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 보고서, 바닥난 허기로 닥치면 먹었다
193개국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까무러치기 #죽기 #살기 #오기 #대통령자격
#세계음식 #실낱같은 #살아남기 #배움 #체험
한 때 우리 어린 시절에는 열에 여덟의 아이들은 흙수저였다.
어느 정치인들은 흙수저를 자신만의 면죄부 등본처럼 흔들며 동정표를 구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늘 배고픔을 끼고 살았던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배는 고팠어도 아이들 가슴은 아름답게 자라났다.
요즈음 말해봐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올리려는 글의 핵심 내용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눈물과 처절했던 체험들은 더욱 세차게
닥칠 미래에 대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아이가 음식을 가린다 '라는 말을
들어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뭐든지 다 먹었다.
없어서 못 먹었다.
하다못해 풀밭에 메뚜기부터 논 개울의 개구리까지 잡아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래도 된장찌개나 김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는 건 그나마 감사할 일이다.
어머니께서 끓여 주셨던 된장찌개와 각종의 김치들의 가치는 당시에 느끼지 못하였다.
세월이 지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야 그 된장찌개나 김치들의 소중함이 뼈가 저리도록 사무쳐 들었다.
그리고 한반도를 떠나 9억 만리, 10억 만리 먼 곳을 홀로
헤맬 때는 된장찌개 김치 생각에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듯하였다.
'음식을 가린다?'
아이들에게는 배고픔도 산교육이 된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최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집안에 먹을 것이 널려있으면 아이들은 부모의 소중함을 모른 채 성장한다.
하루 2백 킬로 정도의 일정을 사이클에 의지하는 남자에게는 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대륙에서는 그나마 지갑형 편만 허락한다면
허기질 일이 거의 없다.
세계에는 언어장벽이, 비자 장벽, 문화, 종교 장벽이
있듯이 '음식 장벽'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모든 장벽들은 극복하여야 할 과제였지만 여기서는 음식 장벽에 대하여 기술하고 싶다.
음식 장벽이란? 이런 것이다.
사람은 각자 태어난 곳, 태어나 자라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먹기에 익숙한 음식들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 먹던 음식들은 분석되어 사람의 뇌에 깊이
각인되는 것이다.
어릴 때 전혀 먹어보지 않았던 이질적인 음식을 덥석 먹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이웃나라인 일본의 현지 음식도 그랬다.
처음에는 일본 가락국수를 어려움 없이 먹었다.
그러나 물, 양념이 달랐다.
며칠인가 지나서 다시 먹을 때는 냄새와 맛이 역겨워졌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음으로 음식 장벽을 느끼게 한 곳은 인도의 음식이었다.
비하르 지역 근처 식당에서 종업원들의 놀림감이 된 적이
있다.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사람 "이라 답을 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북한 사람인가? 남한 사람인가?"
"남북한 사람이다"하고 답을 해주었다.
종업원들은 메뉴판을 보여주면서
"파탈 바게리는 먹어볼 필요가 있다" 면서 추천을 했다.
"파탈 바게리는 무언가?"
따라오라는 말에 화덕이 있는 곳으로 따라갔다.
종업원이 꺼진 숯불을 뒤져서 무언가를 집어 들어 보여주었다.
"구운 쥐!" "먹어 봤나?"
숯불에 검게 그슬러 진 쥐의 하얀 살점들이 듬성듬성 드러나
보였다.
쥐고기 말고 개고기도 있었다.
인도에도 개고기를 먹는 지역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지나갈 때였다.
잠을 잘 때는 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도로에서 지내는 일상이었다.
나폴리를 지나 고대 화산 폭발로 사라진 폼페이를 향하였다.
구름 없고 티 없이 맑은 하늘이 서해안 너머 펼쳐져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삼시세끼 피자로 땜빵했다.
시간도 절약되고 가격도 이성적이었다.
식당의 모퉁이나 길거리 포장마차식 피자 판매점을 이용하였다.
조각피자를 들고 해변가 나무 그늘을 찾아 걸었다.
청량한 바람이 가끔씩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그런데 얼굴과 복장을 보던 중년의 남자가 손짓하며
불렀다.
"챠오! 본 죠르노!"
"챠오!"하고 미소로 인사에 응대하였다.
가족들인지 두어 명의 아이들도 돗자리를 깔고 같이 앉아있었다.
이탈리아인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의아하면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늘 혼자 고독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클 복장 가슴 부분에 코리아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등과 허벅지 부분에는 '원 코리아'란 글자가 굵고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어서 낯선 자들도 알아보기 쉬웠다.
보통 이탈리아인들은 영어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영어로 말하기를 거북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 도베 비에니?" 어디에서 왔는가?
이 정도 이탈리아어는 이탈리아 입국 전부터 틈을 내서 익힌 문장이었다.
입국해서는 시간 날 때마다 공원이나 식당 주변에 버려진 신문들을 열심히 익히면서 이탈리아어를 익혔다.
사이클 타고 한국에서부터 왔다는 말을 듣고
감동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엄지를 보였다.
"코노씨 퀘스토 포르마죠?" 이 치즈를 아느냐?
"쎄이 포르투나토 오지!" "당신은 오늘 행운이다"
그들의 음식 중에 원형의 노란색을 가리키며 먹어보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들고 있는 피자와 잘 맞을 것이라 했다.
