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자는 바람이 된다
떠난 자와 머무는 자 사이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부럽고, 멀리 떨어져 살아 본 사람에게는 머물러 사는 사람이 부럽다'.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고대로부터의 야생적 생활에 대한 무의식적 회귀 본능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무어라 꼭 꼬집어 낼 수 없는 그런 '막연함'
'아련함'을 안고 살아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태초에 지구에서 발원한 포유동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발원했을 수도 있다는 상상에까지 이르게 한다.
어려서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과 의아함으로 가득한 시기를 통과하게 된다.
물론 어려서 자란 주변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들은 이러한 상상력을 북돋아 주기도 하고 제한하기도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너무도 많이 들었던 '맹모삼천' 이란 사자성어는 참으로 '명언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려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극히 제한된 거리나 공간을 오가며 생활한다.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 반경이 될 것이다.
물론 요즈음에는 자동차 문화가 일발화 된 시대라 약간은 다를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매우 예민한 시기이다.
아이들의 그런 상상력의 내용들은 참으로 천차만별로 떠 올랐다 사라지는 것이 일쑤이다.
그중에 예를 들어 보면, '어떻게 하면 저 하늘을 새들처럼 날 수 있을까?'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저 달과 저 별은 왜 저리 아름다운 걸까?'
'귀신이 잡으러 오면 어떡하지?'
등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상들 중에는 '아~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하였을 법한 내용이다.
그것은 아마도 바람의 속삭임일 수도 있다.
고대 조상들로부터의 영혼의 연결 내지는 조상들부터의 영혼의 '부름'일 수도 있다.
'떠남'에는 사람들로부터 떠남, 집으로부터 떠남, 본국으부터 떠남 등이 있을 수 있다.
'떠남'은 멀어짐이다.
때로는 작별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정을 지켜야 하는 사람 혹은 직업과 직장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사람들 에게는 '정주'가 일상이다.
바람이 불어 지나가는 골목이나 산책로를 지나다니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며 지나치는 것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센 바람'이 불어오는 경우를 만나게 되면 그때는 좀 다를 수도 있다.
'와! 바람'
그것도 잠시일 것이다.
길어야 몇십 초 정도 '바람'이란 것에 대한 인식을 떠 올릴 것이다.
고대의 조상들은 도보나 말을 타고 근거리나 원거리를 통행하며 삶을 영위하였을 것이다.
주거하는 동굴이나 움막집을 나서면 거의가 펼쳐진 들판 내지는 평원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에 더욱 밀착한 생활을 하였을 것이며 바람의 변화에 민감하였을 것이다.
물론 산악지역에 주거하는 사람들도 이런 유형에 포함될 것이다.
산업의 발달과 이에 따른 대도시화는 대형 건물과 빌딩들을 마구 양산해 내었다.
건물군과 빌딩들 숲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는 자연스레 바람의 흐름이 차단되거나 분산하게 된다.
사람들이 바람의 존재를 잊거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바람에 대하여 점점 무감각 해지고 무형에 대한 지각이 무디어지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아이들의 엄마들은 어린아이들을 사방이 가려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거리에 나선다.
나쁜 것은 빨리 대중화된다.
변화에 빠른 것이 현명한 엄마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도시의 아이들은 더욱 자연을 접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비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비극인 것이다'.
'머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머물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바람의 본성이라 할 것이다.
주어진 제약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한다.
바람이 전해 주는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기 쉽다.
사람은 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집중하기 쉽다.
안락하고 편안하고 소유하고 '행복'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기가 쉽다.
그렇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굳이 '사후세계' '철학' '수학' '물리학' '역사' '언어학' 등에 대하여 배우지 않고 살면 된다??
오래된 고전이나 문장들이 왜 가치가 높은 걸까?
독서와 많은 책 읽기는 왜 강조되는 걸까?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사람에게 주어진 은혜 중에는 '상상' 하는 것과 '성찰' 할 줄 아는 것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떠남'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떠남' 내지는 '먼 여행'이 생각처럼 그리 쉽거나 간단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떠남은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혼자 먼 길을 떠나 본 사람은 알게 된다.
