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을 기다리는 사후 심판
광주와 민족의 역사는 알고 있다
인생이란 하늘의 구름 같다!
여름날 같던 청춘의 짧은 날들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연들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이야기들이 있다.
각 사람의 인생길은 구름처럼 변화가 참으로 무쌍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인생의 앞날을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일까?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집에 머물고 있는데 연세 지긋한 스님 한 분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당시의 대부분의 동네의 집은 마당 앞의 커다란 대문은 늘 열린 채로 놓는다.
가족이 모두 멀리 외출 시에만 대문을 단속하여 둔다.
마당 앞에는 커다란 지하수 우물물이 있었다.
이웃 사람이든 지나가는 행인이든 누구나 물을 마시러 집안으로 들어오곤 하였다.
스님은 마당을 통해 안채가 있는 봉당 앞에 정지 자세로 염불을 외우셨다.
어머니는 두 손을 합장하고 스님의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 마치기까지 기다리셨다.
스님이 목탁소리와 염불을 마치자 방 앞에 연결되어 있는 목조 마루에 스님이 앉기를 권유하셨다.
어머니는 불교 신자이셨다.
불교 신자이긴 하였지만 정해진 날에 정해진 절에 다니며 예불을 올리는 정도로 열심을 하지는 않으셨다.
대신에 집에서 이른 새벽 부엌에서 당신 혼자 예불을 올리셨다.
간혹 녹음기를 틀어 불경을 듣기도 하셨다.
당시 전기불이 들어오기 전에는 건전지를 사용하는 라디오 겸 녹음기가 대단한 존재였다.
방문은 열려 있었으므로 방 안에서도 스님과 어머니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시던 중 어머니는 잠깐 앞으로 나오라며 부르셨다.
호기심이 가득한 시기였다.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 좋아하는 나이였다.
마루 앞으로 나가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스님과 대면을 하였다.
태어나서 그동안 체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스님은 어머니로부터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 등을 들으셨다.
이리저리 마주 앉아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살펴보시기도 하였다.
"물을 항상 조심하도록 하고 어디 얼굴 좀 보자!"
"뜻이 크고 영특하구나! 입모양을 보니 입놀림이 무겁고"
"20대에 큰 환난을 만나게 되지만 잘 넘기면 늦은 나이에 커다란 운이 들어 올 팔자야!"
그때 스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중고등 학교를 지나면서 잊고 살았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우연한 기회에 사주를 본 적이 있다.
"대기만성이야!"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고 늦은 나이에 대성!"
"결혼하지 않을 괘!"
그리고 다시 운명의 항해는 계속 이어졌다.
운명은 피하지 못할 거칠고 사나운 태풍을 향하고 있었다.
1980년 대는 전두환의 시대였다.
전두환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잡고 거침없이 행동했다.
해방 이후 가장 암울하고 어두웠던 날들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광주는 맨 손으로 저항했다.
전두환은 가차 없는 무력을 동원하였다.
광주는 외부와의 일체의 연락이나 물자의 공급이 차단되었다.
총칼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시민들은 무력하게 진압당했고 처참하게 쓰러졌다.
이러한 소식은 암암리에 서울로 퍼졌다.
'분노감과 슬픈 좌절이 젊은이들을 흔들었다'
그때는 그랬다.
많은 지식인들은 정의감은 가득했으나 억누르며 냉정하려는 노력을 했다.
당시의 많은 대학생들이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서울역을 비롯하여 각 대학교 캠퍼스에서 수시로 개최되는 각종 시위나 데모들은 그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물러가라!"
"군부정권 몰아내고 민주주의 쟁취하자!" 등의 구호와 집회가 당시의 일상적인 행사가 되었다.
대학교와 그 주변은 거의 매일 희뿌연 최루가루가 난무하였다.
도시의 분위기를 대변하여 주듯이 하늘은 우중충 한 날들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업자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각자의 사무실을 출퇴근하는 모습이다.
하루의 해가 저물면 지인들이나 친구와 어울려 소주나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약간의 위로를 삼는 시기이기도 했다.
'참고 인내해 보자!'
'인내와 침묵의 시간들'
어느 날 저녁 용산에서 볼일이 있었다.
볼일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하여 가로등 켜진 골목길을 걸을 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후방으로부터 달려오면서
"도와주세요!"
