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 보고서, 집단구타 체험
제일 많은 나라에서 구타당한 한국인(비공인 세계신)
#구타 #집단 #약육강식 #야만 #대통령자격
인간의 인간을 향한 구타와 폭력들은 인류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 왔을 것이다.
구타와 폭력들은 인간의 유전적 본성일 수도 있다.
구타와 폭력을 가하는 측과 당하는 쪽이 존재한다.
1인이나 소수에 의한 구타나 폭력이 있을 수 있으며,
집단에 의한 구타나 폭력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타와 폭력은 1인에 의한 구타나 폭력보다 훨씬 위력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나마 국내의 도시나 마을에서 당하는 경우에는 서로 말이라도 통한다.
그러나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단구타나 폭력을 당하는 경우는 정말 황당하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땅에서 당하는 구타나 폭력은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에서 같은 민족으로부터 짐승 같은 고문과 구타를 당해본적이 있으므로 낯설지가 않다.
국내에서 이든 이국에서 이든 치욕스러움과 자괴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구타와 폭력을 당할 때 느끼는 아픔과 당황스러움에 서럽다.
구타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후 홀로 피 흘리며 버려진 자신의 무력한 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서러워진다.
벌거 벗겨진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본다.
세상 사람들이 모멸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러시아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냉혈한들이었다.
러시아 청소년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러시아 청소년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몽둥이를 손에 든 청소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사이클과 등에 짊어진 가방을 몽둥이로 툭툭 쳐 보며
어슬렁거렸다.
나름대로 대담하게 그들의 눈초리 싸움에 밀리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일단 일을 벌이면 살육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사태가 진정되었다.
운이 좋았다.
하루는 인도에서 억세게 재수가 없는 날을 만났다.
방글라데시 국경에서 몇십 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기억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인도의 캘커타로 가는 도중이었다.
도로변에는 이름들이 가로수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었다.
중국의 마을들처럼 도로변을 따라 마을들이 있었다.
날씨가 무더운 탓이었는지
도로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인근 지리에 대하여 물어볼 사람들이 필요했다.
대문이 없는 어느 집 앞에서 사람을 불러보았다.
10대의 나이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다시 집안을 향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질렀다.
순간, 불길한 생각에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이내 집안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큰일이 벌어질 줄은 예상을 못했다.
그 자리를 떠나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게 오판이었다.
그 집에서 뛰어나온 사람들은 더욱 거세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앞뒤를 둘러쌓다.
알아들을 수없는 그들의 말이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다짜고짜 등에 매고 있던 가방과
사이클을 빼앗았다.
머리채와 팔다리를 잡은 채 들고 나온 막대기와 주먹으로
집단 구타를 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당한 어이없는 일이다.
사정을 냉정하게 판단하여 중재를 하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달려온 젊은이들도 발길질을 하였다.
빼앗은 가방을 강제로 찢듯이 열어 물건들을 도로에
내놓았다.
그때서야 나이 좀 든 어른들이 끼어들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미 집단 구타에 의해 입고 있던 옷은 너덜거렸고
몸의 여기저기가 통증으로 쓰라렸다.
얼굴도 다르고 입고 있는 복장이 전혀 저들과 달랐다.
도둑을 잘 당한 마을 사람들의 과잉 오해였다며 사과했다.
울며 겨자 먹기였다.
아닌 밤에 홍두깨비 격이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거나 알아보려는 사전 절차는 무시되었다.
이미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고 옷과 가방은 찢어진 후였다.
현지 경찰이 소식을 듣고 나타났다.
집단구타를 가한 청년들은 모두 도주를 했다는 마을 어른들의 전언을 들었다.
억울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육체의 아픔도 아픔이거니와 마음의 아픔이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검은 땅, 태양의 놀이터 아프리카에 들어섰다.
아프리카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여겨졌다.
마지못해 들어선 메마른 땅, 척박한 땅이다.
튜니지아에서 어렵게 알제리 비자를 받았다.
알제리는 모로코와 튀니지 사이에 있는 광대한 이슬람 국가이다.
미지의 나라였다.
튀니지에서 허겁지겁 벅차게 오르고 내리고 산길을 달렸다.
어둠이 깔릴 무렵에서야 알제리 국경의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도달하였다.
이름 모를 아프리카 어느 산의 정상이었던 것 같았다.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알제리의 영토에 들어섰다.
국경의 건물 외에는 식당이나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조명등도 켜진 곳이 없었다.
하늘에서 어렴풋이 작은 달빛만 비치고 있었다.
무조건 국경 근처에서 안전하게 머물렀어야 했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사이클에 올라타고 미지의 어둠 속을 전진했다.
