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악마라는 존재가 썩 무섭지는 않게 느껴졌다. 파우스트를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어둠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마는 정말 이름만큼 무섭지는 않은 존재일까?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을 통해 악마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건의 흐름을 주도하며 파우스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가 원하는 대가는 오직 한 가지, 파우스트의 '고귀한 영혼'을 찬탈하는 것이다. 그는 파우스트를 유혹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허락을 받는다. 악마가 고귀한 영혼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주님의 허락이 필요한 것일까?
메피스토펠레스는 인생의 공허감에 고뇌하고 있는 늙은 파우스트에게 접근하여 원하는 욕망을 이루어주겠다고 제안한다. 파우스트는 현세를 즐길 수 있다면 죽은 후에 자신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30년 젊어지는 마법의 수프를 먹게 하고 파우스트의 새로운 인생과 동행하여 그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준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는 말과 행동은 언뜻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가 파우스트를 찾아온 학생에게 인간적인 조언을 해줄 때도 그랬고, 파우스트와 대화를 나눌 때도 그의 말들은 상당히 그럴듯하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로 변장하여 학생에게 조언하는 내용을 하나 소개하자면 이렇다.
시간은 빨리 흐르는 것이니 아껴 쓰도록 하게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시간을 벌게 되지.
충실한 제자인 자네에게 권하노니,
우선 논리학 강의부터 들어보게나.
그러면 자네의 정신이 잘 길들여질 거야.
스페인식 장화를 신은 듯 죄어들어서
사상의 길을 가는 데도 살금살금
신중한 걸음을 내디딜 것이요,
도깨비불마냥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는 않을 걸세.
다음엔 여러 날에 걸쳐,
먹고 마시듯 자유자재로
단숨에 해치우던 일도
하나! 둘! 셋! 순서가 필요하다는 걸 배우게 될 거야.
사실 사상의 공장이란 건
뛰어난 직조품과 같은 것이라네.
한 번 밟으면 수많은 실들이 움직이고,
북들이 이리저리 넘나드는 가운데
실들이 눈에 띄지 않게 흘러나오며,
단 한 번을 쳐도 수많은 결합이 이루어지는 걸세.
( 파우스트 1권 105~106페이지 중에서 옮겨 적음)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교묘하게 활동하는 악마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무엇이 우리 마음을 혼란에 빠트릴 때 악마가 조종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추측해 보건대, 메피스토펠레스가 악마일 수밖에 없는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그의 모든 생각이 '악의적'이라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무리 파우스트를 위해 노력을 다하여도, 그의 행동의 배후에는 '악의'가 숨겨져 있다. 악마의 본질이 어쩌면 이 '악의'일 것이다. 적용해 보자면,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악의'를 품을 때 나는 내 안의 어둠의 힘에게 내 온전한 정신을 빼앗기는 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악의'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아주 잠깐의 괴롭힘이나 놀림, 비웃음, 분노 등은 잠시 동안의 악의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악의'의 힘이 조금만 더 커져도 굉장히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대부분이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한 행동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가. 사소한 거짓말부터, 폭력, 괴롭힘, 사기, 절도, 싸움, 사고, 전쟁 등 헤아릴 수 없는 인간 세상의 비극들.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생각들이 삶 속에서 크고 작게 우리를 현혹시켜 죄를 짓게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속에 '악의'가 생긴다면?
먼저 '악의'를 품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눈이 멀어 '악의'가 생긴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마음을 정화시키고 맑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즘처럼 시간과 마음을 빼앗는 눈요깃거리가 많은 세상에서는 생각할 시간마저도 작정하고 만들어서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악마가 활개치고 다닌다면 '악의'를 퍼트리기에 너무도 좋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다음은 '악의'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고 돌이켜야 할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시간 운전만 해보아도 내 입장에만 치우쳐 악의적인 감정을 품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악의'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행동을 옮기는 데 있어서 마지막 선택은 '의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 해내기 위해서 의지가 필요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하지 않기 위해서도 의지가 필요하고, 결정은 나의 몫이다.
조금이라도 선의 영역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전에는 한번 더 생각하고, 한 번만 더 생각하자. 아주 조금이라도 거리낄만한 점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말자. '악의'에 지지 말자.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타인에 대하여 혹은 나 자신에 대하여 악의를 품지 않고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메피스토펠레스로 상징되는 악의 모습에 고귀한 영혼인 나의 존엄성을 빼앗기지 않는 길이라고 믿으며 어설픈 글을 마친다.
<참고도서> 파우스트 1,2/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