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가꾸기 왜 인간을 살리는가

- 서유구의 예원과 오감치유

by 웅토닌

예원(藝畹)과 오감(五感) 치유

3_9ggUd018svc1gpxf03gg0clz_qj5d0d.jpg?type=w520 산음 자연휴양림 앞 정원이 예쁜 집


꽃을 가꾸는 일이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는 말은 오래된 오해다. 서유구는 이미 200년 전, 꽃과 정원이 인간을 살린다고 말해두었다.


휴대전화의 대표적 기능 가운데 하나는 멀티태스킹이다. 동시에 여러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 이상을 보이면 우리는 흔히 그를 ‘천재’라 부른다. 천재의 상징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정약용이 있고, 정약용과 비견되는 또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다. 이름보다 그의 저서 『임원경제지』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 이 글은 서유구, 그리고 그가 남긴 『임원경제지』 가운데 "예원지(藝畹志)"를 통해 오감치유의 관점에서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기록이다.


6_0ggUd018svc183a03gzpoehg_qj5d0d.jpg?type=w520 산음 치유의 숲 앞에 정원이 예쁜 집


서유구는 문헌 속 지식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직접 경험한 농업, 건축, 요리, 의학, 공학, 상업 등 조선 사회 전반의 지식을 수집·검증·분류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태도로 엮어냈다. 그렇게 36년에 걸쳐 113권 54 책, 16지(志)로 구성된 방대한 실용백과사전이 탄생했다. 말 그대로 ‘조선판 브리태니커’였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그의 엄격한 검증 태도다. 『동의보감』조차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며, 인용된 원전을 직접 구해 비교·분석한 뒤 자신의 견해를 명시했다. 동일한 치료법을 두고 서로 다른 의서의 기록이 존재하면 모두 대조하여 사실을 가려냈다. 오늘날의 표절검증 시스템에 비유하자면, 그는 스스로 ‘카피킬러’가 되어 겹치는 내용을 걷어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남겼다.



8_8ggUd018svcj1pkgeu1ltkb_qj5d0d.jpg?type=w520 백두산 천지 산꽃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임원경제지』 가운데 예원지(藝畹志) 때문이다. 서유구는 초근목피를 이용한 약용식물과 생존을 위한 농업 지식뿐 아니라, 꽃을 가꾸고 감상하는 일 또한 인간 삶에 필수적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오늘날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이나 산림치유에서 말하는 오감치유, 특히 시각적 치유 자원인 랜드스케이프(Landscape) 개념을 이미 선구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를 통해 곡식 농사법과 농기구, 채소·약초 재배, 국화류와 화훼 재배, 과실수와 수목 관리, 직조·염색, 가축 사육, 165종의 전통주, 음식 조리법, 건축, 보양법 등을 16개 분야로 체계화했다. 참고·인용한 문헌만 해도 893종에 달한다.


그중 예원지에서는 당시 사대부 사회가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천시하던 꽃 가꾸기와 정원 조성을 정면으로 다뤘다. 화훼류의 일반 재배법은 물론, 50여 종 화훼의 명칭 고증, 토양 특성, 재배 시기와 방법까지 상세히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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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虛)’를 기르는 일의 가치

이에 대해 서유구는 예원지 서문에서 분명한 반론을 제시한다.

“사람에게는 오관(五官)이 있다. 곡식·채소·고기와 같은 음식은 오관 중 입만 기른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과 달라 입과 배를 기르는 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완상(玩賞)의 대상 또한 필요하다.”


그는 강희안의 『청천양화록』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물을 기르는 데 ‘허(虛)’가 있고 나서야 ‘실(實)’을 기를 수 있다. 허를 기르는 것이 곧 실을 기르는 근원이다.”


또한 그는 강조한다.

“만약 우리 사람에게 보탬이 될 만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오관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오늘날 오감치유 이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약용식물을 오직 병을 고치는 기능으로만 규정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절반 만을 이해하는 셈이다.

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면 그 식물은 이미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서유구가 말한 예원 속 꽃들은, 어쩌면 가장 오래된 치유약용식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유구는 오십의 나이에 집필을 시작해 30년에 걸쳐 『임원경제지』를 완성했으나, 생전에는 이를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인쇄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개풍군 장단면(현 북한 지역)에 있는 그의 묘비명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근심스러운 처지에서 근심을 잊기 위해 온갖 서적을 널리 수집해 『임원경제지』를 편찬했으니, 이 일에 골몰한 것이 앞뒤로 30여 년이다. 그러나 인쇄하려 하니 재력이 없고, 장독대 덮개로나 쓰기에는 충분하다.”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


1842년, 헌종 8년. 일흔아홉의 노인이 백여 권의 책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린다. 1813년 쉰 살에 시작한 책을 30년 만에 완성했지만,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병석의 그는 시중드는 이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고 곡이 끝나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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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알면 열을 잊어버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서유구는 경외의 대상이다. 진정한 천재이자, 인간 멀티태스킹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쇄를 하자니 재력이 없고 장독대 덮개로나 쓰기에는 충분하다.”

이 푸념을 읽다 보면, 어렵게 쓴 학위논문을 돌린 뒤 “이제 남은 건 라면냄비 받침으로 쓰면 딱이다”라고 말하던 현대 연구자들의 자조와 겹쳐 보인다. 시대는 달라도 학자의 고단함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산림치유, 해양치유, 치유농업 등 자연의 다양한 요소를 치유 자원으로 활용하는 제도적 흐름 속에 살고 있다. 치유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시대다. 그 한복판에서, 서유구의 예원 지는 이미 수백 년 전 오관을 모두 살리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e_4ghUd018svc3ur9kt6xwrob_qj5d0d.jpg?type=w520 치유농업기술센터 정원 만들기


※용어 정리

• 격물치지(格物致知): 실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함(『대학』)

•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객관적 태도

• 예원(藝畹): 넓은 밭에 화초를 심어 가꾸는 일

• 완물상지(玩物喪志): 사물을 아끼고 좋아하는 데 빠져 뜻을 잃음. 당시 사대부들은 예원을 사치스러운 취미로 보며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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