피로감으로 거의 쓰러질 상태에 직면했다.
아침에 한 끼를 채운 후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다.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입술도 말라비틀어지고 입에서는 쓴 내가 났다.
어느 정도 산길을 내려오면서 어둠 속에서 마을이 나타났다.
거의 쓰러질듯한 체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10대와 20대 나이로 보이는 젊은이들과 마주쳤다.
희미한 달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낯선 이방인들이란 걸 알아챘다.
알제리는 서방과 단절된 채 독자의 외교정책을 피는 나라였다.
폐쇄국가의 국민들은 외국인에 대해 호전적인 경우가 많다.
처음 본 듯한 이방인을 본 알제리 청년들은 이유 없는 증오심을 보였다.
'국경에서 날이 샐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전기불 하나 들어오지 않은 마을 앞이었다.
상대는 숫적으로 너무 많았다.
언뜻 보기에도 이색적인 가방과 사이클을 빼앗으려 했다.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될 소중품들이었다.
마을로 들어갈 생각을 바꾸었다.
여차 저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궁여지책 사이클과 가방을 도로에 내팽겨 치는 모습을 보였다.
태권도의 고난도 기술을 보였다.
기합소리를 있는 대로 힘껏 내 질렀다.
일단 저들의 기세를 누르는 데 성공했다.
발차기 주먹 지르기 시범이 효과가 있었다.
과감한 모습으로 가방을 짊어지고 사이클을 잡은 채 도로를 따라 걸었다.
간신히 위기로부터 벗어났다 생각하는데 돌 같은 것이 마구
날라 들었다.
조각돌들이 날아와 사이클과 몸을 때렸다.
머리부터 숙이고 서둘러 사이클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쫓아오는 함성소리가 들렸다.
연달아 돌들이 날아와 등과 팔다리를 때렸다.
그들 젊은 악동들로부터 무사히 벗어났다.
사이클과 가방을 무사히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알제리는 통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큰 대도시보다 시골이 더 위험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10대들의 집요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양키 고 홈!"
"양키 고 홈!"
저들의 눈에는 이방인은 모두 양키로 보였나 보다.
수많은 마을 아이들은 구호를 외치며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돌들이 날아와서 이내 사이클과 팔다리를 가격하였다.
돌에 맞은 육신은 진하게 멍들고 벗겨져 피가 흘렀다.
피가 흐르다 말라 옷과 살이 붙기 일쑤였다.
항상 날씨가 뜨거웠으므로 염증이 생기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알제리는 낯선 외국인에 대해 지극히 배타적이었다.
알제리에서는 돌세례를 제일 많이 받으며 지나간 국가로 기억에 남았다.
아프리카의 감비아와 나이지리아를 지나갈 때 역시 괴롭힘을 당했다.
마을의 십 대들이 집단으로 쫓아다니거나 돌을 던졌다.
적도 기니에서도 사나운 집단들을 피해야 했다.
아프리카 서북부에는 위치한 알제리가 손에 땀을 쥐는
위험한 국가였다.
지부티는 아프리카의 동북부에 위치한 위험한 국가였다.
두 나라가 공통적으로 이슬람 국가였다.
두나라 공통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나라였다.
두나라 공통으로 국민 생활이 지극히 가난했다.
지부티에서는 알제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집단으로
괴롭히는 사례가 많았다.
마을을 지날 때면 악의로 가득 찬 십 대들이 던지는 돌세례들을 받으면서 전진해야 했다.
세계 각국의 구타, 폭력 그리고 환대 등을 체험하였다.
집단 구타와 폭력들은 무지와 교육 미혜택의 산물 중 하나이다.
구타와 폭력을 체험하면서 홀로 울기도 했고 아파도 해 보았다.
각종 구타와 폭력의 피해자로서 수행자처럼 꾸준히 정진했다.
고독과 외로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구타한 자들을 거듭 용서했다.
구타하거나 돌을 던졌던 아이를 붙잡아 꼭 껴안아 주기도 했다.
사랑은 미움보다 아름다웠다.
야만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할수록 그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은 깊어졌다.
무지와 야만적 인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특히 육체적으로 약한 어린 아동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구타와 폭력들은 슬프다.
세계 가장 많은 국가에서 구타와 폭력을 당해 본 사람이다.
세계 많은 곳에서 구타와 폭력은 계속 자행되고 있다.
인간은 알맞은 공부와 수행의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경우에는
짐승과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이다.
수행과 연단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고진감래의 인생이 있다.
더욱 높은 깨달음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을 향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은 더욱 커져야 했다.
온갖 고난과 학대들로부터 초연했던 자신을 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여 나간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높은 차원의 사랑은 영원히 녹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