너무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다.
아낙네인지 아가씨인지 모르지만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앞 턱밑에 다가섰다.
자신을 납치하려는 남자가 있으니 막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건장한 남자 한 명이 근처 골목에서 나타났다.
여인의 말만 듣고 구해 주어야 한다는 의협심을 발동하였다.
여인이 바로 앞에 서 있었으므로 몸은 부자유스러웠다.
남자는 그 여인을 노려 보며 다가서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손보다 발이 앞서 나갔다.
발이 얼굴 부위에 살짝 지나쳤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아쿠!" 하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이후 그 남자의 요구대로 용산 경찰서에 갔다.
위험에 처했던 여인을 구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에 꺼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형사 앞에서 진술 조서를 작성하면서 이상하였다.
여인의 태도와 말이 이전과 달랐다.
그 여인과 쫓아온 남자 사이는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 남자는 밖에 나갔다 돌아와 '치과 진단서'를 첨부하였다.
'이게 아닌데!'
졸지에 폭행 상해에 해당하는 범법자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형사에게 사정을 했다.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어둠 속에 여인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 것이 어찌 죄가 된다는 건가요?"
형사는 냉정한 얼굴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군!'
'이런 어이없는 경우라니!'
피해 남자와 합의에 이르지 않으면 검찰로 입건한다는 형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사실 형사 말대로 입건이 되어 검찰에 송치되어도 재판에서 무죄로 판명 날 사안이었다.
당시, 학업 하는 대학생 신분이었고 그 이전에 범죄를 지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밀과외를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깜깜해졌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듯이 합의금을 물고 합의를 하여야 했다.
경찰서 문을 나서면서 머리에서 사건의 전말이 떠 올랐다.
'당했다!'
그 두 남녀는 전문꾼이었다. 순진해 보이는 청년을 선택해 연출을 한 것이었다.
담당 형사 역시 그 남자를 잘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어서 나올 때 '씩'하고 웃던 형사의 미소가 뇌리에 박혔다.
'속았다!'
'억울하다!'
'썩은 형사, 마피아!'
전두환 정권은 그랬다.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하여 경찰과 형사들의 불법적 거래나 행위를 눈 감아 주고 있었다.
나아가 경찰과 형사들의 만행과 불법적 행위를 장려해 주는 분위기로 이끌었다.
군부 정권, 장관들 특히 치안을 담당하는 무리들은 초법률적 혜택들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생충들끼리 상부상조하며 부를 축적하는데 혈안이 되어 가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독서실 장기 회원으로 입실하였다.
공부에 전념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두어 명의 신사복 차림 남자들이 독서실에 거칠게 들어섰다.
구두를 신은 채 독서실 복도로 들어섰다.
마침 방실에서 문을 나오다 서로 마주 서게 되었다.
구두를 신은 채 들어 선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노량진 경찰서 소속 형사들인데 수배 중인 불순 세력을 수색 중이다"
말투나 행동을 보아서는 형사가 아니라 깡패 같아 보였다.
"수색영장을 첨부하지 않으면 실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
이어서 독서실 내부로부터 소란을 들은 직장인과 독서실 회원들이 문을 열고 나왔다.
형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들어왔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평상시대로 다시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형사들이 다시 돌아 오리라는 예상을 미처 해두지 못했다.
이번에는 힘이 좋아 보이는 전경들을 5~6명 대동하고 독서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전경들에게 사전 숙지를 보내 두었는지 행동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형사들의 지시에 따라 전경들은 달려들었다.
머리채와 팔과 손목을 나누어 붙잡고 비틀면서 순순히 따르라 했다.
전경들의 강력한 제압하에 독서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사복을 입은 형사들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전경들이 강제로 데려간 곳은 한강변에 있는 어두컴컴한 공터였다.
인적도 없고 통행인도 거의 없는 곳이다.
전경들이 둘러싸고 가운데 무릎 꿇은 채 앉아 있게 한 다음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명이 외치기를 "고분고분하도록 버릇을 잘 고쳐!"
형사들이 이전에 있었던 사소한 마찰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팔다리 등을 꺾어 반항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을 샌드백 치듯이 팼다.
전경들은 모두 자리를 떠나고 어둠 속에 정적만이 흘렀다.
