠깐의 순간에 저는 정말 짠-하고 예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예뻐지는데 이렇듯 참 쉽고 멋진 방법이 있었다니요.



결국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든 간에, 나를 보는 눈빛은, 나를 안아주는 손길은 누군가에게서 오는 것이라 그 눈빛과 그 손길이 저를 진짜로 따듯한 빛으로 만들었어요. 밤하늘의 별이 외롭지 않은 건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별을 올려다보고 있기 때문인 것 처럼요.



                                          ***


그냥 책과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이니 부탁할 게 있는게 아닐텐데도 먼저 고개를 낮추며 꾸벅-, 인사로 문을 여는 손님들도 있었어요. 처음엔 낯선 것들이 두려운 아기처럼 서점 이 곳 저 곳을 경계하며 눈으로 훝었죠. 경계심이 높을 수록 행동반경은 작아지고 몸짓은 보기에 더 귀여워져요. 이 서점은 무서운 곳이 아닙니다. 경계가 열리면 수색을 시작해요. 수풀 사이사이를 폴짝 뛰는 토끼처럼, 보물찾기를 시작한 소풍 온 아이처럼.



고양이들처럼 발자국 소리도 없이 어느새 서가 한 자리에 자리잡은 분들도 있었어요.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이때 저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됩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을 몰래 훔쳐보는 것 만큼 사람에게 반하기 쉬운 일도 없으니, 왼손으로는 책등을 받치고 잠깐 시간이 멈춘듯, 고개조차 움직이지 않다가 그제야 시계바늘이 움직여서 책장 우측 끄트머리 한장이 스르르 넘겨질 때 그 멈춰있던 시간동안 손님과 사랑에 빠지는 건 제가 이 곳에서 일하며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니까요.



그냥 저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당신도 모르는 모습이 참 예쁘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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