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과 사자성어

인생도 배설처럼 자세가 중요하다

by 웅토닌

어릴 적 외갓집 화장실은

나중에 밭에 뿌려 거름으로 쓰기 위한

인분 저장통이 딸린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그래서 여름이면

똥이 튀지 않게 각별히 조심하며 눠야 했다.

이 절박한 생존 기술들은

동네 아이들이 모깃불 아래 모여

열띤 토론 주제로 나눈 적이 있다.


불현듯 그 기억이 떠올라

이렇게 적어본다.


• 첫 번째 논담(論談)

-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 안 튀게 누는 법


1. 처음부터 끊어지지 않게 천천히 가래떡처럼

한 줄로 이어서 눈다.

行雲流水 (행운유수)

구름 가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꾸준히 천천히 하지만, 중단은 재앙을 부른다

가장 정공법이자 가장 고난도


2. 타잔처럼 줄 타고 가다가

정확한 지점에 투하하고 지나간다

→ 空中投下 (공중투하)

접촉은 최소, 정확도는 최대

물과의 거리를 확보, 물보라 발생률 ↓

숙련자만 가능한 고급 테크닉


3. 콩처럼 조그맣게 나누어 한 번에 쏟아낸다.

→ 分而治之 (분이치지)

나누어 다스리면 튀지 않는다

충격량 분산, 위험을 세분화

변비인에겐 불가, 정상인에겐 안정적


4. 한 덩어리를 떨어뜨리고

튀어 오르는 똥물을 패트리어트 미사일처럼

두 번째 정확히 발사하여 분산시킨다.

原點打擊 (원점타격)

똥은 똥으로 제압한다

이미 튀는 건 각오, 대신 방향·각도·타이밍을 계산

실패 시 전면전, 성공 시 전설


5. 최대한 낮춰 물과의 거리를 없앤다

→ 近水低放 (근수저방)

가까이 갈수록 튀지 않는다

낙차 = 재앙, 자세는 굴욕, 결과는 평화

초보자 추천, 허벅지 근력 필수


6. 벽을 타고 흘려보낸다

→ 借壁下流 (차벽하류)

벽을 빌려 아래로 흐르게 한다

직접 투하 금지, 마찰을 이용한 감속

청소 부담은 사용자 몫


7. 신문지·휴지로 착수 지점을 덮는다

→ 先制防御 (선제방어)

싸우기 전에 방패를 세운다

튐 발생률 급감, 준비성의 승리

다만 너무 두꺼우면 부력 발생


8. 숨을 고르고 최소 에너지로 낸다.

→ 無爲自然 (무위자연)

억지로 하지 않는다

힘을 줄수록 튄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노자도 화장실에선 옳았다


9. 이미 튀었을 경우 아무 일 없던 척 마무리한다

→ 事後泰然 (사후태연)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태도, 팬티를 원망하지 말 것

인생도 대체로 이렇다

똥은 피할 수 없지만 튐은 줄일 수 있다.


재래식 화장실은

물리학·철학·인내심의 종합예술이다.


• 두 번째 논담(論談)

- SNS 떠돌던 핫한 담론(談論)


인생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 있다.

회의실도, 술자리도 아닌 바로 화장실이다.

여기서는 학벌도, 지위도, 인격도

모두 장운동 앞에서 평등하다.


1. 똥인지 된장인지 안 먹어봐도 안다

人之常情 (인지상정)

보자마자 느낌이 온다.

인생도, 사람도, 변도

경험보다 직관이 빠를 때가 있다.


2.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事實確認 (사실확인)

그래도 세상엔

직접 겪어봐야 정신 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화장실에서.


3. 먹어봐도 모른다

人事不省 (인사불성)

이미 늦었다. 여기까지 오면

냄새도, 상황도, 인생도 판단 불가.


4. 먹어보고 “맛있다”라고 한다

特異體質 (특이체질)

이건 설명이 필요 없다.

의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우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5. 먹은 만큼 싼다

萬古眞理 (만고진리)

진리는 단순하다.

섭취에는 반드시 배출이 따른다.

감정도, 말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6. 먹은 것보다 적게 싼다

財産隱匿 (재산은닉)

뭔가 숨기고 있다.

양심이든, 체중이든, 진실이든.


7. 먹은 것보다 많이 싼다

減肥最高 (감비최고)

살이 빠지는 데 있어 최고 효율성을 자랑한다.
다이어트의 극치


8. 용변 후 손을 씻는다

病菌洗滌 (병균세척)

문명인의 최소 조건.

이걸 안 하면

사자성어 이전에 인간 자격 심사 탈락.


9. 그것도 부족해 라이터로 지진다

完全撲滅 (완전박멸)

트라우마가 남았다는 뜻이다.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기억.


10. 화장실 들어갈 땐 급하고 나올 땐 평온하다

苦盡甘來 (고진감래)

고통은 들어갈 때, 깨달음은 나올 때 온다.


배설은 인생이다.


배설은 인생이다.

먹고, 쌓이고, 버리고, 또 살아간다.

우리는 얻으려 만 하고

좀처럼 버리지를 못한다.

참아야 어른이 된다고만 했지,

비워야 산다는 말은 못 들었다.

시간이 지나 몸이 알게 됐다.

쌓이면 아프고, 비우면 가볍다는 것을.

붙잡으면 통증이 되고

놓아주면 시원하다.

쌓으려 만 하다가

버릴 줄도 안 다하면 득도다


너무 움켜쥐지 말고

잘 비워 보자

놓을 줄 알아야 오래간다

배설은 인생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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