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벌레들의 毒한 사랑과 전쟁

막장 아침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홍날개·남가뢰·뒤영벌의 삼각관계

by 웅토닌

치유의 숲에 봄이 오면 숲은 조용히 깨어나지 않는다.

나무보다 먼저 분주해지는 것은 곤충들이다.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어느 날, 데크 위를 기어가는

빨간색 작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홍날개다.”

예전에 산음치유의 숲에서 남가뢰를 물고 있던 바로 그 녀석이다.

홍날개, 생거진천 치유의 숲 - 숲사람들

자연에서 빨간색, 그것도 원색에 가까운 색은 경고다. 독이 있다는 신호다.

실제로 홍반디는 위협을 느끼면 뽀얀 독액을 분비해 포식자를 물리친다.

하지만 홍날개는 독이 없다. 대신 독이 있는 척 산다.

홍반디를 닮은 외형으로 포식자를 속이고,

더 나아가 진짜 독을 가진 남가뢰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남가뢰의 몸속에는 칸타리딘(cantharidin) 이라는 강력한 독성 물질이 있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물집이 생길 정도의 독이다.

그러나 홍날개는 이 독에 면역이 있다.

더 놀라운 건, 홍날개 암컷이 칸타리딘을 가진

수컷에게만 짝짓기를 허락한다는 사실이다.

홍날개 수컷에게 칸타리딘은 사랑을 위한 결혼지참금이다.


남가뢰는 몸 대부분이 배로 이루어져 있고, 날개는 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를 질질 끌며 새풀을 뜯어 먹고 다닌다.

이 남가뢰와 뒤영벌의 악연은 땅속에서 시작된다.


초여름, 남가뢰 애벌레가 부화할 시기가 되면

애벌레들은 풀잎 끝이나 꽃 위에 모여 마치 꽃처럼 덩어리를 이룬다.

이를 꽃으로 착각한 뒤영벌이 내려앉는 순간,

애벌레들은 순식간에 벌의 몸에 달라붙는다. 그

렇게 뒤영벌의 집까지 이동한 애벌레들은 벌집 안에서

알과 애벌레, 꽃가루를 먹으며 자란다.


물론 대부분은 실패한다. 뒤영벌에게 들키면 즉시 제거된다.

수천 개의 알 중 성충이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잔혹한 사이클은 매년 반복된다.


이제 다시 홍날개로 돌아가 보자.

뒤영벌의 가정을 파괴하며 성장한 남가뢰들이 땅으로 내려오면,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홍날개다.

홍날개 수컷은 남가뢰를 만나면 끈질기게 달라붙어

관절에서 분비되는 칸타리딘을 빼앗아 먹는다.

이 독은 다시 홍날개 암컷의 저장낭으로 옮겨지고,

알에도 축적되어 천적으로부터 보호받는다.


홍날개는 홍반디의 외형을 빌리고,

남가뢰의 독을 훔쳐, 사랑과 생존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가다.

남가뢰를 물고있는 홍날개, 산음치유의 숲 - 숲사람들

겉으로 보면 이 드라마의 최대 피해자는 뒤영벌이다.

남가뢰는 독 덕분에 새들도 건드리지 못하지만,

홍날개라는 새로운 천적을 만나고 만다.

홍날개는 성공적인 ‘벤치마킹’으로 사랑을 쟁취한 최후의 승자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들에게는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 된다.


이 삼각관계는 마치 손자병법을 읽는 듯한 전쟁 서사이자,

독을 무기로 사랑을 얻는 막장 아침 드라마 같다.

곤충들도 종족 번식이라는 절대적 사명을 안고, 이렇게 처절한 삶을 산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힘들다는 이유로

생의 연결을 포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오래된 문장은, 어쩌면 지금도 숲속 벌레들이

가장 성실하게 지키고 있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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