코와 입에서 따뜻하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렀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앞이빨 한 개가 이상하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에 대한 자포자기 심정과 더불어 치욕감이 차 올랐다.
'짐승들!'
'내가 왜적이나 원수 짓을 했더냐? 이게 무슨 나라냐!'
'깡패 집단들!'
달리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1984년, 다시 대학교에 복학을 하였다.
그리고 일생을 바꾸어 놓을 불운의 일정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1987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사망.
1989년은 이내창 의문사 등등.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실종자, 지체 불구자 내지는 정신 이상자로 살아가는 자.
대학생과 민주인사 관련 비극적 소식들이 굵직하게 장식되었다.
그들은 인생의 불운을 피하지 못하고 새벽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1987년 여름의 어느 날 중앙대 흑석 캠퍼스 약대 건물 앞에서 전경들의 포위에 걸려들었다.
전경차 일명 '닭장차'에 올라타면서부터 곡식 타작하듯이 구타를 당하였다.
곤봉과 워커 발들이 날아들었다.
배고픔에 굶주렸던 야수처럼 그들은 변했다.
머리통과 정강이 어깨 부위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다.
그들은 그렇게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것이다.
잘 훈련받은 사냥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바로 앞 도로를 지나가는 행인들은 지척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행을 그 누구도 알리가 없다.
고개를 약간만 올려도 머리통에는 곤봉이 날아와 불꽃이 튀었다.
굶주린 야수들의 먹이가 되어 만신창이로 바뀌었다.
노량진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노량진 경찰서 지하실로 딸려가 두 명의 형사에게 할당되었다.
두 명의 형사 중에 한 명은 성격이 잔인했다.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이쑤시개를 손톱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의 머리통이 그리도 단단하였다.
곤봉으로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이루 설명이 안 될 지경이다.
정신이 나갔다.
다시 정신을 차리면 시멘트 바닥에 볼펜을 가로 방향으로 놓고 엎드려뻗쳐.
머리의 이마를 볼펜에 올린 상태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로 버티어야 한다.
30여 분이 지나면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1시간 정도 버틸라 치면 양 다가 후들거리다 '쿵'하고 시멘트 바닥에
몸뚱이가 떨어져 버린다.
'형사는 재촉했다'
"똑바로 하지 못해!"
다시 모든 힘을 쏟아 올려 본다.
다시 바닥에 '텅'하고 몸뚱이는 쓰러지길 반복했다.
형사는 몽둥이로 내리쳤다.
몸 떵이는 작대기로 맞은 개구리처럼 쭉 뻗었다.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후들거렸다.
"엄살 치지 마!"
"너 같은 거 한 명 없어진다고 해도 아무도 몰라! 알았어?"
그렇게 3일 정도 지나갔다.
'잔인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날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 캠퍼스 앞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였고 학생들의 천진한 웃음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어머니 얼굴도 떠 올랐다'
'어머니가 비벼 주시던 비빔밥'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잠이 들었나 보다.
사람의 의지나 스테미너와는 상관이 없는 비몽사몽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기억이 뜯겨 나갔는지 기억들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몸은 구로동에 있는 집에 누워 있었다.
어둠 속이었다.
뱃속이 심한 통증과 함께 견디기 힘든 메슥거림 때문에 의식이 조금 돌아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며 뱃속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역겨운 액체를 뿜었다.
야수 같은 신음을 내뱉어 내면서 호흡을 거칠게 하였다.
어머니께서 달려오셨는지 방문을 열면서 전기불 스위치를 올리셨다.
조명이 밝아지고 나서야 그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 은 붉은 '피'였다.
그동안에는 비린내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비린내를 잘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비린 냄새가 심하게 났다.
대량의 피가 방바닥과 이불을 붉게 물들였다.
대량의 피가 내장에 고이다가 한계에 이르자 폭발해 나온 것이다.
어머니는 이 장면을 목격하시고 비명을 지르며 이웃에 구원을 외치시면서 쓰러지셨다.
어머니와 당신의 아들은 차례로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의식이 돌아와 눈을 떴을 때는 자신의 몸이 병원의 병실에 눕혀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두 팔과 몸의 여기저기 주사기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얼굴의 입과 코를 덮는 산소 호흡기가 보였다.