사르디니아 지역에 전래되어 내려오는 특산물이라 했다.
'카수 마르주'라는 치즈라 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피자에 치즈를 떠서 곁들여 먹었다.
치즈에 구더기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한 치즈를 가지고 엿 먹이려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도 신뢰감을 유지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맛과 냄새가 지독하였지만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지독한 냄새였다.
썩는 냄새에 신맛이 더해져 견디기 힘들었다.
그의 말을 신뢰하기로 마음먹고 떠주는 대로 입에 넣었다.
한국을 떠나 별의별 음식들을 먹어 본터라 가능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전의 체험들이 없었다면 차마 입에 넣기 불가능했을
맛과 악취였다.
카수 마르주 치즈는 양우유로 만든 치즈를 야외에 몇 달 정도 두고 말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파리들이 날아들어 치즈에 파리알들을 깐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억지로 먹었던 그 치즈는 가격이 엄청나게 고가였다.
먹을 당시에는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였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천연발효 치즈에 우글거리던 하얀 구더기들을 회상할 때면
우리네 된장 숙성 시 생기는 구더기 생각이 겹쳐져 떠올랐다.
구더기 우글대는 천연 된장 특산품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종종 메뚜기 떼들이 하늘을 덮었다.
한국산 메뚜기보다 훨씬 대형의 몸집이다.
세네갈을 지날 때였다.
메뚜기들을 자루에 담아온 장정들이 있었다.
메뚜기를 볶으면서 바라보는 한국인에게 손짓을 해 합석하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볶은 메뚜기 파티 자리에서 부족했던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타조, 고슴도치, 새, 벌레, 원숭이, 뱀, 전갈 등 보이는 대로 요리해서 먹는 것이다.
먹을 당시에는 모르고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식당이 없는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촌장을 만나 끼니를 때우는 안내를 받아야 했다.
우리네 춘궁기와 같은 아프리카 계절이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계절에는 덜 익은 망고 역시 제격이었다.
마을마다 망고나무들은 풍성하였다.
배를 채워야 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익지도 않은 청색의 딱딱한 망고 열매를 생선포 뜨듯이 잘라 소금을 찍어서
먹는 것이었다.
처음엔 먹기를 주저했다.
낯선 이방인 역시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아우!" 연신 입에서는 신물이 배여 나왔다.
입맛에 너무 어색한 맛이다.
위와 장과 뇌와 각 세포들을 위한 입의 노고였다.
닭고기는 너무 비싸서 일반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프리카 52개국을 순회하는 동안 달걀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영양실조의 늪에 빠져서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브라질부터 파라구아이 근처에서는 악어를 익힌 요리를 체험했다.
날씨도 무덥고 항상 허기에 시달리던 때라 이것저것 가릴 허세는 엄두도 내지 못한 형국이었다.
'귀신이 먹는 것이라도 따라먹으리라!'
'3일만 굶어보면 인간성이 드러난다'
볼리비아와 파라구아이 국경에서는 군인들이 만든 이구아나 요리를 먹고 영양을 보충했다.
브라질 교민과 페루, 파라구아이, 아르헨티나 교민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꾸이'라는 피조물을 만났다.
쥐보다 훨씬 크고 토끼보다는 작아 보이는 것이다.
아무튼 접시에 담겨 나온 꾸이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현지인들은 우리네 닭고기 먹을 때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세계의 오대양 육대주를 거치며 온갖 음식과 맛들 앞에서
태연했었다.
그런데 꾸이 요리 앞에서는 대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굳이 이런 표정으로 식탁에 올려야 하는 거지?'
악귀의 영화에 나올만한 장면이었다.
볼리비아에서 초대해준 태권도 사범 교민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멕시코에서는 온갖 애벌레와 곤충들을 파는 시장이 있다.
애벌레부터 전갈, 거미, 메뚜기 등 100여 가지가 넘어 보였다.
멕시코 교수의 말에 의하면 애벌레와 각종 곤충들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친환경적인 식단이라는 말을 들었다.
생태계의 긍정적 순환을 위하여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한반도에서도 고대에는 들판이나 산에 있는 온갖 애벌레들과 벌레들을 먹었으리라는 가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소, 닭, 돼지 등에 편중된 서구식 식단 대신 도입할 근거가
충분하였다.
애벌레와 각종 벌레를 어려서부터 섭취할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해 보였다.
이집트에서 특이한 음식을 체험하였다.
사육된 비둘기를 조리하여 먹는 것이었다.
비둘기 고기는 주로 리비아부터 터키에 이르는
지중해 주변 국가들에서 친숙한 요리이다.
중국에는 안 먹는 것이 없으니 당연지사 비둘기 요리가 있다.
사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선입견에 빠질 이유는 없다.
먹는 습관 먹는 전통 역시 '음식장벽'으로 인한 것이다.
유럽에서도 전쟁이나 가뭄으로 인한 대량의 기근이 발생한 경우에는 인육, 개고기 가리지 않고 먹었던 역사가 있다.
고난과 어려운 때를 당하게 되면 생존본능이 작동한다.
'음식장벽', '음식가림'이란 것도 어찌 보면 애처롭다.
입맛은 무섭다.
입맛이 바뀌면 정신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전통에 따라 지킬 것은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녀를 둔 현명한 부모의 금과옥조이다.
입맛이 바뀌면 신체의 세포들과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야생 늑대는 결코 인간의 음식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