호텔이나 숙박지를 미리 정해 놓거나 여럿이 떠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떠남'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여행'이다.
보통 여행이라는 말에는 때가 되면 먹을 것이 있고 저녁이 되면 돌아갈 곳이 있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떠남'은 흔히 말하는 해외여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지가 적어도 10여 개국 이상 멀어서 목적지가 있으나 없고, 숙박지나 먹을 것들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목적지가 있으나 없고, 돌아 올 곳이 있으나 돌아 올 기약이 없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 대지에 혼자 서본다.
낯 선 땅, 언어가 다른 곳을 혼자 지나며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황량한 바람이다!'
가슴과 심장을 도려 낸 것 같은 기분이다.
바람과 일체가 된다.
자신이 바람이고 바람이 자신이 된다.
자신은 없고 바람만 남는 기분이다.
바람이 속삭인다.
'너는 한순간 ~휙!'
'너의 목숨은 나처럼 휙 하는 순간 증발해 버리는 미약한 존재'
호흡은 하고 있으나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실체.
가슴은 붙어 있으나 텅 빈 가슴.
뼈는 살점에 싸여 있으나 텅 빈 뼈 같은 상태.
그것은 바람 때문이다.
자신의 땅 자신의 집 자신의 마을이나 도시 근처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람이다.
봄에 부는 한들 바람.
여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가을에 부는 거친 바람 내지는 태풍.
겨울에 부는 찬 바람.
바람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시멘트로 덧 입혀진 도시에서 부는 바람은 순수 자연의 바람의 양분을 잃어버린 바람이다.
의미나 메시지가 걸러진 맹탕 바람이다.
바람은 시간의 시원처럼 끝없는 곳에서 불고 있었다.
시간의 시작을 우리는 알 수 없듯이 바람의 시원도 알 수 없다.
'빅뱅' 이후에 바람이 있었을 수 있고 '빅뱅' 이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
바람은 우주가 살아 있음이다.
우주의 호흡은 바람이다.
우주가 호흡을 하니 사람이 호흡하고 땅과 지구의 만물들이 호흡을 하는 것이다.
바람이 멈추면 우주의 생명이 멈추는 것!
사람이 호흡을 멈추면 죽음이다.
바람은 '대 호흡' 자연과 사람은 '소 호흡'이다.
자연에서 부는 바람은 사람과 자연을 가르친다.
바람은 사람과 자연을 끊임없이 흔들거나 깨어 있기를 원한다.
바람은 때론 부드러운 음악이 되고 아름다운 글이 되기도 한다.
바람은 때론 매서운 파괴자가 되고 단호한 경고자가 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나 광야에서 만나는 바람은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온갖 시련들을 증폭시켜 놓고야 만다.
정신을 빼앗기도 하고 정신을 바짝 세워놓기도 한다.
인정사정이 없는 냉혹한 훈련이다.
자신이 아주 깊은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외딴곳 인적이 전혀 없는 곳에서도 바람은 불고 있다.
유령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모래 누더기를 걸치고 형체를 드러 내기도 한다.
수시로 모양을 바꾼다.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바람은 사람이나 꽃과 나무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
바람은 우주의 교사이다.
'떠남은 바람이다'.
'떠남은 버림이다'
'떠남은 비움이다'
'떠남은 고독이다'
'떠남은 결국 혼자임을 배운다'
'떠남은 눈물'
'떠남은 더 큰 상상을 맺게 한다'
'떠남은 거듭나는 과정이다'
'떠남은 죽음을 내포한다'
'떠남은 감사를 소중히 한다'
'떠남은 자연과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떠남은 생생한 종합 단련이다'
떠남에는 잃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나 잃는 것은 열등품, 얻는 것은 우등품이다.
혹독한 '떠남'을 무사히 완수하게 되면, 한층 높은 차원의 세상을 맛보는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혼자 떠난 자는 막혀도 막히지 않고 쓰러져도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바람이 된다.
사람이 바람이 될 때 '자유로움'을 알게 된다.
사람이 바람이 될 때 '자연'과 하나가 된다.
사람은 자연이며 자연은 영혼의 정원이 된다.
사람은 언제든 바람이 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