출혈 사건 이후로 어머니는 시름시름 병으로 자리에 누우셨다.
병원과 약국을 열심히 왕래하여도 병세는 더욱 악화되셨다.
살이 급격히 빠지시고 야위어져만 가시는 것이었다.
51세의 젊은 연세에 쓰러지시고 1년을 더 넘기지 못하셨다.
52세가 된 어느 늦은 봄날에 끝내 호흡하시기를 멈추셨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등지시자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듯하였다.
좌절과 낙담 속에서 헤어 나지를 못하였다.
덩달아 건강이 나빠졌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인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극심한 고문과 구타의 후유증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더 해졌다.
견디다 못한 여동생은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힘겹게 살던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꿈에 보이셨다.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단지 지극히 실망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려다보시다 사라지셨다.
다음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이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낸 거지?'
'이런 못난이!'
새롭게 마음을 다졌다.
이후로도 고문과 구타의 후유증은 좀처럼 나아질 기색이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더욱 허약해지고 심한 기침을 동반한 천식이 들어섰다.
경제적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 병원에 다니는 대신 주사 놓아주는 동네 아주머니를 불렀다.
장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니 처음에는 튀어나와 있던 핏줄들이 모두 숨어 버렸다.
침술과 부항혈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홍채 진단'에 관한 글을 읽었다.
홍채 진단하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찾았다.
홍채 진단의 결과는 심각했다.
가장 염려를 하였던 기억력 부분에 관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뇌가 손상을 입어서 '치매 증세'가 조기에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럴 수가!'
'조기 치매라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도박을 걸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무력하게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똑똑하게 보았다.
현대 의술의 한계를 오랫동안 관찰하였다.
병원에 입원할 때에는 걸어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영안실로 향하는 환자를 수없이 목격하였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서는 치료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지구 어딘가 숨겨진 지식들이 있을 것으로 믿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마치기 싫다! 한국을 떠나 해결의 답을 찾는 거다!'
무리한 시도인 줄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면서 몇 년 정도를 마음으로 서서히 준비하였다.
어디서 어디로 갈지?
몇 나라 정도를 가야 할지?
경비 문제?
필수적인 사전 지식과 사전 준비물은?
체력은?
언제까지?
무엇 한 가지 뚜렷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모든 수난과 고통은 모두 한반도의 분단에서 연유한 것들이다!'
'이 몸의 아픔은 한반도의 아픔이련가!'
'좋다, 떠나자!'
일단, 사이클 배낭에 보관할 약간의 흙과 휴대용 태극기가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2벌의 사이클 복장에 'One Korea'라는 인쇄를 새겨 넣어 배낭 속에 보관하였다.
사이클을 타고 서울에서 해남까지 세 번 정도 왕복을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서해안을 따라 남해안을 돌아 부산에 당도하였다.
최종적으로 전국 일주를 다시 완수하였다.
유럽 방면으로 떠나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동해안을 달리면서 준비물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 이 한 몸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한 마리 작은 새!'
가엾은 작은 새는 한반도를 떠나려 하고 있다.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 없고 생과 사를 기약하지 못할 곳으로 혼자 나가야 한다.
2001년 7월 30일
인천의 여객선 터미널.
중국의 천진행 편 도표 한 장을 구입하여 주머니에 넣었다.
배웅객 한 명 없는 대합실을 지나 홀로 출국대에서 출국 수속을 밟았다.
착잡한 마음 가득하여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서서히 여객선에 올랐다.
어두운 밤은 지나고 날이 다시 밝을 무렵 여객선은 이미 중국의 영해에 들어서 있었다.
<전두환과 협력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당신들은 여우 잠꼬대 같은 말도 안 되는 대외 명분을 내 걸었으나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당신들이 민족 앞에 저지른 잘못은 너무나 크고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렵다"
"당신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8년을 후퇴하였고 경제, 문화 등은 암흑의 시대였다"
"광주시민들과 서울을 비롯한 전 국민을 기만하고 압제하여 사망자, 부상자, 실종 내지 사망자들이 속출하였다"
"고문과 구타의 후유증은 치료되지 않으며 평생 동안 시달리는 악몽이다"
"당신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사후에 받을 형벌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죄하여야"
"숨겨 놓은 재산을 풀어 피해자들께 성심으로 배상을 하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