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그 가슴 벅찬 이야기

by 웅토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의 일이다.
막 산림치유지도사로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무렵이었다.
딱 이맘때쯤이었다.
날은 따뜻했고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길어진 칩거 생활에 숨이 막히듯 답답해, 별다른 계획도 없이 집을 나섰다.
집이 한강과 가깝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길가에는 꽃마리와 냉이꽃이 피어 있었고, 개불알꽃도 눈에 띄었다.
벚꽃은 아직이었지만 매화는 제법 그럴듯하게 봄을 알리고 있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하도로를 지나 한강공원에 이르렀다.
강물을 바라보며 ‘코로나가 또 하나의 봄을 지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첨벙. 물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사람이 강물에 빠진 것이 보였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수심은 깊지 않았다.

사람을 끌어올려 보니 노인이었다. 그런데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곧바로 119에 신고하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시간 감각은 흐려졌지만 체감상 2분쯤 지났을까. 반응은 없었다.
그때 마침 다른 행인이 도착했다.

나는 인공호흡을 맡기고,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배운 대로,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다시 2분쯤 지났을 때였다.
길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찡그려지더니 눈을 떴다.
그제야 나도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는 63 빌딩에서 사찰음식을 강의하던 사람이었다.
코로나로 모든 강의가 취소되어 시간이 생겼고, 봄나물 생태를 보러 한강변에 나왔다가
현기증을 느끼며 그대로 물로 떨어졌다고 했다.

평소 메니에르 증세가 있었다고도 했다.
곧 119가 도착했다. 고맙다며 답례를 하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나는 산림치유지도사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배웠고 그저 배운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이 일은, 내가 산림치유지도사로 첫발을 내디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런데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겨울 한파가 길게 이어지다 모처럼 날이 풀린 어느 날, 북한산을 찾았을 때였다.
등산객은 많지 않았고, 흐린 하늘 아래서 천천히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앞에는 외국인 남녀 한 쌍이 보였다.

그 순간, 남자가 그대로 쓰러졌다.
주변엔 도움을 청할 사람도, 시설도 없었다.
나는 다시 119에 신고하고, 인공호흡과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분당 110회. 배운 대로, 몸이 기억하는 대로.
약 2분쯤 지났을 때, 얼굴이 일그러지며 신음 소리가 났고 호흡이 돌아왔다.
눈을 뜨는 순간, 또 한 번 긴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들은 독일인 부부였다.
한국의 불교 사찰 건축에 관심이 있어 전국을 돌고 있다고 했다.
고맙다며 답례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들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포레스트 힐러입니다.”

그들은 북한산 템플스테이에 참여 중이었고, 숙소에서 차라도 마시자고 했다.
나는 사양했고, 잠시 후 도착한 119팀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주민등록증과 산림치유사증, 응급구조 관련 수료증을 함께 제시했다.
그때 문득 ‘착한 사마리아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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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주일 뒤, 또 주말이 왔다.
이번에는 미세먼지가 있다는 예보에 집 근처 서울식물원으로 향했다.
아직 개장 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다.

천천히 걸으며 식생을 살피던 중, 앞서가던 외국인 남녀가 보였다.
그때였다.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잠깐 멍해졌다.
데자뷔라는 말이 이런 순간에 쓰이는 건가 싶었다.

나는 익숙한 순서로 119에 신고했고,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살렸다.
이들은 놀랍게도, 그때 북한산에서 만났던 독일인 부부와 같은 팀이었다.
같은 포레스트 힐러 그룹.

‘왜 이 팀은 계속 내 앞에서 쓰러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며칠 뒤,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안에는 백 달러 지폐 묶음과 사찰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사찰의 이름은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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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萬愚寺)’.
대관령의 ‘대관절’과 함께 상상치유센터로 알려진,
세계적인 템플스테이 명소였다.…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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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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