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돌아가신 아버지의) 항해일지

- 부모님 직업, 아버지: 화물선 기관장

by 박지각
1993년 1월 13일(수)


1993년 1월 15일(금)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시절엔 학기 초마다 부모님의 직업과 최종학력을 묻는 종이를 나눠주었다. 해마다 어머니의 직업은 주부와 자영업으로 번갈아 썼지만, 아버지의 직업 칸엔 줄곧 ‘화물선 기관장’이라고 썼다. 반장이나 당번, 맨 뒷자리 친구 등 누구든 종이를 걷다가 내 것을 보면 꼭 하는 질문이 있었다.


“화물선 기관장? 이게 뭐야?”

“큰 배를 운전하는 사람.”

“그럼 너네 아빠 어부야?”

“우리 아빠 어부 아니거든!”


‘화물선’, ‘기관장’이란 단어는 내륙 지방의 소도시에선 흔치 않은 직업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일이 생길 수밖에.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질문이 돌아올 때마다 생각했다.


‘왜 우리 아빤 회사원이 아니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아버지 역시 회사원이었으니 말이다. 회사에 고용되어 근로를 제공하고 월급을 받았으니 당연히 회사원이었던 건데. 잘 다려진 양복을 입고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쉬어야 회사원인 줄 알았던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항해일지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영문 필기체와 선박 용어들로 가득해 칠할 이상은 이해하지 못했다. 필기체를 해독하고, 모르는 용어는 검색해 뜻을 찾았다. 아버지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은 아버지를 알아가는 과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아버지가 남긴 10년간의 항해일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성격이었는지도 말이다.


아버지는 대형 화물을 운반하는 화물선에서 기계와 기관을 총괄하여 관리하는 일을 했다. 조타수, 기관사 등 직원들의 근태를 담당했고, 입출항 시간과 하역 일정에 따라 밤낮없이 일했다. 또 아버지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에 대해 남을 탓하지 않고,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는 편이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하고 묻는다면 이제 대답은 할 수 있다. 내 아버지의 직업은 화물선 기관장이고, 화물선 기관장은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기관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매일 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했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두어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왔을 땐 오롯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의 아버지는 둥그런 곱슬머리에 손톱달 처럼 휘어지는 눈웃음이 예쁜 사람이었다. 가지런한 치아에 각진 턱선을 가져 ‘우리 집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라고 불리었다. 러닝셔츠만 입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러닝셔츠 모양으로 타서는 얼굴과 어깨, 팔은 까맣고 속살은 하얀 편이었다.


그는 손에 굳은살이 많았고 무엇이든 잘 고쳤다. 어디서 배운 적도 없다면서 과외까지 받았던 나보다 피아노를 더 잘 쳤다. 목소리는 조금 거칠었지만 편이었지만 말투는 늘 점잖고 부드러웠다. 어디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의 노래방 18번은 최희준의 하숙생이었다. 노래를 꽤 잘해서 따라부르기보다는 듣는 데에 집중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화와 LP를 좋아했다. 비디오테이프를 여러 개 빌려다 밤새 보기도 했고, 어린 딸을 데리고 영화관에도 자주 갔다. 나나 무스쿠리와 비틀즈의 LP를 특히 좋아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좀 어때?”

매일 아침 건네던 아버지만의 안부 인사였다. 나는 대답 대신 왜 깨우지 않았냐며 늦잠을 잤다고 짜증부터 내는 편이었다. 그래놓고는 책가방을 집에 놓고 학교에 갔다는 내 전화 한 통에 아버지는 한 달음에 학교까지 달려와 웃으면서 책가방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참 자상한 사람이었다. 또 아버지는 매우 점잖은 사람이었다. 어디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답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거다.


“아버지에 대해 꽤 많이 알고 계신데요.”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더 많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지, 또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인지. 묻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은데. 그는 내게서 너무 먼 곳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부터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해보려 한다.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버지의 시간과 기록을 따라 걸으면서 말이다. 나의 문장은 비록 과거형일지라도 아버지의 시간과 기록만큼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