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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마치고

아이러니

by for healing

"○○○환자 보호자분! 수술실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 이건 무슨 상황이지?? 딸들과 어리둥절 반, 당황 반으로 선뜻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환자 보호자분! 수술실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다시 한번 방송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수술 끝나면 환자를 수술실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보호자를 부르던데~~~

예상치 못한 호출에

'이게 무슨 일이지?' 서로 놀란 눈으로 말을 주고받으며 수술실안으로 주춤주춤 들어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수술실안으로 질려서 들어오는 우리를 보더니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요~수술 잘 끝났어요. 놀라셨구나! 제가 다른 수술이 곧이어 있어서 나갈 수가 없어서 들어오시라고 했어요. 일단 수술은 깨끗하게 잘됐고, 결과는 2주쯤 후에나 정확히 몇 기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추후의 치료가 필요할지 아닐지도 그때 말씀드릴게요~1시간 정도 회복하고 병실로 내려가실 거니까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오세요~"


...........

심장이 내려앉는 알았다.

어릴 적 뛰어놀다 시멘트바닥에 넘어져 얼굴을 갈았을 때 코에서 나던 현기증 나던 피 냄새...

가슴 한켠으로 싸하게 내려가는듯한 얼음 한 조각의 차가운 느낌...

뭐~~ 아무튼~~ 의사 선생님의 호출에 그런 기분이었다.

다행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수술이 잘 마쳐졌다는 이야기에 연신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돌아서서 나왔는데 작은 딸이 바로 로켓포를 날렸다.

"미친 거 아냐? 누가 들어도 보호자를 수술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table death라고 생각하지? 안 그래도 불안하게 기다리는 보호자들한테 들어오라고 하면 얼마나 놀라? 미쳤나 봐~난 아빠가 죽었는 줄..."

거기까지 말했을 때 큰 아이가 바로 동생에게

"됐어~입방정 떨지 말고 커피 마시고 오자~다음 수술이 있어서 못 나와서 불렀다잖아~그나저나 진짜 깜짝 놀라긴 했다 그치? 엄마표정 장난 아니었어. 나도 순간 잠깐 얼었었고~"

"그니까~다시 소독하고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면 안 되지~보호자들이 기절하잖아"

"근데 너 드라마 좀 봤나 보다 table death 오올~~ㅎㅎ"


우리 세 모녀는 그동안의 긴장을 그렇게 농담으로 풀며 한 시간을 기다렸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우리가 그날의 수술 첫 일정이라고 했는데(아침 8시) 세어보니까 그 시간에 수술하는 환자가 29명이나 있었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요즘은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수술실 안의 상황을 보호자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환자가 아직 수술대기 중이라든가, 이제 수술준비 중이라든가, 수술 시작했다, 종료했다 등의 알림이 앞의 전광판에 뜬다.

우리는 수술실 들어간 시간부터 종료된 시간까지 총 3시간이 걸렸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이었다.

수술 끝나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에 작은아이가 하는 말이

"아까 아빠 수술할 때 어떤 여자환자는 산부인과 수술이었는데 앞에 있는 알림판에 수술시작하고 9분 만에 종료라고 나왔다~뭐가 잘못 됐나봐"

그러자 큰 아이가

"좋게 생각해, 애기 낳았나 보지~

작은아이 왈

"언니~아무리 결혼을 안 했어도 그렇지, 애를 낳고 어떻게 9분 만에 마무리하냐,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분명 뭐가 잘못된 것 같아"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저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일부러 그쪽을 안 쳐다봤다.

그래, 병원이라고 어떻게 사람을 살리기만 하겠어~

그나마 아직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게 감사할 뿐이고...


세상도 나날이 좋아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도 나날이 많아지고... 참 사는 게 그렇다.


원하지 않았던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

살면서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나만은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고 이 나이가 되어도 매번 힘겹고 버겁다.

이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조직검사결과에 따라 이번 수술로 치료가 끝날 것인지 추후의 별도치료가 필요할지 결정되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그래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위에 계신 그분께 맡기면 되니까 ㅎㅎ


우리는 입원실을 4인실이나 2인실을 신청했었다.

수술 전 날 4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아이들이 그잖아도 예민한 아빠, 엄마가 어떻게 4인실에서 자느냐며 자기네가 비용을 댈 테니 그냥 1인실을 하라고 한다. 아무리 지네들이 돈을 낸다지만 1인실은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인 것 같아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그냥 돈으로 줘, 엄마는 그냥 몸으로 떼울껴~4인실 들어가 보고 많이 불편하면 바로 2인실로 옮길게~ 걱정 마" 했다.

그랬는데 4인실을 배정받았다.

원래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걸 싫어하는 데다가 불편한 잠자리까지... 남편도 나의 이런 까칠함?을 너무 잘 알기에 걱정반 미안함 반 가득한 눈치이다. 어쩌겠는가? 나는 또 주어진 환경에는 참 빨리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은 생명체인듯하다. 별 불편함 없이 네 명의 남자환자들의 코골이와 수술 후의 가래 뱉음과 가스배출음, 마취 풀린 이후의 통증호소, 커튼너머(ㅎㅎ)의 부인들과의 소소한 말다툼소리 속에서 넉넉히 일주일을 버텨내고야 말았다. 심지어 동병상련 커튼너머의 부인들과 친해지기까지 했다.


회진 들어오는 선생님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하루일과 속에서 의사의 말 한마디, 불과 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의사 본인들은 알까? 퇴원수속을 기다리며 오늘도 복도를 걸어 들어오는 선생님의 발소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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