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개국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세계 인민들 삶을 통하여 바라본 한반도
#비극 #희극 #식민사관 #분단 #대통령자격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어 보았는가?
어머니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없는 아이의 가슴을 느껴 보았는가?
사람의 손가락에는 놀라운 기운이 머물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작품 '천지창조'를 보면서 깊은 파동을 동반한 전율을 느꼈었다.
두 인물 간의 검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그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일 수도 있다.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일 수 있다.
영혼을 전달해 주고받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에서도 외계인과 소년의 손가락이 서로 닿는 장면이 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람의 손가락에는 전기가 흐른다.
사람간에 간절함을 극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고대부터 동양에서는 '기'가 흐른다고 표현을 했다.
동양과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 간의
전기 흐름을 경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매일 도로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보이는 것으로부터 작별의 연속이 발생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낯선 언어로 대화를 통해 소통을
하였던 것이다.
주로 행선지에 대한 지리적 질문, 도로의 방향, 도서관, 박물관, 시장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중국인들은 대체로 낯선 자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편이었다.
유니폼에 'One Korea'라는 커다란 글자가 있는데 무시해 버리고 묻기를 좋아했다.
"당신 어디 출신입니까?"
"한국 사람입니다" 하고 답변을 하면
남조선 사람인지 북조선 사람인지 다시 캐묻는 취미들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똑같은 질문을 받고 다녔다.
그들의 눈에는 사이클과 고급천으로 만든 독특한 디자인의 유니폼이 유별나게 보였을 것이다.
불가리아를 통과하고 이탈리아 국경에 가까이 당도하면서
사람들의 질문은 사라졌다.
프랑스나 독일의 카페나 식당에 혼자 앉아 있을 경우 옆자리에서 종종 질문을 받았다.
"어디 사람입니까?"
일종의 그들 다운 예절이었다.
유럽에서 만났던 백인들은 대부분이 절제된 문장을 구사했다.
예의와 품격을 중요시하는 언행을 보여 주었다.
언뜻언뜻 백인들의 우월의식 같은 것도 감지되곤 하였다.
유럽에 살고 있는 백인들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어떠한가?"
"남과 북의 긴장도는 어느 정도인가?"
"전쟁의 위험을 느끼지 않는가?"
대체로 유럽의 백인들 생각에는 남과 북한 사이 여차하면 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수의 젊은 유럽인들도 그런 의사 표현을 했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 저들의
인식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아시아하면 먼저 일본을 떠올려 이야기하였다.
만났었던 다수의 유럽인들은 일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유럽인들이 일본 여행을 한 적이 있거나 예정이라 설명하였다.
많은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눈에는 남한과 북한 사이는 여차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한반도는 위험해!'
'같은 값이면 한국 피하고 일본으로 여행 가겠다'
그들 잠재의식에 깔려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과 미국의 대중매체의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으며 살았던 것이다.
유럽, 미국, 중남미 언론 모두 같은 논조를 이어 발표하기 일쑤였다.
특히, 김정일의 강경한 체제와 관련된 호전적 동향은
세계 언론들이 선호하는 기사거리였다.
김일성 주석에 이어 김정일 주석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의 관심거리였다.
남미의 칠레에서 아프리카의 54개국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김정일 주석은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처럼
자유진영 언론들의 주요 기사거리였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한반도의 현재 모습이었다.
세계사와 역사는 쓰였고 기억될 것이다.
80년대까지도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기는 후끈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한 민족적 열기는 급격하게 식어가고 있다.
세계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타국의 분쟁이나 분단에 대하여
방관적 자세이거나 즐기는 속성을 보였다.
아프리카의 54개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중남미의 사람들 역시 유사한 반응들이었다.
"사우스 코리안? 노스 코리안?"
그들이 하는 질문의 저의를 분석하는 데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의 불행은 저들의 행복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은 재미있다'
약 50여 개 나라를 지나는 동안에는
남한 사람인가? 북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남쪽 코리안이다"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약 60여 개국을 통과 넘어서면서 같은 질문을 받는 경우에는
그냥 "같은 코리안"이라 답변해 주었다.
그들은 은근히 급소를 찌르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아직도 싸우고 있냐?'
'분단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냐?'
'남과 북한 사이 전쟁은 언제 나느냐?'
그들은 남한과 북한의 분단을 은근히 즐기는 표정들이었다.
세계의 사람들을 통해서 더욱 절실하게 배웠다.
세계 모든 나라를 지나면서 바라본 한반도는 슬픔을
자아냈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땅을 내려다 보아도 아픔이다.
탄식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없었다.
직접 부딪치며 체험해 보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려운 교훈들이다.
한반도는 멀리서 보면 비극 중의 비극인 것이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에게서는 더욱 가슴 아픈 체험을 했다.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은 남과 북한의 분단 상태를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겉으로 의사표현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많은 일본인들은 남과 북한 사이의 통일이 두렵다고 했다.
그들은 남과 북한 사이의 영구분단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남과 북한 사이의 지속적인 분단은 일본과 중국의 소망과 바람인 것이다.
과연 남북한 간의 지속적 분단은 서로의 총체적 이익을
얻어내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의 이익을 죽이고 있는가?
후손들은 이날의 분단 역사를 공부할 것이다.
부끄러운 이날의 분단사를 읽고 평가할 것이다.
머나먼 삼십여만 킬로미터 거리를 지난 세계로부터 다시 한반도에 들어섰다.
건물들도 사람들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길을 물어도 대부분 젊은이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눈에 띄게 불어난 것은 아파트, 교회, 병원들이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돈을 받는 곳의 사람은 웃음도 보였고 대답도 했다.
돈을 내는 식당이나 가게는 눈길도 건네주었다.
'물질주의로 덮힌 사회!'
물질주의는 원래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은 인문주의와 계몽사상 이후 인간성과 인간적인 여유를 복원하였다.
그런데 물질주의를 물려받은 일본과 한국에서 더욱 악랄한 물질주의를 팽배해 있는 것이었다.
건물마다 교회마다 어림없다는 듯이 감시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정치는 제 역할을 모르고 있었다.
교육은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있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장관들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진보니 보수니 갈라치고 싸움질에 열중이었다.
남북 갈등, 지역갈등은 해소될 가능성을 보이지 않았다.
입법, 사법의 법조인들은 거대한 카르텔의 성을 쌓고 있었다.
소위 '사'자로 끝난 특권적 직업군의 인류애적 양심은 교묘히 혼탁해져 버렸다.
서양의 모든 종교들은 종류도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남한의 기독교 종단만 해도 60개가 넘는 지경이다.
영어로 '크리스천'은 가톨릭 포함하여 이후 갈라져 나온 모든 개신교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성공회, 가톨릭, 장로교, 감리교, 여호와증인, 루터교, 침례교, 성결교, 구세군, 몰몬교 등 모두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여기에 이슬람교도와 사원들도 날로 폭증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땅에 들어서니 더 이상 "남한 사람이냐?"
"북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남한은 '얼빠진 듯이 살아가고 있다'
듣지 않아도 들리는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간다.
보지 않아도 보려 하는 노력을 단절시켰다.
하루 한 번쯤 눈을 들어 백두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볼 줄 아는 사교육, 공교육이 없다.
남한과 북한을 '멀리서 바라보면 비극이요, 가까이서 지켜보면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