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초록(Ng, Natural-green) 혈액형
초록은 푸른색
그리고 우리는 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오랜만에 함께 농업을 공부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남에 살며 전문직으로 일하던 그는,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시골로 내려갔다. 작은 터를 잡고 농사를 짓는다 했다. 말은 담담했지만, 그 선택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왜였을까.
무엇이 그를 도시에서 자연으로 이끌었을까.
며칠 뒤 도착한 사진 한 장.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초록이었다.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색.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는 무언가를 얻으러 간 것이 아니라, 오래 묵혀 두었던 갈증을 풀러 간 것이었다. 회색 도시에서는 끝내 해소되지 않는 갈증, 나는 그것을 ‘녹색갈증’이라 부르고 싶다.
사람은 왜 초록을 보면 마음이 풀릴까.
왜 그 색 앞에서는 설명보다 숨이 먼저 가라앉을까.
지구를 ‘초록별’이라 부르는 이유는 감상이 아니라 생리다. 인간의 눈은 오랜 시간 자연 속에서 진화해 왔고, 그 결과 초록색 파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발달했다. 실제로 가시광선 스펙트럼 가운데 약 500~565nm에 해당하는 녹색 영역은 인간의 시각 세포가 가장 안정적으로 인지하는 구간이다. 초록이 선명하면서도 덜 피로한 이유다.[주1]
어쩌면 우리가 초록 앞에서 안도하는 이유는, 그 색이 ‘본래의 환경’을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공이 아니라, 생존과 휴식이 동시에 가능했던 시절의 색 말이다.
초록은 생명이다.
자라고, 회복하고, 다시 순환하는 힘이다.
그래서 초록은 늘 ‘시작’의 색이다. 새싹의 색이고, 잎의 색이며, 멈춰 있던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색이다. 신호등에서 초록이 ‘진행’과 ‘안전’을 뜻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초록은 멈춤보다 삶의 흐름에 가까운 색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초록을 제대로 부르고 있을까.
파란 하늘을 보며 우리는 ‘푸르다’고 말하고, 초록 산을 보며서도 ‘푸르다’고 말한다. 파란색(blue)과 초록색(green)을 모두 같은 말로 불러왔다. 오래된 관습이고, 그래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푸르다’의 어원을 따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푸르다’는 하늘에서 온 말이 아니라, 풀에서 비롯된 말이다.[주2] 다시 말해, ‘푸르다’의 본래 자리는 파랑이 아니라 초록이다.
우리는 이미 ‘파랗다’라는 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파란 하늘은 ‘파랗다’고 말하고, 초록 산은 ‘푸르다’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색을 표현하는 우리말을 떠올려 보자. 빨간 것을 보고 우리는 ‘빨개’라고 하고, 노란 것을 보고는 ‘노래’라고 한다. 그렇다면 초록 잎을 보고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초록’이라는 한자어 말고, 우리말로.
나는 그 자리에 ‘푸레’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놓아본다.
이미 우리말 속에는 ‘물푸레나무’처럼 ‘푸레’ 계열의 말이 살아 있다.[주3] 이는 ‘푸레’가 새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자연 속에서 사용되어 온 소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 본다.
초록은 푸른색이고,
그 성질은 푸름이며,
그 상태는 푸레다.
말이 달라지면 인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인식이 달라지면, 삶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진다.
여기서 나는 하나의 개념을 더 얹고 싶다.
사람에게도 ‘자연을 인식하는 혈액형’이 있다면 어떨까.
나는 그것을 ‘자연초록(Ng, Natural-green) 혈액형’이라 부른다. 실제 혈액형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인지적 태도에 대한 비유다.
자연과 하나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Ng형.
자연을 배경이나 자원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Ng형.
다행인 것은 이 혈액형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험과 깨달음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도시를 떠나 초록으로 들어간 내 친구처럼.
인간은 자연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색은 초록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피로와 공허함의 정체는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오래 방치된 녹색갈증일지도 모른다.
오늘, 잠시라도 초록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 색을, 우리의 말로 불러보자.
푸르다. 그리고, 푸레다.
푸른 것은 하늘이 아니라 숲이었다
주(註)
[주1] 시각생리학적 배경
인간의 원추세포는 L(적색), M(녹색), S(청색)로 구분되며, 녹색 계열의 빛은 인간 시각계의 최대 감도 영역에 가까우며, L·M 원추세포의 균형 자극을 통해 색 대비와 공간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청색광에 비해 안구 내 산란이 적고 중심와 해상도에 유리하여, 동일한 시각 정보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신경적·광학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녹색은 주관적으로 시각적 편안함과 눈 피로 감소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주2] ‘푸르다’의 어원
‘푸르다’는 고대국어에서 ‘풀’과 어근을 공유하는 말로, 식물의 생장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본래 의미상 파랑보다 초록에 가깝다.
[주3] ‘푸레’의 언어적 근거
‘물푸레나무’는 대표적인 고유 식물명으로, ‘푸레’가 자연 색감과 식물성을 나타내는 어근으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준다. 일부 방언 및 고어에서도 ‘푸레하다’는 표현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