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용서못해서..

엄마,나한테 말하지 말지 그랬어

by for healing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엄마가 있었다.

너무 반가워 와락 안기며 "엄마!왜 이렇게 빨리 왔어?토요일에 온다 그랬잖아"

"너희 보고 싶어서 빨리 왔지" 늘 그렇듯 기분좋은 엄마만의 향기가 코 안 가득 채워지도록 꼭 안아주는 엄마의 이른 귀가가 그저 좋았다.그 때는...


지방에서 병원을 하는 아빠로 인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이산가족(?)이었다.자식들은 서울에서 교육시키겠다는 아빠와 엄마의 결정으로 우리 남매는 외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서울에서 살고 엄마는 서울과 아빠가 계시는 지방을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다니셨다.


아빠는 군의관 대령으로 예편하셨는데 지방의 준종합병원에 초대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아빠의 지방생활과 함께 엄마의 두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거칠 것 없는 남자였다.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교만함을 베이스로 두고 작은 지방에서 '병원원장님'으로 대우받으며 사는 것에 스스로 흡족해하며 취미생활로 테니스를 치며,조각을 하며 그곳 생활에 적응해 가셨다. 환자들에게 상냥한 의사가 아니었음에도 실력은 좋았는지 후에는 따로 개업을 하셔서 입소문을 타고 제법 잘나가는 의사선생님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조금씩 교만을 쌓아가셨다. 엄마는 '예쁜 원장사모님'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남편내조와 자녀양육에 빈틈없는 현모양처의 본ㅎㅎ을 보이며 나름의 역할에 충실하셨다.


오빠와 나는 방학이면 아빠와 함께 지내기위해 그곳으로 갔었는데 "원장님 아들,딸이래"하는 쑥덕거림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누가봐도 잘난 의삿집의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엄마는 예정된 날보다 조금씩 서울에 오는 날짜가 당겨지기도 했고 아빠에게 돌아가는 날짜가 조금씩 미뤄지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져 좋기만했던 중학시절의 딸이었던 나는 어느 날, 아니나다를까 일찍 집에 와 계시던 엄마의 표정에서 뭔가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 왜그래?무슨 일 있어?"

"아니, 일은 무슨..."

"말해봐, 뭔일 있지?"

"아니라니까,그냥 니들 보고싶어서 빨리 왔어."

"아~거짓말하지말고..내가 엄마를 몰라?그 표정 뭐야?빨리 말해봐"

한참을 뜸을 들이던 엄마가 "니 아빠 바람피우는 것 같아" 하더니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서러움이 폭발했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누구랑?확실해?"

"미스 한이랑~그동안 지켜봤는데 맞는 것 같아"

미스한은 병원 개원때부터 있었던, 나를 예뻐해주고 나도 '언니,언니'해가며 따르던 수간호사이다.

아직은 엄마의 육감일 뿐이라지만 왠지 사실일 것 같은 불안함에 아빠에 대한 나의 무한 애정과 신뢰에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아~이제부터 아빠를 어떻게 봐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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