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가운을 입는 시간

옷을 입기 전, 몸을 기다리는 일

by 새오

나는 물기를 닦기 위해서 샤워가운을 입지 않는다.
로션을 바르고 난 몸으로 바로 옷을 입는 게
그냥 싫어서 입는다.


수건으로 몸을 닦아도
몸에는 항상 조금의 물기가 남아 있다.


그 상태에서 로션을 바르면 피부는 촉촉해지지만,
바로 옷을 입기에는 어딘가 찝찝하다.


그 찝찝한 상태로 옷을 입으면
괜히 하루가 급하게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직 정리가 안 됐는데,
다시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옷을 입기 전에 가운을 입는다.
로션이 몸에 흡수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몸이 조금 마를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다.


그 시간 동안 드라이를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서 있기도 한다.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을 뿐이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너무 공주님 같다는 말,
그래서 어떻게 현실을 살아가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내 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시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몸이 피곤하면 쉬는 게 당연한데,
이상하게도 감각이나 기분에 대해서는
늘 “이 정도는 참아도 되지”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더 빨리 지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몸을 다루지 않으면
일도 잘 되지 않는다.
감각이 흐트러지면
머리도 함께 둔해진다.


그래서 이 짧은 중간 시간이 필요하다.


샤워가운은 나에게
씻고 나서 바로 옷을 입기 전까지의
그 애매한 시간을 건너게 해주는 도구다.


오늘 하루를 바로 다시 입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내 몸이 먼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방식.


가끔은 귀찮아서
그냥 옷을 입을 때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나는 이 시간을 지키고 싶다.


잠깐 멈춰도 괜찮다는 생각을,
적어도 내 몸에게는
해주고 싶어서.

작가의 이전글잠깐 손을 멈춰도 괜찮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