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그때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전혀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가 삶에서 '내려놓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모든 것은 내려놓음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것이어서 너무 마음에 와닿아 그 책을 구입하여 읽었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들었던 의문은 '작가자신은 정말 내려놓은 게 맞나?'였다.
내려놓았다고 하기에는 그 작가분은 너무나 잘난 사람이었다. 한 권의 책, 몇 장을 넘기면서도 느껴질 만큼 나 같은 사람은 명함도 못 내밀... 그분은 자신의 이력을 소개함에 있어 전혀 내려놓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로는 내려놓아야 하는 걸 아는데, 내려놓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작가 자신은 너무 자랑하고 싶고 내세우고 싶은 것이 많은 듯했다.
책을 돌려 읽고 난 후에 아이들과 함께 웃으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저 작가는 본인이 먼저 내려놓음을 실천하셔야 할 것 같아. 전~~~ 혀 못 내려놓으셨네ㅎㅎ"
또 한 번은 교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는데 강사님이 전하는 메시지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힘과 용기를 얻어가고자 모였던 우리 청년들이 오히려 상처받고 돌아간 적이 있다.
강사님이 세미나중에 본인의 자녀를 예로 들었는데 간추리면 이거다.
아들 녀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늘 게임만 하고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더란다. 컴퓨터를 내던지기까지 하며 게임을 못하게 했지만 그러면 pc방에 가서라도 게임을 해대는 망나니(그분의 표현) 자식이었다는 것. 거기까지는 청년들이 흥미롭게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자기들과 비슷한 이야기여서였을까? 그다음 이야기가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결과를 바라서였을까?
'그렇게 부모 말을 안 듣더니 입시에 실패하고 나니까 그제야 부모 말이 얼마나 자신에게 귀한 가르침이었다는 걸 깨닫더라고요' 같은...
아무튼 이어지는 강의내용은, 그렇게 공부를 안 하던 녀석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렀는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그 강사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그런데 공부라면 담을 쌓고 게임만 하던, 내놓다시피 했던 이 녀석이 글쎄 고대(고려대학교)에 덜컥 합격을 한 거예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허허~~"
...........
그때부터였다.
우리 청년들의 반응이 싸~~ 해진 시점은ㅋㅋ
그 강사님의 이야기는 전혀 마음에 와닿지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세미나를 듣던 아이들이 궁시렁거리며 딴짓을 하고 급기야 중간에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이래저래 세미나가 끝나고 당시에 청년부 회장을 맡아 예배 사회를 보던 작은 딸(아시다시피 말이 걸쭉한 아이ㅋㅋ)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말이
"그 강사님 뭐야? 애들 기죽이러 왔대?
지 아들자랑도 어지간히 해야지~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던 놈이 덜컥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을 누구는 눈알 빠지게(표현이 거칠어서 죄송) 밤새워서 공부해도 그 대학 발뒤꿈치도 못 들어가는 거 비웃으러 왔대? 지금 우리 애들이 아주 욕하고 난리도 아니야. 그 강사 누가 초청했냐며... 물론 공부 못하는 것들이 말도 많다고 하겠지만, 애들 기를 살리는 게 아니라, 아주 그냥.. 그나마 있던 용기도 다 꺾어놓고 갔어.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그래 잘난 아들 둬서 아주 자랑스럽겠습니다~잘난 강사에 잘난 아들일세..."
아가~~~ 일단 숨을 쉬어라~후우~~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주절대는 이유는 요즘 나의 심정이 딱 이렇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어떤 일을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써보지만 결국은 기운만 빠진다.
깨끗하게 두 손 들고 항복하면 될 것을...
내 것을 다 내려놓고 불가항력적인 거대한 힘을 의지하면 될 것을...
남편의 질병 앞에 속수무책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큰 그림을 기대하며 도우시는 손길을 잡으면 될 것을...
아직도 다 죽지 않은 나의 아집과 자존심을 이제는 정말 내려놓을 때이다. 정말 내려놓아야 하는데...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나는 뭔가를 아직도 움켜쥐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헛껍데기인 내가 아직도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