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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기다림

대~~~ 단한 화법

by for healing

4인실에 있다 보니 별별일이 다 있다.

옆의 환자 한 분은 우리 보다 한참 젊은 분인데 간병하는 부인까지 계속 커튼을 치고 우리와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몸이 아픈 상황에 기분이 좋을 일이 뭐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수다 떨고 싶겠냐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 두 분은(그때에는 그 환자분의 정확한 상태를 내가 몰랐으니까) 늘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었다. 식사를 할 때에나 복도를 걷는 운동을 할 때에나 항상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과는 눈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나중에서야 조금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는데 신장암 3기로 한쪽 신장을 떼어냈고 방광에도 문제가 있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듣고 나니 왜 그리 침울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또 한분은 70대 초반의 신사분이셨는데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신사적이고 점잖으신데 부인에게는 약간?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시는 분이었다. 평상시 운동을 즐겨하시던 분이셨다고 하는데 우리처럼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되었다는 케이스다. 키가 작지만 몸집이 아주 단단한, 그래서인지 회복이 빠른 편이셨다. 가끔 욱하는 성격으로 아내분에게 뭐라고 말을 툭툭 뱉으시면 아내가 나긋한 목소리로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내가 언제 화를 냈어?" 이런 식이다.

남자들은 일상의 대화라고 생각하는 그 화법이 여자들이 듣기에는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리는 바로 그 '대~~~ 단한 화법'


우리 남편도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크다. 그래서 가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아이들이

"근데 아빠는 왜 첫마디부터 화를 내고 그래요? 좋게 말하면 되지~" 그럴 때마다

" 내가 언제 화를 냈어? 그냥 말한 거지~"

비겁한 변명입니다~~~를 늘어놓곤 했다.


아무튼,

이 모든 환자들을 한 번에 뒤엎는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마지막에 들어온 할아버지 환자인데, 할아버지라고 해봐야 70대 중반이셨다.

수술을 막 마치고 내려오셨는데 병실에 들어오시고 난 얼마 후부터 아프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니 그 짜증은 이내 어디로?

그거다!!!

왜 언제나 모든 남편들의 화풀이의 대상은 아내들이 되었을까?

요즘 젊은 아이들이 들었으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구시대적인 일 인가 싶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우리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스갯소리인지는 몰라도 옛날 시골집에는 똥개를 길러서 부인들의 억울함을 똥개에게 화풀이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할아버지환자가 부인에게 빨리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더 달라고 해라 , 원래 이렇게 아픈 거냐, 가스가 왜 이렇게 빨리 안 나오냐, 진통제가 왜 이렇게 천천히 들어가냐, 별 의학적 질문까지 다 퍼부어대는 동안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그런 남편에게 이골이 난 부인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럼 로봇이 속을 다 헤집어 놨는데 안 아프면 그게 이상한 거지, 때가 되면 간호사 선생님이 알아서 진통제 다 주겠지. 그리고 당신 그렇게 돈 좋아하는데 진통제 더 달라고 해서 더 받으면 그게 다 돈이야, 알아?(나 여기서 웃겨서 까무러치는 줄) 가스? 나올 때 되면 알아서 나오겠지 그걸 나한테 물어본다고 내가 어떻게 해? 내가 나오란다고 나와 그게? 떼를 쓸걸 써야지!!"

.... 재미있는 건 오래 산 부부들은 이렇게 부인들이 쎄게 나가면 남편들이 입을 싹 다문다는 거다.


그렇게 남편을 KO승으로 이기고 커튼밖으로 나와서는 우리에게는 순한 할머니가 되어서는 음료수랑 과자를 나눠주시면서 남편 흉을 보신다. 귀여운 할머니...


여기서 또 한 가지

사업하신다는 환자분의 아내 되시는 아주머니가 나지막하게 남편에게 한마디 하시는 말씀이

"저거 봐요,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말을 함부로 하니까 듣기 거북하잖아요 당신도 말 좀 곱게 해 봐요~"

거울치료까지ㅋㅋ


우리 방에서 옆의 젊은 환자를 제외하고 세 환자가 모두 같은 병명으로 같은 수술을 하였는데 담당의사는 다 다른 분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마다 회진 돌면서 하는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고 치료스타일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환자는 가스가 안 나왔는데 미음을 먹어도 된다고 하고 어떤 환자는 가스가 나오기 전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어떤 환자는 소변줄을 빼고 완전한 상태로 천천히 퇴원하라기도 하고 누구는 그냥 소변줄을 단 채로 일찍 퇴원하라 하기도 하고...


"왜요?"

랄것도 없이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

아무래도 병원보다 심적으로는 집이 편하지만 수술부위도 그렇고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병원이 편한 부분도 있어서 조금 더 병원에 있으면서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퇴원했으면 했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일주일 후 다시 외래로 병원을 방문하고 최종적으로 몇 기인 지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시 초조한 기다림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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